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연재 ‘노래가 있는 풍경’은 우리 시대를 관통해 한국의 ‘허리 세대’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준 명곡을 찾아 탄생 배경과 의미, 이 땅의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세월이 흘러 이즈음에 되돌아 보는 느낌 등을 담으려 한다. 선곡은 한국갤럽의 ‘한국인이 사랑하는 명곡’을 참고해 객관성을 유지할 것이다. 글은 언론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김동률 서강대 교수, 사진은 한국 문화와 역사를 향한 사진적 접근에 오래도록 관심을 가져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권태균 신구대 교수가 맡는다.
- 한 시대의 삶을 노래를 통해 반추함으로써 같은 세대에게는 추억과 동질감을, 젊은 세대에겐 그 노래들이 ‘보통 한국인’에게 던지는 감동과 교훈을 교감시키고자 한다.
속절없이 가버린 젊은 날
이 존재감이 없는 기차 노선은 훗날 이 땅의 중년 세대를 울리는 대중가요의 결정적인 모티프가 된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란 노랫말은 이 기찻간에서 탄생한다. 듣는 이에게 불현듯 아득한 옛 생각에 잠기게 하는 노랫말이다. 검은 교복, 얼룩무늬 교련복에 양은 도시락을 담은 김치 국물 밴 가방을 옆에 끼고 통학하던 그런 세월을 느닷없이 추억하게 한다. 속절없이 가버린 젊은 날을 반추하게 하는 그런 노래다.
최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는 바로 이 땅의 기성세대를 위무하기 위해 태어난 노래다. 기성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질곡에서 더러는 기쁨을 맛보았지만 대개는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온 세대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어울린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노래쯤이나 된다고 할까. 그래서 아마 이 노래를 듣는 중년들은 저마다의 옛 생각에 잠을 못 이룰지도 모르겠다.
낭만에 대하여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랑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진 슬픈 뱃고동 소리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는 동래군 일광면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지금의 행정구역상으론 부산이다. 부친은 29세의 나이로 부산에서 국회의원(2대 민의원)에 당선된 최원봉이다. 1950년 최백호가 태어나던 바로 그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립하며 백범 김구 선생과 같은 길을 걸었다. 6·25전쟁 중 북진하던 연합군(터키군) 트럭과 최원봉이 탄 지프가 충돌하는 사고가 났는데, 그의 죽음을 두고 ‘정치적 암살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가족들은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일광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유복자 격인 최백호를 홀로 키웠다. 그래서 일광역에서 동래를 거쳐 부산 서면을 오가던 동해남부선이 최백호에겐 청소년기의 기억을 몽땅 가지고 있는 존재다. 하지만 일광역 또한 흔적도 없다. 첫사랑 그 소녀를 만나는 설렘으로 기차에 올랐던 역 광장은 공설 주차장으로 변해 있고, 건널목에는 한 무리의 핏빛 칸나가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구한말인 1898년 개교한 동래중학. 일광에 살던 최백호가 기차로 통학하며 다녔다.
그 시절, 이른 아침 일광역을 출발한 완행열차는 남부 동해 바닷가를 한참 달려 동래역, 부전역에 단발머리 소녀와 여드름이 가득한 10대들을 토해놓았을 것이다. 느릿느릿 달리는 통학길 완행열차에서 그는 첫사랑 그 소녀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박경희, 살아 있다면 그녀도 초로의 할머니가 되어 있을 터이다. 이 대목에서 최백호는 자신이 남몰래 혼자 좋아했고 또 세월이 너무나 많이 흐른 까닭에 이제는 이름을 밝혀도 좋을 것이라고 껄껄 웃는다. 더구나 그녀는 아마 자신이 최백호의 첫사랑 대상인지조차 모를 것이라고 고백한다. 10대의 수줍음과 설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대목이다.
기차 통학생 최백호가 다니던 부산 서면과 동래 일대는 그의 신산한 삶의 한 시절을 차지한다. 동래중을 통학하던 그는 훗날 스무 살 나이에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결핵으로 군대에서조차 쫓겨난 20대 초반의 대책 없는 청년 최백호는 반거지 신세였다. 유일한 버팀대였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의 그 시절, 밥만 먹여준다면 뭐든 다 했다.
서면에 있던 동보극장에 들어가 극장 간판 그리는 일도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간판도 그렸다. 그 시대 청춘의 로망이던 올리비아 허시가 나온 1968년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니노 로타가 작곡한 “what is a youth”로 시작하던 주제곡이 그 시절의 상징 음악이었던 바로 그 영화다. 고달픈 시절, 극장 간판을 그리던 솜씨는 그를 지금 꽤 잘나가는 아마추어 화가로 거듭나게 만든 계기가 된다.
동래시장. 최백호의 10대 시절이 오롯히 녹아 있다.
동래는 오랫동안 부산의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이 일대를 다스리던 관헌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이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 곳도 바로 동래다. 그러나 인근 대형 할인점에 밀린 동래시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좁은 골목길엔 이 지역 명물인 돼지국밥집만 빼곡하고 싸구려 잡화를 파는 가게들이 무심한 가을 햇볕에 졸고 있다.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은 흔적조차 없고, 시장 입구에 자리한 남루한 커피숍에는 초로의 신사 몇몇이 다방 마담과 수다를 떨고 있다.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스피커에서는 옛날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스피커 모퉁이에 ‘롯데 파이오니아’라는 로고가 선명하다. 맞다. 중년 세대에게 꽤나 익숙한 전축 상표가 아니던가. 갑자기 “When I was young/ I′d listened to the radio/ Waitin′ for my favorite songs…” 카펜터스의 ‘Yesterday once more’ 가 불쑥 흘러나온다. 1970년대가 다방 안을 가득 채우더니 휘돌아 나가는 느낌이다.
Yesterday once more
“부산 동래에 다방이 하나 있어요. 내가 굉장히 힘들었을 때 우연히 갔던, 비가 억수로 오던 날, 우산도 없이 쑥 들어간 다방인데, 손님도 없고. 다방 구석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마신 거죠, 음악다방도 아닌 그냥 다방에서. 그때 색소폰 음악이 하나 들려오는데, 너무 가슴에 와 닿는 거예요. 여자 종업원에게 LP 재킷을 보여달라고 해서 보니까, 에이스 캐논의 ‘Laura’라는 연주곡이었어요. ‘바바밤~’ 이렇게 시작하는, 그걸 한 스무 번 이상은 들었을 거예요. 그런 기억을 끄집어내서 만든 노래예요.”
그는 오래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동래시장과의 추억을 이렇게 들려줬다.
밤늦은 항구도 동래시장과 함께 이 노래의 주요 배경이 된다. 부산항 제3부두 선착장이다. 그가 곤고했던 시절 광복동 일대 통기타집을 전전할 때 가끔씩 들르던 제3부두는 지금은 국제선 선착장이 되어 있다. 그는 그 시절, 한 일본인 친구를 그야말로 난생처음 배로 떠나보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사연이 노랫말이 된다.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라는 그의 권유는 항구를 모르는 내륙 사람들에게 아련한 그리움의 이미지를 그려 보인다.
‘낭만에 대하여’는, 일단은 슬픈 노래다. 젊은 시절 들어서는 노래가 주는 깊고도 유장한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중년들의 가슴을 후비고 들어오는 노래다. 노래는 듣는 이에게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어서 생각하라고 속삭인다. 지나간 시절을 조용히 생각하니 그것이 첫사랑이었다는, 그런 말들과 고스란히 일치한다.
그렇다. 수많은 세월이 말없이 흘렀다. 세상 모두 우리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 날아 가고팠고 뛰어들고팠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모르던 숨은 이야기들을 가만히 생각하게 하는 노래가 ‘낭만에 대하여’다. 뒤돌아보면 모두가 그립고 생각해보면 하나같이 아쉬운 시간들이다. 돌아가고 싶은 그런 시절에 대해 추억해보라고 노래 ‘낭만에 대하여’는 이 땅의 중년들에게 속삭이고 있다.
그러나 흘러간 세월을 어찌하겠는가. ‘Yesterday once more’는 노랫말에만 있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 아니다. 정도 흐르고 그리움도 흐른다. 낭만은 아득하고 추억마저 긴긴 세월 속에 야위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