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49회를 맞은 ‘신동아’ 논픽션 공모의 응모작은 41편이었다. 이 가운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회 전반과의 긴밀한 연결이 돋보이는 8편이 예심을 통과했다. 10월 2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회의실에서 열린 본심에서 심사위원들은 노동우 외 5명의 ‘男, 혼자 죽는다-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우수작에는 김명준 씨의 ‘나의 에베레스트’, 강지현 씨의 ‘달리의 아이들’이 뽑혔다. 심사위원들은 예년에 비해 응모작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 본심 : 하응백(문학평론가) 김인숙(소설가) 전진우(언론인·전 동아일보 대기자)
● 예심 : 고인환(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 최우수작 (고료 1000만 원)
‘男, 혼자 죽는다-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 _ 노동우, 이수진, 김형석, 성유진, 오소영, 최하은
■ 우수작 (고료 500만 원)
‘나의 에베레스트’ _ 김명준
‘달리의 아이들’ _ 강지현
* 11월호에 최우수작 ‘男, 혼자 죽는다-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 12월호에 ‘나의 에베레스트’, 2014년 1월호에 ‘달리의 아이들’을 게재합니다.
■ 심사평
하응백 ● “소수자에 대한 위무와 공감 재확인”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 상당히 이색적인 작품이 출현했다. 대학교 재학 중이거나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공동 창작을 통해 한 작품을 출품한 것이다. 광고나 영화 등에서는 흔히 있는 현상이지만 문학, 특히 논픽션의 경우 개인의 경험을 주로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공통 창작은 매우 드물었다. 1920년대 ‘카프’라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진 문학단체에서 논의하기도 했고, 또 실제 사회주의 문학 진영에서 시도했던 공동 창작은 현실적으로는 실패로 끝났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대학생 6명의 공동 창작 ‘男, 혼자 죽는다-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은 기획이 참신하고, 투입된 열정에 공감이 가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한 해에 280여 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들 중 90% 이상이 남자다. 왜 그들은 쓸쓸히 죽어갔는가. 왜 남자가 그렇게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가. 이런 의문을 밝히기 위해 6명의 공동 창작진은 취재의 대상을 확정하고, 역할을 분담하고,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2012년 3월부터 2013년 5월까지 구청 홈페이지에 기록이 남아있는 무연고 사망자는 83명이었고, 창작진은 4개월에 걸쳐 이들 죽음의 원인과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파악해나갔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만장일치로 최우수작으로 정했다. 공동 창작이라는 점도 신선했거니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를 현장에서 저돌적으로 취재한 패기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저돌성은 젊은 친구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출된다면 우리 사회의 역동성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 그들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 젊은이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들여다봤다는 행위 자체를 고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김명준 씨의 ‘나의 에베레스트’는 다른 해 같으면 충분히 최우수작이 될 수 있었겠지만, 뒷강물에 의해 밀려나는 형국이 돼버렸다. 아쉬움과 함께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강지현 씨의 ‘달리의 아이들’은 서사적 구성이 약했지만, 내용이 심사위원들의 가슴을 짠하게 했다. 장애아를 돌보는 교사의 사정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 우수작으로 정했다.
논픽션(문학)의 기능 중의 하나가 소수자 혹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위무와 공감이라는 것을 이번 심사를 통해 다시 확인했다.
김인숙 ● “개성 있는 작품 많았다”
예심을 통해 올라온 작품은 8편이었다. 심사하는 과정이 즐거웠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 전년에 비해 작품 수준이 많이 높아졌고, 읽는 재미를 주는 작품이 상당수였다. 최종심에서 논의할 작품도 금방 눈에 띄었다. 그러나 최우수작을 마음속으로 정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는데, 어느 한 작품이 크게 뛰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각각의 작품들이 매우 개성적이고 깊이 마음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최종심에서는 ‘男, 혼자 죽는다-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 ‘나의 에베레스트’ ‘달리의 아이들’ ‘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의 커밍아웃’ 등 4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나의 에베레스트’는 잘 쓴 작품이다. 생동감 있는 등정의 경험이 안정된 문체로 살아났다. 산을 오르고 산에 목숨을 걸어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결코 쓰지 못했을 작품이다.
‘달리의 아이들’은 ‘나의 에베레스트’와 크게 비교되는 작품이다. 문장이나 구성에서는 크게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기술적인 부분을 압도하는 진정성이 있었다.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학교 교사의 생활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헌신으로 이뤄지는데, 그 헌신을 애정으로 끌어안는 작가의 마음씀이 읽는 이를 부끄럽게 하고 아프게 한다. 논픽션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비록 서툴더라도 마음을 끌어당기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곳으로 시선을 깊이 돌리게 하는.
‘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의 커밍아웃’은 진지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사건 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의 기록이다보니 사건을 내면화하는 데 있어 한계가 보였다.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할 소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작품적으로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미흡했다.
‘男, 혼자 죽는다-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은 독특한 작품이다. 우선 집단 취재로 이루어진 공동 창작이란 면이 흥미롭다. 취재의 기록에 충실하면서 취재의 목표에 부합하는 의미를 잃지 않았다. 무연고 사망자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사회적인 잣대로만 보지 않고 개인적인 이유로도 풀어냈다. 취재 과정 중 무연고 사망자의 성별의 차이를 찾아내고 그 원인을 분석해낸 것도 흥미로웠다. 기자 지망생들답게 사실의 기록과 분석에 충실했으나 그것의 정서적인 측면을 함께 아우른 것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비록 마지막까지 논의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사막의 여자’와 ‘당신들의 세월’도 읽기에 즐거운 작품이었다. 심각하지 않은 주제를 가벼운 일상으로 풀어냈다. 그 유쾌함이 좋았으나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에피소드 중심으로 흘러간 것이 아쉬웠다. ‘아빠 같지 않은 아빠지만 그래도 아빠라고’의 공들여 쓴 손글씨는 감동적이지만 사적인 내용의 한계가 있었다. ‘우연’ 역시 마찬가지다.
최종심에 오른 모든 작품의 작가들에게는 격려를, 그리고 당선자들에게는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전진우 ● “발품과 헌신이 주는 감동 커”
장애아들을 돌보다 지쳐 도망가고 싶었던 특수교사가 그런 자신을 위로라도 하듯 머리를 만져주는 여자아이의 손길에 그만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독백한다. “너와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구나. 도망가고픈 마음이 미안하고 부끄럽구나.”
강지현 씨의 ‘달리의 아이들’은 이렇듯 헌신이 이뤄내는 진정한 소통을 보여준다. 사랑이 인간과 인간 사이, 세상을 지탱하는 주춧돌임을 작은 목소리로 일러준다. 이야말로 논픽션의 힘이 아닌가. 비록 구성이 산만하고 중복된 느낌이 있다 해도 필자의 열정과 진정성은 그런 허물을 메우고도 남았다고 본다. 특히 장애아들을 돌보는 특수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에 작은 보답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우수작으로 뽑았다.
김명준 씨의 ‘나의 에베레스트’는 단숨에 읽힌다. 긴박감 있는 서술과 정제된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큰 장점이자 글쓰기의 기본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제아무리 이색적인 소재와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한들 읽기가 고통스럽다면 어찌 쉽게 공감할 수 있겠는가.
최종심에서 탈락한 김홍곤 씨의 ‘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의 커밍아웃’은 안타깝게도 그런 예의 작품이다. ‘원폭피해자 2세’라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온 문제를 부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부정확한 문장과 어색하고 과장된 꾸밈말 등으로 주제의 의미를 반감시킨 느낌이다. 논픽션의 경우 화려한 수사보다는 진솔하고 정확한 문장이 오히려 공감을 줄 수 있다.
노동우 외 5명이 열심히 발품을 팔아 기록한 ‘男, 혼자 죽는다-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에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자살률 1위인 한국 사회의 그늘에 주목한 젊은이들의 건강한 문제의식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미래에 소중한 자산이 되지 않겠는가. 심사위원 모두가 최우수작으로 뽑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