최근 일본에서 국내로 반입된 부석사 관음보살좌상.
불법 문화재, 즉각 반환 않는 게 관행
도난 문화재를 다룬 1970 유네스코 협약에 따르면 1970년 이후 도난된 문화재는 반환해야 한다. 전시(戰時)약탈 문화재와 관련해서는 1954년 이후 발생한 전시 문화재 약탈 사건을 다루는 1954 헤이그 협약과 함께 19세기 이후 약탈 문화재를 다루는 국제관습법이 있다. 최근 유네스코의 관행을 보자면 이 국제관습법은 전시약탈뿐만 아니라 점령지 또는 식민지에서 공권력에 의해 반출된 문화재도 반환 대상에 포함시켰다.
어쨌든 19세기 이전에 일어난 문화재 약탈사건에 대해서는 적용할 국제법이 없는데, 이는 국제법이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19세기 이전에 약탈된 문화재는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고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이전 약탈 문화재 문제는 양국 간 외교적 협상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일단 현행 국제법에 따른다면 최근 절도범에 의해 국내에 들어온 부석사 불상은, 비록 수백 년 전 약탈됐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일본에 반환돼야 한다. 따라서 국제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유 장관의 말은 ‘반환 약속’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불법 문화재는 반환해야 한다는 국제법 원칙과 실제로 불법 문화재가 반환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불법 문화재가 즉각 반환되지 않는 것이 국제적인 관행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에 약탈당한 외규장각도서는 전시약탈 문화재로 불법성이 확실했지만, 반환받기 위해 20년간 피나는 외교교섭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우리 측에 등가(等價)의 문화재를 내놓으라고 집요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2010년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불법 반출해 일본 궁내청에 소장하던 실록 등 조선시대 도서류를 반환했는데, 이 역시 불법 문화재임이 확실했음에도 수년간의 외교교섭이 필요했다. 1920년 조선총독부가 발굴해 도쿄국립박물관에 불법 기증한 경남 양산 부부총 출토품은 1950~60년대 한일국교회담 때부터 반환 대상에 포함돼 치열한 교섭을 벌였지만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은 상태다. 10월 중순부터 부부총 유물이 대여 방식으로 3개월간 양산에서 전시될 예정인데, 거의 100년 만에 고국 땅을 밟는 우리 유물은 3개월 후 다시 일본으로 떠나야 할 형편이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약탈해 간 대량의 불법 문화재를 움켜쥔 채 최근 도난당한 부석사 불상, 그것도 약탈 가능성이 있는 문화재임에도 즉각 반환하라는 일본의 요구는 자가당착적이라고 하겠다. 이에 대해 우리 문화재에 대한 반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또 양국 간 문화재 문제를 협상으로 풀 것을 제안하지 않은 채 국제 규약만 거론한 유 장관의 대응에 국민적 불만이 폭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은 불상 출처 해명해야
일반적으로 소유권 분쟁이 발생하면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 불법을 입증할 의무가 있다. 이는 문화재 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조금 다른 관행이 형성되고 있다. 불법 문화재 근절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과 유럽의 문화재 정책 당국은 박물관에 소장품의 출처 및 유래(provenance)를 조사, 기록, 공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특히 나치 시대에 약탈된 문화재의 원소유자 보호를 위한 조치였지만 차츰 박물관의 윤리적 의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재판부가 ‘일본 관음사가 불상을 정당하게 취득한 사실이 확정될 때까지 불상 반환을 금지한다’고 가처분 결정을 내린 것은 국제적 기준에 맞는 합리적 판단이라 하겠다. 박물관보다 한층 높은 윤리적 의무를 져야 하는 일본 정부는 불상의 반환 요구에 앞서 출처를 해명해야 할 것이다.
도난으로 반입된 장물인 부석사 불상에 집착하면 잃을 것이 더 많다는 일부 여론도 있다. 이 불상은 한일 간 문화재 문제에서 중요도가 높은 문화재는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불상은 과거 수백 년에 걸쳐 일본에 약탈된 우리 문화재, 특히 임진왜란 때 약탈된 문화재 문제를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잠재적 중요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부석사 불상은 임진왜란 당시 문화재 약탈 문제를 국제적으로 처음으로 이슈화할, 다시없을 기회인 것이다.
부석사 불상 문제에 약간의 참고가 될 만한 사례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절도사건을 들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16년 미완 상태의 모나리자를 프랑스에 가져온 후에 완성했는데, 임종하면서 이 그림을 제자 살라이에게 유증했다. 살라이는 훗날 프랑스 왕에게 거금을 받고 모나리자를 매각했으며, 프랑스혁명 이후 국보가 되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됐다. 1911년 이 박물관의 직원인 이탈리아인 빈센트 페루기아가 모나리자를 훔쳐내 이탈리아 우피지 박물관에 매각을 제의했다.
그러나 진본임을 확인한 우피지 박물관은 즉각 루브르에 연락을 취했고, 페루기아는 체포됐다. 그는 애국심에서 모나리자를 훔쳐 이탈리아로 반입했다고 주장했지만, 돈을 목적으로 저지른 절도임이 분명했다. 그는 1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징역을 6개월만 살고 출소했다.
모나리자는 프랑스에서 완성됐고, 프랑스 정부의 소유가 명백하다는 점에서 하등의 이의 없이 프랑스로 반환됐다. 하지만 반환 전에 모나리자는 국민적 열광을 만끽하며 몇 달간 이탈리아 전역에서 순회 전시됐다. 이것이 이탈리아 정부가 내건 반환 조건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프랑스의 국제적 위세가 대단한 때였음에도 이탈리아 정부는 프랑스에는 큰 생색을 내는 한편 자국민에게도 조상의 위대한 업적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모나리자 반환 운동의 含意
현재로서는 수백 년 전의 문화재 약탈을 다루는 국제법이나 국제 관습법은 없다. 게다가 수백 년 전의 문화재 약탈이 문제가 되는 국제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수백 년 전 약탈과 피(彼)약탈 관계에 있던 두 나라가 각자 당시와 동일한 국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세계 역사에서 희귀하기 때문이다. 700년 전, 500년 전의 약탈 문화재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한일 간에만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한일 양국은 국제법에 따라 부석사 불상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안이한 생각을 접어야 한다. 진지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하면서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임진왜란 약탈 문화재 문제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부석사 불상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다. 700년 전 역사를 추적해 약탈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그렇지만, 불상의 원장소 반환이라는 문화재의 윤리적, 학술적 중요성에도 좀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왜구의 침범이 잦았던 고려 말 충남 서산 부석사에 있던 불상이 일본 쓰시마로 이전됐다면, 이 불상은 당시 한일 관계와 양 국민간 교류의 단면을 밝히는 귀중한 물증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한일 양국은 도난과 약탈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지역사 복원’이라는 대국적 차원에서 불상의 부석사 반환을 협의해야 할 것이다. 700년 전 불상을 조성했던 부석사가 지금도 건재하기에 차제에 이 불상이 다시 부석사로 돌아간다면 향후 양 국민 간 우호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는 모나리자의 모델이었던 조콘다(Lisa del Gioconda· 1479~1542)의 유골이 발굴된 것을 계기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모나리자 반환운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플로렌스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모나리자가 반드시 반환돼야 한다는 취지인데, 반환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로 치더라도 문화재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고 있음은 확실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