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호

커튼콜, 한국 뮤지컬의 완성

  • 고희경│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입력2013-10-22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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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튼콜, 한국 뮤지컬의 완성

    뮤지컬 ‘맘마미아’.

    막이 내리고 잠시 암전. 장엄한 엔딩을 즐기려고 한 순간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슬프게 죽어가던 주인공이 활기차게 뛰어나오며 외친다.

    “준비됐습니까, 시작해볼까요? 소리 질러!”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진 뮤지컬은 끝났지만 새로운 콘서트가 시작된다. 이름하여 커튼콜. 공연 때 나온 뮤지컬 넘버 중 분위기를 띄울 만한 신나는 곡 두세 가지를 부르고, 관객은 객석에서 일어나 박수 치고 춤추며 함께 참여한다.

    ‘맘마미아’의 커튼콜 콘서트

    커튼콜을 특별한 콘서트 형식으로 만든 사례는 국내 공연에서 ‘맘마미아’가 처음인 것으로 기억한다. 스물두 곡의 아바 음악을 넣어 만든 ‘맘마미아’는 40대 싱글맘 도나의 외동딸 소피가 결혼식을 앞두고 아버지를 찾는 하룻밤 소동을 그린 뮤지컬.



    공연이 끝나는가 싶으면 갑자기 무대 천장에서 수십 대의 조명기가 장착된 대형 구조물이 내려오고 무대는 무도회장으로 바뀐다. 아바 음악의 대표곡인 ‘워털루’ 반주가 뮤지컬 공연 볼륨보다 훨씬 더 크게 연주되면서 1970년대풍 ‘반짝이’ 의상과 키높이 통굽 구두를 신은 신사숙녀들이 재등장한다.

    그리스풍 호텔의 하얀 회벽 두 개와 약간 경사진 바닥이 고작인 ‘맘마미아’ 세트는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오페라의 유령’이나 헬리콥터 한 대를 무대에 세우는 ‘미스 사이공’에 비하면 저예산 뮤지컬이 아니냐고 물어올 정도로 단출하다. 이에 비해 ‘워털루’ ‘맘마미아’ ‘댄싱퀸’ 세 곡을 부르는 커튼콜 세트에 투자하는 조명, 음향 장비의 규모는 대형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2004년 공연 초기에는 ‘기획된 커튼콜’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관객들이 적잖이 당황했다. 게다가 오페라극장의 엄숙함과 한껏 달아오른 대형 콘서트장의 에너지가 잘 어울리지 못했기에 관객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어나서 춤을 추고 싶기는 한데, 우아한 오페라하우스에서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해도 되는지 눈치를 봤다.

    관객의 반응은 좋았지만, 커튼콜에서 어색해하는 관객들을 보고 분위기 반전을 위한 ‘커튼콜 부대’ 열댓 명을 투입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직원들부터 무대 스태프까지 젊은 축들이 커튼콜 부대였다. ‘워털루’ 반주가 나오면 이들은 벌떡 일어나 가볍게 몸을 흔들고 박수를 쳤다. 뒤에서 그 광경을 본 관객들이 ‘어, 여기서 이래도 되는가보네’ 하면서 뒤따라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춤추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분위기를 만들어준 셈이다. 커튼콜 지원부대는 일주일 안에 철수했고 이후 공연 내내 객석에선 관객 스스로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기 시작했다.

    감사 인사에서 이벤트로

    ‘맘마미아’ 이후 한국 뮤지컬에서 커튼콜은 공연의 중요한 대목이 됐다. 관객의 반응이 훨씬 뜨겁고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때로는 공연 내용과 상관없는 커튼콜, 본 공연은 대충 만들어놓고 억지 박수를 유도하는 커튼콜이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내용에 불만이 있어도, 귀에 쏙 들어와 박히는 음악 없이 공연이 끝나도 볼륨이 크고 군무(群舞)가 딸린 뮤지컬 넘버 서너 곡을 커튼콜용으로 이어 편집해 기획하는 것은 한국 뮤지컬만의 특징이다.

    커튼콜은 이름 그대로 막이 내린 후 퇴장한 출연진이 관객의 박수에 답하기 위해 무대에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영어의 다른 표현은 final bow, 즉 감사 인사인 셈이다. 뮤지컬 공연에서는 앙상블부터 조연, 주인공 순으로 차례로 무대에 올라와 관객의 박수에 답하는 것을 말하는데, 한국 뮤지컬에서 커튼콜은 final event, final concert가 돼버렸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얼마 전 막을 내린 ‘레 미제라블’ 커튼콜에선 나 자신도 허전함을 느꼈다. 평소 지나친 커튼콜에 불만이 있기도 했지만, 출연진의 감사 인사 외에 노래 한 곡도 더 불러주지 않는 공연이 못내 서운했다. 관객들은 객석을 나가면서도 행여 노래 하나 더 불러주지 않을까,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새로 시작하지 않을까 힐끔힐끔 뒤를 돌아봤다. 제작사 얘기를 들어보니 영국의 원 저작권사에서 커튼콜 공연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래로만 연결된 송 스루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공연 내내 부르는 뮤지컬 넘버가 다른 뮤지컬의 두 배 이상으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런 힘든 공연을 끝내고 배우에게 또 뭔가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을 게다.

    사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콘서트형 커튼콜은 특별한 경우에만 한다. ‘맘마미아’나 ‘위 윌 록 유’는 예외적이다.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팀이 내한공연을 할 때도 커튼콜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일이 전혀 없었다. 같은 작품이라도 라이선스 공연을 할 때에는 한두 곡의 커튼콜이 이어진다.

    관객도 무대의 주인공

    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작곡가 이영훈의 장례식을 상징하는 엄숙한 엔딩 뒤 전 객석에서 펄쩍펄쩍 뛰어야 하는 ‘붉은 노을’을 함께 부르는 분위기가 됐을 때 무척 불편했다. 나는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는데 앞좌석 사람이 일어나니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내 개인적인 불만은 창극 ‘서편제’를 보다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안숙선 명창이 좋은 소리를 낼 때마다 ‘얼쑤’ 하고 싶었지만 폼 나는 의자에 앉아 소리를 던지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판소리는 추임새를 넣어야 소리가 완성된다. 객석에서 ‘얼쑤’를 적절히 넣어주어야 소리하는 사람이나 북을 치는 사람이나 흥이 나서 공연을 계속하게 된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 없이 마당에서 벌어졌던 우리 공연 문화의 반영이다.

    서양의 극장 문화는 무대 위와 객석의 구분이 명확하다. 액자 틀 안에 공연을 완벽하게 넣어놓고 그 세계의 완성을 즐긴다. 우리는 다르다. 관객도 무대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참여하고 함께 소리 지를 때 존재 이유를 찾는다.

    커튼콜, 한국 뮤지컬의 완성
    고희경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 불문과 졸업, 서강대 언론대학원 석·박사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교육사업팀장,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극장장

    2005년 기획공연 ‘갈매기’로 올해의 예술상 대상, 동아연극상 기획특별상 수상

    現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공연예술 뮤지컬 전공),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장·국제교류홍보실장, 동아일보 독자위원회 제3기 위원


    한국의 뮤지컬 커튼콜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이러한 우리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외국 아티스트가 한국에서 공연하고 나서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것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참여하고자 하는 열기다. 억지 춘향 격 커튼콜이 가끔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역시 뜨거운 커튼콜, 기획된 커튼콜은 K뮤지컬만의 특징이다. 공연에서는 별도 커튼콜이 없던 ‘레 미제라블’. 영화를 보니 엔딩 곡으로 바리케이드 신의 웅장한 합창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흘러나온다.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K뮤지컬 커튼콜을 살짝 훔쳐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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