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대 중증 질환 100% 건강보험 보장, 65세 이상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영·유아 무상보육….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때 내건 복지공약들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당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이 공약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과연 남은 임기 동안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아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한 달 앞둔 시점에 엥겔계수(가계 소비지출 중 식료품비 비중)가 13.6%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엥겔계수는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감소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은 실질소득과 민생이 해가 갈수록 더 나빠졌다. 절대빈곤과 상대빈곤도 개선될 기미가 없다. 절대빈곤율 8%, 상대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 소득자의 비율) 1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2인 이상 도시 가구 중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 비율은 지난 20년 동안 75.4%에서 65.5%로 줄었고,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국민의 체감 중산층 비율은 46.4%에 그쳤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 지난 10년 사이 자살률은 2.3배나 늘어 OECD 평균의 3배나 되고 강력범죄율도 87%나 늘었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 기간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1.3명에 불과하고, 노인인구는 12.2%로 급증했다. 경제 저성장 추세가 계속되고 있으며 보통 사람의 실질소득은 정체되거나 줄었다. 그러니 국민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 국가 중 32위로 꼴찌 수준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시장 만능의 경제체제와 선별적 복지 중심의 허약한 복지체제 탓이다. 둘의 조합이 양극화와 민생불안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시장과 개인에 모든 책임을 지우고 국가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성찰이 뒤따랐다. 그것이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의 시대적 요구로 떠오른 복지국가 담론이며,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복지국가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다.
시장 만능 + 허약 복지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10%에 불과해 OECD 평균인 2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선진 복지국가들의 25~30%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복지 후진국이다. 지금의 ‘저부담·저복지’를 ‘적정부담·적정복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론이 거의 모아졌다. 속도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누차 강조했듯이 보편적 복지를 포함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확충함으로써 혁신적 성장과 창조경제를 가능케 하는 사회투자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복지 투자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은 이러한 공약을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복지공약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재원이다. 복지공약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결정해야겠지만, 이 글에서는 박 대통령의 주요 복지공약 중 보건복지부 소관 업무를 중심으로 공약을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사회서비스 정책으로 보육과 의료를, 노후소득보장 정책으로 기초연금을, 공공부조 정책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을 각각 살펴보자.
보육
국가가 보육에 개입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소득하위 30%로 시작해 노무현 정부 말기에는 소득하위 50%로 보육료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더욱 확대해 2011년 0~4세의 경우 소득하위 70%, 5세의 경우 모든 계층에 보육료를 지원했다. 2012년에는 0~2세 아이를 둔 모든 계층, 3~4세 아이를 둔 소득하위 70%, 5세 아이를 둔 모든 계층에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으로 확대됐고, 0~2세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는 차상위계층에는 양육수당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0~5세 아이를 둔 모든 계층에 보육료를 보편적으로 지원하고 양육수당도 모든 계층에 지원하도록 했다. 이로써 보편적 보육 체계가 완성됐다.
이명박 정부 중후반에 와서 보편적 보육이 급진적으로 확립된 데는 몇 가지 절박한 이유가 있다. 첫째, 양질의 인적자원 육성. 어린 시기의 보편적 보육이 비용 대비 편익이 가장 좋다는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둘째,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을 높여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셋째, 출산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논리가 먹혀들었다. 넷째, 보편적 보육은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 다섯째, 실질소득의 감소로 개별 가정의 가처분소득 증대가 절실해졌고, 이것이 내수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이러한 논리는 야당의 강력한 지지뿐만 아니라 여당 소장개혁파와 친(親)박근혜 세력의 정치적 선택에 힘입어 중앙정치의 핵심 사안으로 등장했고 제도화에 성공했다. 박 대통령은 보육료를 국가가 전액 지원하고 국공립 보육시설을 매년 150개씩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문제는 재원. 정책 대상이 늘어나는 만큼 중앙정부의 지원 비용과 지방정부의 분담 비용이 급증하는 데 따른 재정 대책이 요구됐다.
동남권 지역주민을 위한 ‘울산지역 암센터’가 지난해 말 울산대학교병원에서 준공식을 갖고 본격 의료서비스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법안은 예산당국의 반대에 막혀 지금까지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며, 지방정부는 보육에 필요한 추가지원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2014년 예산안에 따르면 영·유아 보육료 지원 예산은 3조765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1% 늘었고, 가정양육수당 지원 예산도 1조1209억 원으로 전년 대비 27.2% 늘었다. 이는 주로 지방정부에 대한 국고 보조율을 10%p 인상한 데 따른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복지사업에서 중앙정부의 보조율은 서울이 50%, 지방이 70~80%인데 보육에서는 중앙정부 보조율이 서울 20%, 지방 50%다. 이에 지방정부들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대로 중앙정부 보조율을 20%p 높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수용하는 게 합당하다. 보육 지원은 여야 합의를 거친 국가사업이거니와 지방정부가 추가 재원을 스스로 마련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의료
의료도 사회서비스로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일자리 창출과 함께 인적 자본을 확충하는 창조경제의 원천이다. 그런데 한국은 의료의 공공성이 크게 부족해 OECD 30개 국가 중 건강보험 보장률이 27위다. 실제 발생한 의료비 중 건강보험의 보장이 63%에 그쳐 주요 복지국가들보다 20~30%p 낮다. 공공병원 비중도 7% 정도로, 복지국가들의 50~90%는 물론 미국의 25%에도 크게 못 미치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노인요양 분야도 공공성이 희박하다. 이에 따라 의료 불안이 커져 우리 국민의 70%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현상이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지난 대선에서 공약 경쟁으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의료 분야의 첫째 공약은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75%인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의 보장률(비급여 부문 포함)을 2013년 85%, 2014년 90%, 2015년 95%, 2016년 100%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2월 2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비, 간병비 등 3대 비급여 항목을 보장 대상에서 제외했다. 야권은 “복지공약의 후퇴”라며 반발했고, 이 갈등은 지금껏 잠복해 있다.
먼저 ‘100% 보장’이라고 한 것이 잘못이다. 최근 암 사망 2주 전에 앰풀당 1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항암제를 무의미하게 사용하는 사례를 개탄한 서울대병원 암 전문의의 문제 제기는 행정적 통제에 실패한 100% 보장의 허점을 잘 드러냈다. 4대 중증질환을 경제적 부담이 큰 다른 질환들과 차별한 것도 문제다.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은 주원인인 선택진료비 등 3대 비급여 항목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선택진료비는 낮은 의료수가의 보전책인데, 전체 비급여 진료비의 26.1%, 대학병원 총 진료비의 6.5%를 차지하는 ‘알짜 수익’이므로 폐지는 하되 대학병원들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빅딜’이 필요하다. 상급병실비와 간병비도 우선 낮은 수준에서라도 단계적으로 급여화해가야 한다.
둘째 공약은 ‘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환자 본인부담 의료비 경감’ 공약이다. 현재 1년간 총 본인부담 급여진료비가 건강보험료 하위 50% 계층은 200만 원, 중위 30% 계층은 300만 원, 상위 20% 계층은 400만 원을 초과할 경우 초과한 본인부담 금액을 국민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데, 이것을 소득수준에 따라 10등급으로 구분해 저소득층에게 유리하도록 본인부담 상한제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약은 대통령직인수위에서 7단계로 세분해 저소득층의 상한액을 낮추고(200만 원→120만 원), 고소득자의 상한액을 높이는(400만 원→500만 원) 쪽으로 조정됐다.
문제는 상한선을 정할 때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의 본인부담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이러한 정책으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힘들고,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도 어렵다. 이를 개선하려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에 드는 비용을 감안해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본인부담 상한제를 기획해야 한다. 여야를 떠나 이것이 의료정책의 본령에 제대로 접근하는 것이다.
건강보험료 인상 불가피
셋째는 ‘65세 이상 어르신 중 임플란트가 필요한 대상자를 기준으로 어금니부터 건강보험을 적용해 단계적으로 부위별로 확대 적용하고, 신체적 장애가 있는 치매환자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에 우선 편입하겠다’는 공약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75세 이상의 임플란트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도 신체적 장애가 있는 치매환자를 대상으로 치매특별등급이 신설돼 수혜자가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노인장기요양 대상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의 본질적 취지를 달성하려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이 크게 늘어나야 한다. 노인장기요양시설의 공공성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요양시설의 공공성을 단계적으로 높여 ‘공공-민간 혼합’의 장점을 구현하려면 정부 재정의 추가 투입이 필수다.
국민건강보험의 연간 재정규모는 약 43조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6조 원은 정부 재정(일반회계+건강증진기금)이 투입된 것인데, 건강보험료 수입 37조 원의 약 16%에 해당한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기업과 고용주에게는 부담이겠으나 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건강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게 옳다.
그런데 내년도 건강보험료는 1.7% 인상에 그쳤다. 정부의 재정지원도 전년 대비 7% 인상에 머물렀다. 공공병원 확충과 관련해서도 지방의료원 기능보강 예산이 지난해보다 80억 원쯤 늘었지만, 이 정도로는 공공병원을 늘릴 수 없다. 이런 소극적인 의료정책으로는 백년대계는커녕 임시적 대증요법에도 부족하다. 건강보험 보장성의 획기적 확충과 관련된 재원조달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언급한 ‘국민 대타협’이라는 정치·사회적 공론화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기초연금
복지·노인단체 회원들이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공약 등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 성실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 공약을 내년 7월부터 시행한다는 계획 아래 기초연금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고, 2014년도 관련 예산으로 전년(3조2097억 원)보다 1조9905억 원 늘어난 5조2002억 원을 배정했다. 6개월에 약 2조 원씩, 연간 4조 원을 늘린 셈. 그런데 65세 이상 인구 614만 명에게 공약대로 기초노령연금의 2배인 20만 원씩을 매월 지급하려면 연간 14조7360억 원이 필요하다. 연간 11조5263억 원의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대선공약을 후퇴 또는 파기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핵심 쟁점은 2가지다. 수급대상을 공약처럼 65세 이상 노인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하위 70%의 노인으로 제한한 점, 소득하위 70% 노인에 대해서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10만 원부터 20만 원까지 차등 지급하기로 한 점이다. 전자는 재정 여건과 복지 우선순위를 고려해 공약을 일부 수정하거나 이행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국민적 공론화를 거쳐 소득상위 20~30% 노인에 대해서는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쪽으로 합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득하위 70~80% 노인에 대해서는 차등지급이 아니라 약속대로 월 20만 원씩 지급하는 게 바람직하다. 재정 상황으로 인해 이것조차 어렵다면 A값의 7.5%인 월 15만 원씩 지급하고, 단계적으로 금액을 늘려 공약한 A값의 10%에 도달할 수도 있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 연계 방안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훼손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가장 큰 문제는 소득대체율이 낮은 것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 당시 40년 가입 기준으로 70%의 소득대체율로 설계됐으나 기금 고갈을 우려해 1999년 60%, 2008년 50%로 낮아졌다. 2009년부터는 매년 0.5%p씩 낮아져 2028년에는 소득대체율이 40%로 떨어질 전망이다. 납부 예외자 비율이 전체 대상자의 30%에 달해 사각지대가 넓은 것도 문제다.
국민연금이 보편적 노후소득보장의 중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적절한 소득대체율이 확보되고 사각지대가 해소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연금이 최대한 보편성을 갖도록 해서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대체율을 보완해야 하며,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 확보와 더불어 납부 예외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절실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
공공부조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공약은 이렇다. 첫째, 부양의무자에 대한 소득인정액 기준을 상향 조정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재산의 소득환산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를 축소한다. 둘째, 현행 기초생활보장의 통합급여체계를 ‘맞춤형 급여체계’로 확대 개편한다.
사회적 요구를 대부분 담아낸 공약이지만 여기서도 재정이 문제다. 이 공약을 완벽하게 실천하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기초생활보장 재정을 모두 합한 연간 10조5000억 원이 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2.8%를 최소한 4~5%로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공약을 실효성 있게 지키려면 연간 4조 원 정도는 더 필요하다고 한다. 재원 투입 없이 현행 통합급여체계를 해체하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 될 것이다. 기초생활보장 부문의 2014년 중앙정부 예산은 전년 대비 3.1% 늘어난 8조8169억 원에 불과하다. 현행 통합급여체계의 해체와 개별급여체계로의 전환은 바람직한 정책방향이긴 하지만, 충분한 예산 확보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세상을 바꾸는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5년간 총 134조5000억 원, 연평균 27조 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5월 31일엔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가계부의 총 소요 재정은 134조8000억 원인데, 세입 확충으로 50조7000억 원, 세출 절감으로 84조1000억 원을 조달하겠다고 했다.
이후 공약 이행을 위한 총 소요 재정이 과소 추계됐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가령 공약가계부에서 기초연금에 17조 원을 편성했는데, 실제로는 50 조 원이 들어가는 공약인 탓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급여체계를 개편하는 데 6조3000억 원을 책정했는데, 이것도 최소 15조 원이 들어가는 일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부분에는 5년간 2조1000억 원을 책정했지만 여기에도 최소 10배 이상의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
재원 조달 계획도 비현실적이다. 비과세·감면 정비로 18조 원, 지하경제 양성화로 27조2000억 원을 조달한다는데, 이런 성과는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낮다. 또 세출 절감으로 84조 원을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지난 정부에서도 추진했지만 성과가 미미했고 현실성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결국 기업과 국민이 더 부담하는 게 정도(正道)다. ‘증세 없는 복지’는 가능하지 않다. 공론을 통한 국민 대타협이 절실하다. 경제부처도 지나치게 보수적인 생각을 수정해야 한다. 불평등과 격차를 개선하고 경제와 복지의 통합적 발전이 가능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려면 지금보다 공적 영역이 더 커져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세금을 너무 적게 내고, 그래서 정부 재정 규모가 너무 작다는 데 있다.
2012년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GDP의 20.2%인데, 이는 북유럽의 33%나 OECD 국가 평균 25%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도 정부는 조세부담률을 2017년까지 21%로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저부담·저복지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2017년까지 조세부담률을 최소한 22~23%까지는 올려야 한다. 조세 정의의 강력한 실천과 함께 법인세의 최저한세율을 높이고, 근로소득세의 최고구간을 신설해야 한다. 이에 더해 세율을 누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공론화하고 합의해야 한다. 또한 우리 기업들은 사회보장 기여금을 매우 적게 부담하고 있으므로 법인세 등의 추가 부담 여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