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하고 지혜로운 한식의 가치 새삼 실감
- 田園에서 남편과 산책하고 쌍둥이 키우는 행복
- 대학 시절로 돌아가 남편과 더 일찍 만났으면…
- 거짓말 유포, 악플 때문에 배우생활 회의 들기도
- 연기보다 육아가 우선…작품 좋다면 비중 줄어도 OK
그는 9월 17일 한식(韓食) 불모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한식을 알리는 만찬 행사를 열어 화제가 됐다. 패션 브랜드 구찌의 지역사회공헌 프로그램 ‘나의 사랑 문화유산’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지난 4월부터 이 캠페인의 홍보대사를 맡은 그는 8월엔 DMZ(비무장지대) 평화대사로 위촉됐다. 모두 연예활동보단 국익에 무게를 둔 직함이다.
‘신동아’는 정상의 자리에서 반듯한 이미지를 지켜왔고 각종 기부를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그를 창간 82주년 기념호를 빛낼 ‘핫스타’로 섭외했다. 2009년 정호영 벨애틀란틱코리아 회장과 결혼해 쌍둥이 남매를 낳은 그는 가사와 육아에다 올 초에 문 연 공방 운영까지 돕느라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시간을 냈다.
10월 4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리아네이처’ 공방 접견실. 엷은 메이크업에 단아한 투피스 차림의 이영애는 화보 촬영이 끝나자 A4용지 여러 장이 든 파일을 내밀었다. 미리 보낸 질의서에 대한 답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옆에 있던 정 회장이 “집사람이 이걸 새벽 2시까지 썼다”고 귀띔하자 이영애는 “생각을 정리하려고 써봤는데 구술로 푸는 것보다 힘들더라”며 기자가 꺼내 든 녹음기에 관심을 보였다.
“아, 이거 옛날 브랜드네요. 저도 갖고 있어요(웃음).”
신비주의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그는 속내를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상대의 말을 재미있게 들어주는 넉넉한 웃음, 남편을 ‘여보’라 부르며 깍듯이 존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인터뷰는 이날 들은 얘기에 그가 써온 답변을 보태 정리했다.
‘韓食 문화 전도사’
▼ 구찌의 ‘나의 사랑 문화유산’ 캠페인 홍보대사를 맡았는데….
“명분이 명확했어요.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 명품 브랜드가 우리나라에서 기부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런데 구찌는 우리 문화유산 연구에 5억 원을 기부했어요.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기부를 하는 브랜드라서 홍보대사로 선뜻 나설 수 있었어요.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동참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고 시너지를 내보자는 생각으로.”
▼ 최근 피렌체 한식 만찬이 큰 관심을 모았는데, 현지 반응은 어땠습니까.
“참 좋았어요.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꽃 핀 곳이라 의미도 있었고요. 그곳에서 한식의 깊은 맛과 우수성을 알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일식당과 중식당은 있는데 한식당은 없어선지 현지의 많은 매체에서 관심을 갖고 참석했어요. 음식 준비를 함께 한 우송대 학생들에게 한식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준 것도 뜻 깊은 일이었죠.”
▼ 어떤 메뉴가 인기였습니까.
“갈비찜과 인삼 스무디, 연밥 등 대부분의 요리가 인기 있었어요. 좀 매운 음식도 좋아했고요. 전체적으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음식이 새로 나올 때마다 몸에서 어떤 효능을 발휘하는지 설명을 곁들였더니 다들 무척 신기해하며 만찬에 더 집중했어요.”
▼ ‘한식 문화 전도사’로 불리던데요.
“그런 타이틀에 어울릴 만큼 제가 한 일이 별로 없는 걸요. 단지 ‘대장금’에 출연하면서 한식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됐고, 결혼해 쌍둥이를 낳고 엄마가 되니 가족을 위한 건강 식단을 자연스럽게 찾아보게 됐죠. 요리를 하면서 선조들께서 물려주신 우리 음식이 얼마나 건강하고 지혜로운지 새삼 깨달았고 자랑스러웠어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훌륭한 한국 음식이 아직도 세계인의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10월 7일 그는 MBC가 드라마 ‘대장금’ 방송 1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다큐 스페셜 ‘대장금 루트를 가다’에 출연했다. 그의 대표작 ‘대장금’은 세계 91개국에 수출된 한류 드라마의 대장주다. 국내 최고 시청률이 57.8%에 달했는데 해외에서는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대장금’을 못 보게 한다는 이유로 자살소동이 벌어졌고, 최근 이 드라마를 방영한 스리랑카에서는 9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 ‘대장금’ 방송 10주년이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10년 전 제작 발표회 때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김치 같은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장금’을 사랑해주시는 팬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근 스리랑카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종영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신동아’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역경을 딛고 최고의 궁중 요리사이자 어의(御醫)가 되는 ‘장금이’ 이영애는 지금 스리랑카의 ‘국민 요정’이다. 달리는 택시는 물론 영어학원 간판과 재봉사 모집 광고에도 그의 사진이 붙어 있다. ‘대장금’ 주제곡이 거리에 울려 퍼지고 한복과 비녀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영애는 이런 사랑에 보답하고자 스리랑카에 ‘이영애 장학재단’을 설립해 10만 달러를 기부했다.
주부 대장금
▼ ‘대장금’ 찍을 때의 기억이 새롭겠네요.
“전국을 다니며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먹던 추억, 곳곳의 그림 같은 풍광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겨울 맹추위와 졸음, 많은 대사량으로 힘들었지만 어디를 가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반갑게 맞아줘서 잘 이겨낼 수 있었어요.”
▼ 방송 전부터 ‘대장금’의 인기를 예감했습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고문헌에 몇 줄밖에 안 나오는 수백 년 전 인물을 세상에 처음 알린다는 희열도 있었고 내용도 훌륭했어요. 인기를 떠나 연기하는 보람이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아하는 요리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출연을 결정했어요. 아기아빠도 ‘드라마가 안 되더라도 궁중요리를 배울 수 있지 않으냐’면서 출연을 적극 권했죠(웃음).”
▼ 드라마를 하면서 요리 자격증을 땄다면서요.
“한복려 선생님께 궁중요리를 단기코스로 배웠는데 그게 와전된 것 같아요.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재미있어요.”
▼ 평소 자주 하는 요리는.
“우리 쌍둥이가 불고기와 잡채를 좋아해서 자주 하는 편이에요. 아이들에게는 영양소를 골고루 안배해 채소, 생선, 고기, 된장국 같은 제철음식 위주로 요리를 해줘요. 아기아빠는 특별히 가리는 건 없는데 생선을 좋아해서 생선요리를 자주 해주고요.”
▼ 정부 차원의 한식세계화사업이 성과를 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글쎄요…훌륭한 전문가가 많으니 그분들의 의견과 해외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의 경험을 반영해 추진한다면 좋은 성과를 내지 않을까요.”
▼ 피렌체에서 유창한 영어로 한식을 소개했다죠?
“유창하지는 않고, 대화를 좀 할 수 있는 정도예요.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아요.”
▼ 독일어도 잘하겠네요, 한양대 독어독문학과 출신인데….
“전공은 했지만 남의 나라 말이라 그런지 잘하진 못해요.”
▼ 주부가 되면 자기계발에 소홀해지던데.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상상 이상이에요. 쌍둥이는 키우기가 배로 힘들어요. 이렇게 가사와 육아로 바쁜 중에 자기계발을 하려니 쉽지 않아요. 남편과 가족의 이해와 도움, 사회제도적인 많은 뒷받침이 있어야 해요. 저는 일에만 전념하다 늦게 결혼하고 출산해서 그런지 가족이 제 마음에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어요. 행복한 가정을 위해 건강한 환경과 먹을거리, 육아에 관심을 갖고 늘 공부하는 자세로 즐겁게 배우고 있죠.”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면.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다질 수 있는 사랑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 무엇보다 믿음이 중요해요. 제 생각이기도 하고 아기아빠 생각이기도 하죠. 이 근처를 함께 산책하고 드라이브를 자주 하면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같은 편이라 편한 부부
그를 만나기 전 근처 커피숍에서 정호영 회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아내는 조선시대 여자 같다. 배우로서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살아왔을 뿐 아니라 남편 얘기를 잘 들어주고 아이들에게도 지극정성이다. 부부가 같이 살다보면 외모보다 사람 됨됨이에 더 마음이 가는데, 참 착하고 성실한 면이 아내의 매력”이라고 털어놨다. “내가 아이디어를 내면 맞장구를 치면서 ‘천재 같다’며 리액션을 크게 한다”고도 했다. 그 얘기를 꺼내자 이영애가 큰 소리로 웃었다.
“맞아요, 우리 아기아빠 천재예요. 유능해요. 옆에서 보니까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사업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사업은 사업하는 사람이 해야 해요. 저는 제 할 일을 하면 되고.”
▼ 여느 부부보다 소통을 많이 하는 것 같네요.
“뒷담화를 즐겨요, 하하. 부부가 편한 게, 같은 편이잖아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새나갈 염려가 없고. 그게 장점이니까 어떤 얘기든 서로 들어주죠. 전원생활을 하면서 같이 얘기할 기회가 더 많아졌어요. 산책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으니까. 이런 생활이 참 좋은 것 같아요.”
▼ 자주 가는 산책 코스는.
“인근 중미산 휴양림이나 집 근처 산을 산책해요. 특히 문호리 북한강변 산책로는 경치도 좋아 자주 찾아요.”
▼ 장도 같이 보나요.
“거의. 갈 데가 없어요. 장 보는 곳밖에. 우리 아이들이 처음 깨친 단어도 개구리, 거미, 마트, 이런 거예요(웃음).”
두 사람은 2009년 8월 미국 하와이에서 친지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정 회장이 미국 시카고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때 친분을 쌓은 교회 목사가 주례를 섰다.
▼ 결혼식을 왜 극비리에 했나요.
“극비리에 한 게 아니라, 양가 부모님이 다 연로하셔서 기자들이 북적이지 않는 조용한 결혼식을 원하셨어요. 저를 늦게 보셔서 친정어머니는 지금 70대 후반이고, 아버지는 80대 중반이에요. 남편의 친인척도 대부분 미국에 계세요. 그래서 결혼식을 미국에서 한 거예요.”
▼ 남편의 어떤 점이 특히 좋아서 결혼을 결심했나요.
“무척 섬세하게 챙겨주는 스타일이에요.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더 좋아졌어요. 근데 지면에 좋은 점만 말하면 ‘안티’ 생기잖아요, 하하. 물론 단점도 있죠. 근데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는 게 장점이죠. 단점 얘기하면 남편이 삐치니까 우리끼리 따로…(웃음). 어쨌든 중요한 건 얘기도 잘 통하고 자상한 거예요. 아이들도 아기아빠를 저보다 더 잘 따르고 좋아해요.”
▼ 부부싸움은 안 합니까.
“싸움까지는 아니지만 다툴 때도 있죠. 안 다툰다는 건 거짓말이죠.”
둘 중 누가 먼저 사과하는지 묻자 이영애가 먼저 손을 든다. “아기아빠가 의외로 소심하다”는 그의 ‘선방’에 질세라, 정 회장도 한마디한다. “(혈액형이) A형이라서 그래요.” 정 회장의 소심한 방어로 이영애의 완승이 명백해지자 일동 웃음!
둥이 엄마의 전원생활
▼ 서울에서 나고 자라 전원생활이 불편할 법도 한데요.
“처음엔 적응이 잘 안 됐는데 지금은 오히려 여기가 더 편해요. 서울에 있으면 집에 빨리 가고 싶어져요.”
▼ 공기 좋은 데서 살아선지 피부가 참 고와요. 불혹을 넘어서도 ‘물광’ 피부를 유지하는 비결은.
“유해성분 없는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하는 것 외엔 비결이랄 게 없어요. 서울에서 문호리로 이사한 지 1년이 넘어가는데, 여기 살면서 피부 관리실에 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어요. 좋은 공기와 물, 맑은 하늘, 푸른 산과 함께하면서 심신이 편해지고 피부가 건강해지는 걸 확연히 느껴요. 자연이 이래서 좋구나 싶어요.”
▼ 집에서는 화장을 안 하나요.
“거의 안 해요. 자외선 때문에 선블록 제품과 수분크림 정도만 발라요. 화장품 CF를 열아홉 살 때부터 20년 넘게 하면서 많이 배웠는데, 피부 미용을 위해선 무엇보다 유해성분 접촉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죠.”
1990년 투유 초콜릿 CF로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이듬해 마몽드 화장품 CF에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다. 광고 카피인 ‘산소 같은 여자’로 불린 것도 그때부터다. 이후 화장품 CF 출연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그간의 경험과 나름의 피부 관리 노하우가 지금 하는 클렌저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 공방에서 만드는 것도 자연주의 화장품이죠?
“우리는 너무 화학적인 느낌을 주는 ‘화장품’대신‘피부보호제품’이라고 해요.”
이영애와 정 회장은 ‘리예스’라는 회사의 실질적 대주주다. 정 회장은 “아기 물티슈에서 유해성분이 나왔다는 보도를 보고 주부들이 안심하고 쓸 수 있는 클렌저 제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3년 전 이 회사를 설립했다”고 했다. 공방에서는 리예스의 대표 브랜드인 리아네이처 클렌저 제품을 만든다. 이종무 리예스 대표는 “6월 서울 삼청동에 리아네이처 매장을 오픈했는데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가 늘어 그 새 매출이 2배나 뛰었다”고 했다.
▼ 사업하면서 어려움은 없나요.
“어려움은 아기아빠가 잘 알죠. 저는 홍보와 아이디어 제공을 주로 해요. 저도 엄마니까 아이를 직접 목욕시키고 피부보호제를 발라주면서 느낀 점을 조언하죠. 아직 시작 단계니까 어려움이 없을 순 없지만, 우리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고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자연의 선물
양평 문호리 공방에서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영애.
“힘들죠. 쌍둥이 카페나 커뮤니티에 종종 들어가요. 글을 쓰진 않고 ‘눈팅’(눈으로만 보는 것)만 하는데, 쌍둥이 엄마들은 정말 대단해요. 아기아빠와 쇼핑하다 보면 먼저 인사를 하세요. ‘저도 쌍둥이 엄마예요’라고. 쌍둥이 엄마들끼리는 공감대가 일반 엄마들보다 몇 배는 커요. ‘둥이 엄마’로서 둥이 엄마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뭔지 남편과 상의하곤 해요.”
리예스의 유아 전문 브랜드는 ‘베이비 트윈스’. 이영애는 “로고에 쌍둥이 남매를 연상시키는 토끼 두 마리를 넣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 그렇다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니겠죠?
“아이들을 보는 매 순간이 즐겁고 행복해요. 쌍둥이라 힘들 때도 있지만 쌍둥이라서 즐거움도 배가돼요. 우리 쌍둥이가 질투가 심해 아빠한테 뽀뽀도 못하게 해요. 출근하는 아빠에게 뽀뽀를 하려고 하면 쌍둥이가 똑같이 소리를 질러요. 얼마나 우스운지…. 요즘은 아들과 딸이 서로 대화를 하는데, 말이 늘어서 듣고 있으면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2011년 2월 그가 자연분만으로 낳은 쌍둥이 남매, 승권 군과 승빈 양의 사진이 인터넷에 뜨자 네티즌들은 “둘 다 인형처럼 예쁘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태몽을 꿨기에 그렇게 예쁜 쌍둥이 남매를 얻었냐고 묻자 이영애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꿨는데 비밀이에요. 밝은 꿈을 꿨어요.”
▼ 쌍둥이를 낳을 거란 계시가 있었나요.
“태몽이 다 그렇잖아요. 꾸고 나서 기분이 좋았어요.”
▼ 이영애 씨 어머니는 무슨 태몽을 꾸셨답니까.
“이것도 실은 비밀인데…보석 꿈을 꾸셨대요. 금반지를 여러 개 끼는 꿈.”
▼ 아이들도 전원생활을 좋아하나요.
“둘 다 이곳을 무척 좋아해요. 집 앞에 밤나무, 잣나무가 있어요. 요즘 밤도 떨어지고 잣 열매도 한 움큼 떨어져서 아이들과 주워 그 자리에서 까먹었는데 맛이 정말 차원이 달랐어요. 손만 뻗으면 제철음식이 있는 곳이라 여름에는 아이들과 딸기 따 먹고, 가을엔 바로 수확한 옥수수를 먹고, 그런 재미가 쏠쏠해요.
얼마 전 승권이가 ‘엄마! 공기가 맛있어’라고 해서 남편과 놀란 적이 있어요. ‘동생 이리 오삼. 숨 좀 쉬어봐. 너무 좋아.’ 이런 표현도 하고요. 자연을 듣고 마시고 온몸으로 느끼니 감성도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책으로 보는 것보다 자연의 이치를 쉽게 이해하고, 언어도 자연에서 많이 접한 순서대로 깨우치고요. 정서적으로도 큰 배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갈 때가 되면 저도 학부모인지라 교육에 대해 고민을 좀 하겠지만, 그전까지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쁨을 많이 누리게 해주고 싶어요.”
▼ 지난해 한국식 교육으로 우수한 성적을 내는 뉴욕 할렘가의 학교를 도운 일이 화제가 됐습니다. 지금도 돕고 있나요.
“네, 요청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한 학생들이 자랑스러워요. 한 학생이 DMZ를 방문한 후 평화를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며 유엔 입성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한다는 소리를 듣고 기쁘고 뿌듯했어요.”
역사교육에 아쉬움
▼ 기부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결혼 전에는 불우이웃을 도와야 된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기부를 했는데, 가정을 갖고 쌍둥이를 낳아 키우다보니 불행한 아이들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아요. 그들의 안쓰러운 모습이 가슴에 남아 자꾸 눈앞에 어른거려요. 그 아이들이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힘닿는 데까지 돕고 싶습니다. 사실은 저보다 아기아빠가 관심이 많아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 그곳 기부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 좋은 일을 많이 한 오드리 헵번이 롤모델인가요.
“여배우로서 사회봉사활동을 열심히 한 오드리 헵번도 본받을 점이 많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보니 가정을 돌보고 자녀의 육아와 교육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아계발에 힘쓰는 모든 엄마가 제 롤모델이에요.”
▼ 한국식 교육을 부정적으로 보는 학부모도 적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좋다, 나쁘다고 하기는 힘들어요. 아직 제 아이를 교육기관에 보내 본격적인 교육을 시켜보진 못했으니까요. 제 경험에 비춰보면, 한국식 교육에 장점이 많기에 그렇게 교육 받고 자란 한국인이 어디를 가나 경쟁력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전보다 역사교육을 등한시하는 게 좀 아쉬워요.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역사교육이 이뤄졌으면 해요.”
▼ 조기유학이나 국제학교 입학 경쟁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데요.
“저희 부부는 가급적 아이들을 엄마 아빠 곁에 오래 두고 사랑을 함께 나누면서 가르칠 계획입니다. 화목한 가정과 따뜻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 배우생활과 아이 키우는 주부생활 중 어느 쪽에 더 애착이 가나요.
“주부의 삶이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저만의 울타리가 있다는 게 든든해요. 배우를 하건, 뭘 하건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니까요. 가정은 제 삶을 지탱하는 큰 뿌리죠.”
그는 1993년 SBS 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로 연기에 입문했고, 1997년 최민수와 함께 주연한 영화 ‘인샬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선물’(2001) ‘봄날은 간다’(2001) ‘친절한 금자씨’(2005),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1995) ‘서궁’(1995) ‘파파’(1996) ‘동기간’(1996) ‘의가형제’(1997) ‘애드버킷’(1998) ‘파도’(1999) ‘초대’(1999) ‘불꽃’(2000) ‘대장금’(2003~4) 등 많은 작품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 이후 연기 활동이 뜸해져 아쉬워하는 팬이 많다. ‘대물’ ‘선덕여왕’ 등 여러 작품이 그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국가대표 배우로 산다는 것
▼ 이제 연기를 안 할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출연 섭외는 계속 들어와요.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인터뷰와 토크쇼 출연 요청도 많았는데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쌍둥이를 키우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볼 시간도 없었는데, 한식 만찬 행사를 위해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에서 ‘광해, 왕이 되다’와 ‘베를린’을 봤어요.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내용도 참 좋더라고요. 좋은 작품이 있으면 장르에 상관 없이 출연할 생각이에요. 오랜만에 하는 거라 좀 참신한 작품을 하고 싶은데, 마침 다큐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겼어요. 우리도 좀 투자해서 방송사와 같이 2부작으로 제작 중이죠. 내년 설쯤 그 프로그램으로 먼저 인사드릴 계획이에요.”
▼ 그게 피렌체 한식 만찬이 소개된다는 SBS ‘이영애의 만찬’이죠?
“맞습니다. 우리 음식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깊은 의미도 보여주려고 해요. 저희 가족의 양수리 생활도 담아 종합선물세트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줄 수 있겠다는 ‘사심’도 들어가 있죠(웃음). 그렇게 시작해보고, 더 좋은 작품이 있으면 남편과도 상의해서 출연 여부를 결정해야죠.”
‘사람에 대한 연구’
▼ 지금은 연기보다 육아에 충실하고 싶다는 얘기?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금방 크잖아요. 지금은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할 땐데 드라마나 영화를 시작하면 일주일에 거의 네댓새는 극중 역할만 생각하게 돼요. 그러니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잖아요. 그것도 안타깝고, 연기 활동은 20~30대에 열심히 했으니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하고 싶어요.”
▼ ‘대장금’과 ‘친절한 금자씨’ 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시청률이 낮게 나온 작품이 더 많이 생각나요. 정말 열심히 했는데 반응이 없으니까, 아픈 자식에게 더 마음이 가듯 미운 오리 새끼를 보듬고 싶은 심정이랄까. 눈 올 때 찍은 ‘은비령’이 그런 작품이죠. 윤석호 감독님이 연출하신 TV문학관 같은 작품인데 느낌이 참 좋아요. 장수봉 감독님의 ‘동기간’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스물여섯 살에 찍었는데 역할도 재미있고, 작품성도 있었어요. 조기 종영돼 감독님이 술 마시고 우시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 배우가 적성에 잘 맞다고 봅니까.
“제 성격에 배우 된 걸 놀라워하는 친구가 많아요. 되게 내성적이거든요. 근데 그런 성격 때문에 배우 하는 게 재미있어요. 새로운 역을 맡을 때마다 그 인물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공부하는 걸 좋아해요.”
그가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연극영화과 석사에 만족하지 않고 결혼 후 한양대 대학원에 들어가 연극학 박사과정을 밟은 것도 “학위 욕심 때문이 아니라 연기공부를 좋아해서”다. 박사 공부는 잘돼 가는지 묻자 “휴학 중”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쌍둥이 보느라 정신이 없고 박사과정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근데 무척 재미있었어요. 연극이 ‘사람에 대한 연구’더라고요. 드라마나 영화도 대본을 받은 후 작품을 연구하고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죠.”
▼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느낌을 봐요. 작품의 따뜻함. 비중도 무시할 순 없죠. 비중이 전혀 없다면 안 하겠죠(웃음). 근데 이제는 작품이 정말 좋다면 비중이 전보다 줄어들더라도 참여하고 싶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 꼭 해보고 싶은 연기는.
“얼마전 남편에게 ‘여보, 연기하고 싶다’고 하니까 남편이 ‘여기서 찍어. 우리 곁에 있는 진솔하고 순수한 이야기가 감동을 주지, 달나라 러브스토리가 감동을 줄 수 있겠어?’ 하더라고요. 문호리에 살면서 문호리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럼 멀리 안 가고 편하게 찍을 수도 있잖아요(웃음).”
요즘은 배우들이 하도 얼굴을 당겨서 50, 60대에도 피부가 팽팽한데, 정도가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적잖다. 그에 반해 최근 개봉한 프랑스 영화 ‘투 마더스’에서 주름진 얼굴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두 중년 여주인공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았다. 정 회장도 “아내가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예계에서 자연미인으로 첫손에 꼽히는 이영애의 생각은 어떨까.
냉정과 열정 사이
“주름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작품을 만나면 좋죠. 저도 성형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어요. 여배우이니만큼 미적 욕구가 더 클 수밖에 없잖아요. 해서 잘 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하고 싶은데 잘못될까봐 걱정이 돼서 못해요. 넣었던 것을 뺀다고 원상복구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성형에 맛들이면 습관이 된다고도 하고. 가족이 주는 행복감이 확실히 커요. 그런 충동을 잊게 할 정도니까.”
▼ 어디를 가든 시선을 받는 배우로 사는 게 부담스럽진 않나요.
“저는 괜찮은데 저로 인해 가족이 피해 보는 게 마음에 걸리고 부담돼요. 특히 아기아빠한테 미안할 때가 많아요. 연예인 아내를 둬서 황당한 소리도 듣고 악플러의 공격도 받고요.”
▼ 일탈을 꿈꿔보거나 경험한 적이 있나요.
“20, 30대 때는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보람을 느꼈고,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과 혜택이 너무 크고 감사해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고 싶나요.
“글쎄요. 전에는 작품을 연구하고 인물을 공부하며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가면서 연기에 희열을 느꼈고 배우라는 직업에 자긍심도 갖고 있어서 다시 태어나도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러나 배우로서 피할 수 없는 유명세 때문에 가족의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하고,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유포하는 행위나 악플, 언어폭력으로 피해를 볼 때면 정도가 너무 심해 연기생활에 회의가 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반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랑하는 내 가족이 최우선이잖아요.”
▼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대학 시절로 돌아가서 신랑과 좀 더 일찍 만나고 싶어요. 그때 만났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얘기를 남편과 종종 해요. 특히 아이아빠가 학창 시절을 보낸 시카고에서 함께 평화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10년 후의 자화상을 그려본다면.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받는 아내, 현명한 쌍둥이 엄마로서 제 할 일을 다 하고, 배우로서도 욕심 부리지 않고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나가는 모습을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