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호

“자리 연연 않지만 당에 필요한 역할 있으면 하는 거지”<심야 전화 통화>

서청원, 朴心 업고 당권 도전?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3-10-22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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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청원이 이끈 친박연대, 박근혜 정부 탄생 밑거름
    • ‘포스트 황우여’, 2014 지방선거·2016 총선 공천권 행사
    • 친박 주류 결집, 청와대 힘 실리면 ‘서청원 당 대표’?
    • 對野 정치 복원, 당내 김무성 견제 이중 포석
    • 徐, 김무성에 “나를 경쟁 상대라고 절대 생각 말라”
    • 내년 초 새누리 全大, 차기 대권 전초전 성격
    “자리 연연 않지만 당에 필요한 역할 있으면 하는 거지”

    10·30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경기 화성갑에서 ‘나홀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서청원 후보(오른쪽).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임기는 내년 5월 15일까지다. 강창희 국회의장도 그로부터 2주 후인 5월 29일에 임기가 끝난다. 또 그 직후인 6월 4일에는 제6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어 7월 30일에는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재·보선에선 국회의원 선거가 10곳 안팎에서 실시돼 ‘미니 총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봄을 전후해 여권 내부의 역학 구도가 새로 짜일 개연성이 충분한 셈이다.

    특히 당 지도부를 새로 뽑는 전당대회가 관건이다. 일정상으로는 내년 5월 15일에 전당대회를 열어 황 대표와 최고위원들의 후임자를 선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 곧 물러날 지도부가 지방선거 공천자를 확정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따라서 내년 초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차를 맞아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여권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는 지방선거 이후로 전당대회가 늦춰질 수도 있다.

    복잡한 셈법이 나도는 가운데 벌써부터 여권의 권력 지형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킬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청원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의 귀환이다. 서 전 대표는 10·30 경기 화성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여당 공천을 따냈다.

    공천 과정에서 당내 소장파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서 전 대표가 올해 70세로 구시대 정치인 이미지가 강한 데다, 2002년 대선 때의 이른바 ‘차떼기’ 사건과 2008년 총선 때의 친박연대 공천헌금 파동으로 사법처리를 받은 전력이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공천을 강행했다. 청와대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다고 한다.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이정현 홍보수석 등 핵심 참모들이 당 지도부에 서청원 공천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실렸다고 봐야 한다.

    徐 공천은 朴의 報恩+α



    박 대통령은 서 전 대표에게 정치적 빚이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친박계가 ‘공천 학살’을 당했다. 그때 서 전 대표가 낙천자들을 끌어 모아 친박연대를 결성했다. 친박 성향 무소속 후보들도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을 합쳐 26명이 생환해 국회로 들어갔다. 나중에 그들은 한나라당에 입당해 여당 내 야당 노릇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들의 절대적인 충성심을 기반으로 이명박 정부 내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미래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서 전 대표가 구축한 세력이 박근혜 정부 탄생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당 안팎의 역풍을 뚫고 서 전 대표를 귀환시킨 것은 그런 구은(舊恩)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것보다는 6선 의원 출신으로,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경륜이 필요했을 법하다. 사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여당 지도부는 정치력, 협상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정부조직법 개편안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새 정부의 산뜻한 출범을 돕지 못했다. 야당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놓고 파상공세를 벌였지만 전략 부재로 허둥대기만 했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돌입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친박계 원로인 서 전 대표가 큰 틀에서 정치 복원을 해주길 바라고 공천을 강행한 측면이 있다.

    서 전 대표에게 부여된 정치 복원 임무에는 또 다른 의미도 포함된다. 당에서 점차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김무성 의원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이다. 김 의원은 내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 출마가 유력하다. 그는 한때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등 호락호락하지 않은 스타일이다. 그런 김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깊고 정치적 욕망이 없는 서 전 대표를 차출했다는 얘기다.

    김 의원은 지금 여의도 정가의 블루칩이다. 그가 창립한 ‘새누리당 근현대사 연구교실’에는 현역의원 103명이 참여했다. 새누리당 전체 의원 153명의 3분의 2가 넘는다. 원외 당협위원장 18명도 이름을 올렸다. 10·30 재·보선을 앞두고도 그랬지만 내년 지방선거, 7월 재·보선, 멀리는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고 있다.

    “국회의장 빼고 다 해봤다”

    박 대통령 처지에서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역대 정권의 권력 운용을 보면, 현직 대통령과 참모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권력의 누수다. 이를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현재의 구도로 봤을 때 김무성 의원이 당 대표로 등장하면 권력의 원심력이 커질 수밖에 없고, 박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하는 일사불란한 국정 운영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가감 없이 당 운영에 투영시킬 수 있는 인물을 차기 당 대표로 선출함으로써 2016년 4월 20대 총선까지 리더십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청원 전 대표가 그런 역할에 적합한 인물로 선택됐다는 것이 정가의 해석이다. 청와대가 ‘김무성 견제 카드’로 서 전 대표를 낙점해 공천을 밀어붙였다는 의미다. 그러나 서 전 대표는 이런 관측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는 기자들이 그런 부분을 물어보면 크게 역정을 낸다.

    서 전 대표는 차기 당 대표 도전설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선거운동에 한창 몰두하고 있는 서청원 전 대표와 10월 14일 어렵게 통화가 이뤄졌다.

    ▼ 정치에 복귀하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 당의 화합이 최우선이다. 당을 하나로 만드는 데 몸을 던지겠다.”

    ▼ 당 대표에 도전할 김무성 의원 견제를 위해 청와대가 공천을 밀어붙였다는 말도 나온다.

    “당에서 심사를 해서 공천한 거다. 청와대와 상관없다. 당 대표 문제는 김무성 의원을 만나서 분명히 내 입장을 밝혔다. ‘내가 이 나이에 대표 하겠다고 나서겠나, 나를 경쟁 상대라고 절대 생각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해줬다.”

    당 대표 출마설에 대해 서 전 대표의 측근인 박종희 의원은 “만일 김무성 대표 체제가 아니다 싶으면 다른 사람을 도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직접 출마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어지는 서 전 대표와의 대화다.

    ▼ 19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을 맡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는데.

    “당 대표니, 국회의장이니 모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국회에 들어가 당에서 필요한 역할이 있으면 하는 거지, 지금 대답할 처지가 아니다. 나는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뭘 할까 고민하다가 보궐선거 출마라는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고 걷고 있는 거다. 내가 무슨 감투 욕심이 있겠나. 정치를 하면서 국회의장 빼고 다 해봤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국회의장 자리 놓고 황우여 대표나 이인제 의원, 그분들과 경쟁을 하겠나. 그런 욕심 없다.”

    ▼ 당이 화합하려면 친이명박계도 포용해야 할 텐데.

    “9월 중순에 중앙대 후배인 이재오 의원과 단둘이 식사를 했다. 이 의원이 나를 껴안더니 ‘형님 앞으로 잘 지냅시다’라고 하더라. 이 의원에게 서운한 감정도 없지 않았지만 그걸로 다 풀었다. 과거는 다 잊었다.”

    ▼ 서 전 대표의 복귀 등을 놓고 ‘올드 보이의 귀환’이란 말이 나온다.

    “어디부터 올드 보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60대 이상의 신체적·정신적 나이는 실제 나이에 0.8을 곱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그러면 나는 56세다. 무슨 올드 보이냐(웃음). 그리고 실제로 40, 50대 의원 중에도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많다. 야당의 말을 들어주고, 져줄 때는 져줘야 한다. 그런 정치를 하려고 한다.”

    ‘안티 김무성’ 구심점

    서 전 대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당 대표 후보로 차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는 화성갑 보선 후보로 확정되는 순간 이미 자신의 세력을 형성했다. 개인적인 캐릭터로 볼 때 ‘서청원계’가 만들어지기보다는 ‘안티 김무성’ 계열이 서 전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모양새다.

    10월 9일 서청원 후보의 화성갑 선거 사무소 개소식에는 2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 홍문종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를 비롯해 현역 국회의원만 30여 명이 참석했다. 숫자로만 보면 서 전 대표와 김 의원의 당내 영향력은 30대 100(김 의원 역사공부 교실 참석자) 정도인 셈. 그러나 박 대통령의 힘이 급격히 서 전 대표에게 쏠릴 경우 전세가 단번에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

    서 전 대표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선 “서 후보가 7선이 되면 정치에서는 신선의 경지”(황우여 대표)라거나 “의리의 정치인, 통 큰 정치인, 결단의 정치인, 경륜의 정치인”(최경환 원내대표)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개소식에는 내년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도는 나경원 전 의원의 모습도 보였다. 심재철 최고위원과 김영우·정병국·원유철 의원 등 옛 친이계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한 것도 눈에 띄었다. 정병국 의원은 “이제 여권은 친이-친박 구도가 아니라 청와대와 정부에 들어간 주류 친박 인사들과 그렇지 않은 비주류 친박 인사로 나뉘는 구도다. 서 후보가 주류, 비주류와 친이계까지 두루 포괄하기를 기대하며 참석했다”고 말했다.

    서 전 대표는 최근 친이계의 좌장이던 이재오 의원 등을 만나 현 정부 출범 이후의 소외감을 다독거렸다는 후문이다. 박종희 전 의원은 “그동안 당내에서 친이계를 껴안을 사람이 없었는데, 서 후보가 공천 전에 친이계의 이재오·이병석·정의화 의원 등과 식사하고 운동도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소식에서 영남 출신 의원들은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서 전 대표와 가까운 이헌승(부산진을) 의원 한 명만 참석했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김무성 의원을 의식해 불참한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실제로 영남 출신인 조해진(경남 밀양-창녕), 박민식 의원(부산 북-강서갑) 등은 서 전 대표 공천을 끝까지 반대했다.

    강창희 역할 교대론

    “자리 연연 않지만 당에 필요한 역할 있으면 하는 거지”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왼쪽)이 김무성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만일 서 전 대표가 당 대표에 도전하지 않더라도 청와대는 다른 대항마를 내세워 김무성 의원을 견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 전 대표의 한 측근은 “김 의원이 대선 때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아 활동했지만, 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특히 대통령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주변에 사람을 모으고 있으니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들이 배신감을 갖고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는 “아마 (서 전 대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대타로 내세울 것으로 본다. 최경환 원내대표가 될 수도 있고, 이완구 의원이 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연대해서 김 의원 세력에 대응할 수도 있고…”라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정치인은 ‘서청원-강창희 역할 교대론’을 제기했다. 그는 “이번에 당선되면 7선이 되는 서 전 대표가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맡고 친박계인 강창희 의장이 당 대표에 도전해 김무성 의원을 견제하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박종희 전 의원도 “역할 교대론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강 의장은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이던 7인회의 멤버다. 7인회에서 김기춘 비서실장,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배출되면서 ‘올드 보이의 귀환’이란 말이 나온 만큼 강 의장에게 여당을 맡기는 구도도 그다지 낯설지 않다. 강 의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다. 2004년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를 맞았을 때 박 대통령이 당 대표 출마를 망설이자 “이렇게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느냐”며 설득했다는 일화가 있다.

    결국 ‘서청원 대표’ 카드가 김무성 의원 견제를 위한 여권 핵심부의 ‘플랜 A’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가 소장파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서 전 대표 공천을 강행한 것은 누가 봐도 차기 당 대표를 맡기기 위한 포석이다. 국회의장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국회의장감은 현역 최다선인 정몽준 의원(7선)을 비롯해 이인제 의원(6선), 정의화 의원(5선), 황우여 대표(5선) 등 자원이 충분하다.

    서 전 대표는 당장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당 대표 출마에 무게를 두지 않고 있지만, 내년 봄에 정치 상황이 급변하면 박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가 친박 주류의 추대를 받아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수순. 그는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강해 일단 깃발을 올리면 김무성 의원과의 기세 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기에다 청와대의 지원까지 보태지면 내년 지도부 경선은 흥미를 더하게 된다.

    플랜 C, ‘이완구 대표’ 카드

    다만 서 전 대표가 끝내 지도부 경선 출마를 고사할 수는 있다. 김무성 의원과의 돈독한 관계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모두 상도동계 출신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같이 정치를 배웠다. 2008년 18대 총선 때는 서 전 대표가 친박연대를, 김 의원이 친박무소속연대를 이끌었다. 끈끈한 동지애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서 전 대표가 여권 핵심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가동될 수 있는 ‘플랜 B’가 ‘서청원-강창희 역할 교대’ 카드다. 강 의장은 대중정치인 이미지가 약한 점이 흠이다. 6선 의원이지만 17, 18대 국회는 건너뛰었다. 그러나 김무성 의원에 반대하는 친박 주류들이 결집하고 청와대의 힘이 실리면 당 대표 경선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플랜 C’도 상정해볼 수 있다. ‘이완구 대표’ 카드다. 4·24 충남 부여-청양 재선거를 통해 김무성 의원과 함께 국회에 재입성한 이완구 의원은 충청권의 맹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당내 충청권 의원들 사이에서 차기 당 대표감으로 활발하게 거론된다. 특히 서 전 대표가 김 의원을 만나 당 대표에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힌 이후 ‘이완구 대표’ 카드가 힘을 얻고 있다. 이 의원은 재선거 당시 “국회의원 한 번 더 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충청도를 넘어선 전국적인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박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도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12월 당시 충남지사이던 이 의원은 세종시 수정 방침에 반발해 지사직을 전격 사퇴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세종시 원안 고수를 강조하며 이를 수정하려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소신과 원칙, 책임 차원에서 박 대통령과 조금 비슷하다. 그 당시에도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생각이 같았다. 자신이 한 말과 약속에 대해서 철저하게 지킨다는 점에서도 (박 대통령과) 닮았다”고 했다.

    결국 청와대와 친박 핵심부에선 당을 김무성 의원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다양한 대응 카드를 마련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권이 김 의원에게 당 대표직을 맡기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차기 당 대표는 정권 운용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김 의원은 차기 당권을 노릴 뿐만 아니라 이를 발판으로 ‘포스트 박근혜’를 꿈꾸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그가 당 대표가 되면 평소 스타일로 볼 때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역설적으로 ‘이명박 시대의 박근혜’를 표방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청와대가 ‘관리형 대표’를 내세우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권오을 “김무성, 당권 도전할 것”

    김 의원은 당권 도전 의욕을 이미 여러 차례 드러냈다. 그는 4·24 부산 영도 재선거를 통해 여의도에 입성한 직후 필자와 인터뷰하면서 “나는 철저한 당인(黨人)이니까, 당인으로서 멋진 당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다. 동지가 당을 배신하지 않는데 당이 먼저 동지를 배신하는 일이 절대로 없는 당을 만들고 싶다”고 토로한 바 있다.

    현 시점에서 다시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해 통화를 했다. 중국에 머물고 있던 김 의원은 전화를 받았지만 “당분간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 나를 견제하기 위해 서청원 전 대표를 내세웠다는 자극적인 말들이 많이 나와서 난감하다”고 했다. 차기 당 대표 도전 여부에 대해서도 “노 코멘트”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의 핵심 측근인 권오을 전 의원은 “김 의원이 내년 전당대회 지도부 경선에 출마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김 의원의 대항마로 서 전 대표가 나설 가능성은 낮게 봤다. 다음은 권 전 의원과의 대화 내용이다.

    ▼ 서 전 대표의 재등장이 김 의원 견제용이란 해석이 있다.

    “이미 대표를 지낸 분이 다시 하려고 하겠나. 그보다는 국회의장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너무 흥미 위주로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것 같다. 서 전 대표로선 당선이 되면 입법부 수장으로서 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일하고 싶을 것이다.”

    ▼ 그래도 청와대에서 당 대표 출마를 강하게 권유하면 거절하기 어려울 텐데.

    “서 전 대표의 위치쯤 되면 자기 의사가 중요하다.”

    ▼ 김무성 의원의 정치적 장래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최근에 노사관계나 역사 문제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중도 쪽 스탠스에서 우파 입장을 견지해야 되는데….”

    김 의원은 최근 국회 재등원 이후 ‘1호 법안’으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복지지출 증가 등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증가할 경우 국회의 사전 의결을 의무화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최근 자신이 주도하는 당내 근현대사 역사교실 모임에서 우파적 역사 인식을 뚜렷이 한 데 이어 복지 확대 기조에 제동을 거는 법안을 발의해 ‘보수의 중심’에 서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당권 도전을 위한 정체성 다지기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

    ▼ 서 전 대표의 등장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

    “정치 복원의 신호탄이라고 본다. 서 전 대표는 정치를 잘 알고, 야당과도 말이 통하는 분이다. 지금은 당권을 누가 잡느냐, 그런 부분은 지엽적인 문제다. 워낙 정치가 죽어 있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빠지고 있으니 정치를 복원하겠다는 시도 아니겠나.”

    그러나 현 시점은 정치 복원도 중요하지만 당권이 누구에게 넘어가느냐 하는 대목이 향후 정치 스케줄을 감안할 때 큰 의미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만일 내년 초 조기 전당대회가 치러지면 새 당 대표가 6월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실시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공천을 주도하면 누가 대표가 되든 자기 사람을 지방정부에 심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차기 대권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파워게임은 시작됐다

    “자리 연연 않지만 당에 필요한 역할 있으면 하는 거지”

    2008년 6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친박연대, 친박무소속연대 의원들이 한나라당 복당 문제를 논의했다.

    조기 전당대회 가능성이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니다. 현 황우여 대표체제가 전형적인 관리형인 까닭에 청와대나 친박 핵심부가 조기 전당대회라는 모험적인 시도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새 지도부는 당초 예정대로 내년 5월에 선출된다. 임기는 2016년 5월까지다. 이 대목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생긴다. 새 지도부가 2016년 4월에 실시되는 20대 총선 공천권을 상당부분 행사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

    우선 박 대통령 처지에서 보면 무조건 공천권을 장악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는 2018년 2월까지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다음 총선을 통해서 ‘박근혜 키즈’를 대거 배출해야 임기 후반기의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 이 경우 대권 후계자를 선택하기도 수월해진다.

    무엇보다 20대 총선을 통해 박근혜 키즈가 대거 정치권에 들어가면 퇴임 후에도 친박계가 정치권의 주류로 계속 존재할 수 있다. 정권을 내려놓은 뒤에도 안전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문제로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지만 민주당의 주류 세력으로 남은 친노 진영이 방어막을 치고 있는 것처럼, 친박계 역시 2018년 박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자면 2016년 총선 공천권을 확실하게 행사해 박근혜 키즈들을 만들 필요가 있다. 친박계의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임기가 4년 이상 남은 청와대가 차기 여당 지도체제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도 정치권에는 박근혜 키즈들이 있다. 지난해 19대 총선을 앞두고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 대통령은 정치 신인을 대거 발탁했다. 그 결과 당내 절반이 초선으로 채워졌다. 대학교수와 정통관료 출신 등 여러 전문가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차기 총선에서 그들에게 공천을 다시 주고 새로운 키즈를 발굴하려면 당 장악, 즉 공천권 확보가 필수다.

    이런 맥락에서 김무성 의원에 대항할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면 충성도 높은 친박계를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에 대거 입성시키거나 새누리당을 아예 집단지도체제로 바꿔 차기 대표의 힘을 빼야 한다는 의견도 당 주변에서 나온다.

    여러 가지 이유로 ‘김무성 당 대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는 말이 청와대 주변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의원이 정권 초기에 대규모 세(勢) 과시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격노했다고 한다. 그런 기류를 읽은 김 의원은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최근 사석에서 “내 뜻과 달리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쳐 곤혹스럽다. 조금 자제해야 되겠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 전 대표의 재등장으로 여권의 내부 파워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차기 당권을 넘어 대권을 향한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김무성 의원 대신 서청원 전 대표나 강창희 의장을 대표로 앉혀 당에 대한 장악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의중에 맞는 ‘포스트 박근혜’ 후보군을 키워나가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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