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퇴임식을 마친 채동욱 검찰총장이 대검찰청을 떠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보도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급기야 법무부 장관이 현직 검찰총장 감찰을 지시하고, 이에 반발한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후 사표 수리를 두고 청와대와 법무부, 채 총장 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논란 끝에 청와대는 법무부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사표를 수리했다.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의 충돌
세인의 관심은 단연 ‘임 모씨의 아들이 채 총장의 혼외자가 맞는가?’라는 것이고, 정치권은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니 “정권의 불순한 검찰 흔들기”니 정쟁을 벌인다. 호기심이나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공직자의 사생활과 언론보도의 적절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언론이나 정치인, 지식인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쉽다.
국민의 시각에서 알 권리인 표현의 자유는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한 제한할 수 없다는 원칙 아래 표현의 자유를 최상위 기본권으로 여긴다. 그러나 타인의 사생활을 들춰 명예를 훼손하는 보도는 불법행위다. 다만 공직자의 경우 국민의 선택과 감시를 받기 위해 사생활이 일정 부분 공개될 수밖에 없다.
공직자의 사생활 침해와 관련해 미국 연방대법원의 1964년 설리번 판례(‘New York Times Co. vs. Sullivan’ 판결)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1)공직자(public official)의 공적인 행동에 관한 명예훼손 내용이 2)현실적 악의(Actual Malice)에 의해 작성됐음을 공직자 자신이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입증 책임을 공직자에게 부담시킴으로써 표현의 자유 쪽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후 공직자의 개념은 연예인, 운동선수 등 세상에 잘 알려진 인물을 뜻하는 공인(public figure)으로 확대됐다.
독일에서는 공직자의 사생활을 내밀 영역, 비밀 영역, 사적 영역, 사회적 영역, 공개적 영역으로 나눈다. 내밀 영역이나 비밀 영역의 경우 공인의 인격권이 우선하지만, 사회적 영역과 공개적 영역은 공인의 인격권이 제한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미국의 설리번 판례를 일부 받아들이는 듯하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1)대상자가 공인일 것 2)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일 것 3)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해당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기타 피해자가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여부 등의 사정도 적극 고려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혼외자 문제는 과거에도 종종 논란이 됐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이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외국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라틴계 남부 유럽의 경우 정치인의 사생활 문제에 대해 다소 관대한 듯하다. 1984년 프랑스 주간지 ‘파리마치’가 미테랑 당시 대통령의 ‘혼외딸’ 존재를 보도하자 유력 매체 ‘르몽드’와 ‘르피가로’는 “하수구 저널리즘”이라며 해당 보도를 비판했다. 프랑스에서는 ‘공직 업무에 지장만 없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시각이 우세한 듯하다. 오히려 혼외자의 해외여행 경비가 세금으로 충당됐다는 문제가 더 부각됐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는 계속되는 성추문 보도에도 거뜬히 직책을 유지했다. 물론 이런 풍토를 마초이즘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화적 토양에 따라 시각 달라
반면 미국의 경우는 좀 더 엄격하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특별검사의 조사를 받으며 탄핵 위기에까지 몰렸다. 클린턴 대통령이 처음에 이를 부인하면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더욱 중대한 문제로 부각되기는 했다. 공직자의 공개된 거짓말은 미국에서는 치명적인 하자로 여겨진다.
요정 정치의 전통이 있는 일본에서는 정치인의 성(性) 스캔들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는 경우가 드물다. 아소 총리나 다나카 총리에 대한 게이샤 염문설이나 혼외자 보도는 반향을 전혀 일으키지 못했다.
결국 이번 혼외자 보도의 적절성은 우리 국민이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관련돼 있다. 공자는 벼슬아치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문질빈빈(文質彬彬)’을 언급했다. 능력(文)뿐 아니라 백성의 본보기가 될 인간 됨됨이(質)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사는 우리 국민이 옛 공자의 말에서만 공직자상(像)을 찾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한 여론조사에선 47.1%가 ‘고위공직자라도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한 반면 44.8%가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관련자들이 문제 삼지 않는 한 범죄가 아니고 공적 업무 수행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검찰총장 같은 고위공직자는 사생활도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이 엇갈리는 듯하다.
혼외자 보도의 적법성과 혼외자가 있는 사람이 검찰총장 자격이 있는지의 문제는 나눠볼 필요가 있다. 이번 보도 자체는 적법해도, 제기한 내용이 검찰총장의 결격 사유인지는 다시 따져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보도의 합법성 문제와 관련해 먼저 ‘공적 사안의 영역’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단지 혼외자가 있다는 것이 검찰총장의 직무수행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채 총장의 부인이나 혼외자로 지목된 측에서 문제 삼지 않는다면 범죄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을뿐더러, 채 총장이 자초한 부분도 없기 때문에 단지 한 개인의 순수 사생활 영역일 뿐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보도가 나간 후 공직윤리 문제로 격론이 벌어지고, 보도의 적절성에 대해 국민여론도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라면 일단 공적 사안의 영역이라고 판단된다.
공적 사안이라도 악의적 공격이라면…
또 다른 쟁점은 ‘악의적 공격’에 해당하는지다. 야당과 상당수 언론은 채 총장이 정권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는 정황을 들어 권력기관 등에서 받은 자료를 이용해 친여 매체가 정파적으로 보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피해자의 제보 등 합당한 동기가 있는 자연스러운 취재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채 총장을 낙마시키려는 목적으로 언론기관이 정권 담당자로부터 소스를 받아 기획 보도한 것이라면 ‘악의적 공격’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취재 동기나 과정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한 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보도 내용이 검찰총장의 결격사유인지는 우리 국민의 의식구조에 비춰봐야 한다. 앞서 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문화적 토양에 따라 시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법무부 장관의 채 총장 감찰 지시를 놓고 “정치적 외압에 따른 부당한 조치”라는 응답이 46.8%에 달해 “장관으로서 정당한 조치다”는 응답 38.7%보다 8.1%p 더 높게 나왔다. 우리 국민 의식은 남부 유럽과 미국의 중간에 있는 것 같다. 재직 중 혼외자 문제로 파생된 별도의 불미스러운 일이 없다면 혼외자의 존재 사실만으로는 검찰총장 자격의 결격사유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공직자의 사생활이 어디까지 공개돼야 하느냐의 기준은 규범적으로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간에 바람직한 공직자상과 언론의 기능이라는 주제를 놓고 객관적인 자세로 건전한 상식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다.
이번 보도의 주체인 조선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과거 친자확인 소송을 당한 이만의 환경부 장관에 대한 혼외자 논란이 불거지자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사례를 들면서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는 제목의 칼럼을 써 퇴진 요구가 부당하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채 총장과 이 장관의 경우는 다르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관된 기준은 안 보이고 그저 정파적 관점에 따른 일관성이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