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정보원 개혁이 시대적 화두다. ‘댓글 사건’으로 점화된 국정원 개혁 논쟁은 하반기 국회를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야당인 민주당과 일부 시민사회에서는 대공수사권 폐지와 국내정보 수집 금지 등 국정원의 권한과 기능을 축소할 것을 요구한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민주당과 시각 차이가 크지만 국정원 개혁을 국정원에 맡겨둘 수 없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국회 논의에 앞서 ‘신동아’가 국정원 개혁의 쟁점을 미리 짚었다.
● 장소 :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회의실
● 패널 : 염돈재 |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전 국정원 1차장 오시영 | 숭실대 법학과 교수, 변호사
● 사회·정리 : 조성식 | 신동아 차장 mairso2@donga.com
사회 바쁘신 가운데 토론회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국가정보원에서 자체 개혁안을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고, 곧 국회로 넘어간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오늘 토론회에서는 국정원 개혁의 쟁점들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개혁 방향을 모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왜 국정원을 개혁해야 하는지부터 얘기해볼까요.
오시영 국정원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조직입니다. 또 그간 국정원이 국가안보를 위해 애쓰고 수고한 사실은 국민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지난해 18대 대통령 선거 때 대북심리전단의 선거 개입 등으로 국민의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국정원은 해외정보나 대북정보에 치중해야지, 국내 정치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요구입니다.
염돈재 오 교수님 말씀에 원칙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주변 정세도 복잡하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인 정보 수집 활동이 필요해요. 그런데 댓글 사건 여파로 개혁의 초점이 국내 정치 개입 문제에 맞춰진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민적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고 있는 만큼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 외에 정치 개입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뭔가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보실패에 개혁 초점 맞춰야
오시영 염 교수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 상당수는 그간 누적된 경험과 교육을 통해 국정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시작해 안전기획부를 거쳐 국가정보원으로 바뀌는 과정에 정치공작 사건과 간첩조작 사건이 많았습니다. 또 그 사건들을 수사하는 과정에 불법연행이나 고문, 가혹행위 등의 범죄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요즘 사법부 재심 절차에 따라 무죄선고가 난 사건들이 이를 입증합니다. 선진국가로 진입하는 마당에 이런 문제는 고쳐야 하는데 현 국정원 시스템으로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제도 개혁을 하자는 겁니다. 또한 인적 쇄신을 통해 민주주의 신념이 투철한 정보요원들을 확보해야 해요.
염돈재 오 교수님이 지적한 국정원의 병폐는 대부분 20년 전에 끝난 일입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4년 정치 개입을 금지하라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국정원법을 개정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1999년 한 번 더 개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하신 권력남용이나 정치 개입 문제는 거의 사라졌어요. 국정원은 지난 정권에서 김정일 사망이나 북한 핵문제에 대한 정보수집 기능에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이런 정보실패에 개혁의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오시영 국정원 개혁을 강력히 요구하는 사람들은 국내 정보는 경찰이나 검찰과 같은 수사기관에 맡기고 국정원은 대외 정보 수집에 치중하라고 합니다. 김정일이 죽었을 때, 리설주가 등장했을 때 국정원은 관련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어요. 어마어마한 예산으로 방대한 인원을 운용하는 국정원이 최소한 이런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 국민 눈높이입니다. 국민은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 같은 정보요원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국민 눈에 국정원은 국익에 도움을 주는 대외 정보보다 국내 정보에 치중하는 것으로 비치는 거죠.
염돈재 북한 관련 정보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엔 전적으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종북세력이나 북한의 테러를 막으려면 국내 정보도 강화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나라들은 국내보안 정보기관을 별도로 두거나 해외정보 기관과 통합형으로 유지합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유서 깊은 정보기관들은 다 해외 정보가 아닌 국내보안 정보로 출발했습니다. 국내 정보와 해외 정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요.
국정원 개혁을 주제로 한 좌담회에 참석한 오시영 숭실대 법학과 교수(왼쪽)와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행정 전문가는 원장 부적격
염돈재 원세훈 전 원장은 정보 전문가가 아니고 행정가입니다. 그래서 임명될 때 주변에서 우려를 했죠. 정보 전문가는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지만 행정 전문가는 국정 운영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또 대통령 측근이니 대통령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국정원을 운영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겁니다. 원 전 원장이 조직개편을 하는 등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댓글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빛이 바랬습니다. 사실 노무현 정부 이후 지금까지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문제가 불거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들도 탈정치화했다고 자부심을 가져왔거든요.
그런데 댓글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지난 10여 년간 쌓아온 정치적 중립성에 시비가 일었습니다. 물론 법원 판결이 나와야 최종 판단을 하겠지만요. 그런데 정식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고 맘먹었다면 일반 국민에게 잘 알려진 사이트를 활용하지 않았을까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사이트에 올린 댓글 수십 개로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정신 나간 사람들이지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종북세력이나 친북세력에 대응하다보니 업무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그런 문제가 생긴 거라고 봅니다.
사회 국내 정보 파트는 두 분 다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건가요.
오시영 국내 정보와 대북 정보를 명확히 분리할 수 없으니 국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렇게 수집된 정보를 갖고 수사까지 하는 건 반대합니다. 경찰이나 검찰로 넘기는 게 좋다고 봅니다.
사회 2006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내놓은 국정원 개혁안을 보면 국내 정보 수집을 제한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정당과 정치인 동향 파악을 금지하는 조항입니다.
오시영 정권을 잡으면 국정원을 활용하려 하고, 못 잡으면 바꾸려 합니다.
염돈재 야당 할 때와 여당 할 때 얘기가 다르다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정권을 잡아보니 국정원의 국내보안 정보 수집과 수사권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는 뜻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정원을 해외정보처로 바꾸겠다고 했는데, 집권 후 사정을 알고 난 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정치권이 국정원 개혁 문제를 늘 정략적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국정원 차장까지 지낸 정형근 의원이 당시 그런 주장을 했다는 데에 저는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국정원 개혁을 정치권에 맡겨놓으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기관 상주 요원의 문제점
사회 ‘IO’라 부르는 국정원 요원들이 정치인이나 언론 동향을 파악하고, 검찰을 비롯한 주요 기관에 나가 정보를 수집하는 게 필요할까요.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당시 이런 점을 고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염돈재 예전엔 ‘조정관’이라 불렀습니다. 국정 운영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이 일 저 일 많이 간섭했던 게 사실입니다. 지금은 그런 시스템이 아닙니다. ‘연락관’ 수준이지요. 예컨대 국회에 있는 정치인들 중에 종북세력이 있을 경우 국회를 자주 드나드는 요원이 정보를 수집하는 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다만 활동을 공개적으로 하느냐, 비밀스럽게 하느냐의 차이는 있지요. 정치개입이나 정치인 동향 파악은 해서도 안 되고 요즘은 하지도 않습니다.
사회 언론사를 출입하는 요원은 보도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려 합니다. 검찰 출입 요원은 검찰 인사와 주요 수사 상황을 알아냅니다. 이건 국내보안 정보와는 상관없지 않습니까.
염돈재 그런 일을 하는 과정에 어떤 선을 넘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건 미세한 문제입니다. 해당 기관에서 불편하면 못 오게 하면 되죠.
오시영 국정원으로선 연락관 제도가 있으면 정보 수집하는 데 참 편하죠. 사람도 확보되고 장소와 시간도 확보되니까요. 그러나 그 연락관과 접촉해야 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기자나 국회의원, 공무원 등은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갖습니다. 저 사람이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요. 개인 대 개인은 모르지만 기관에 상주하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은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정보기관은 밀행성이 있어야 합니다.
염돈재 정보활동이 시대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기관출입을 금지하는 건 문제가 있죠. 국회만 하더라도 정보 수집을 하거나 신원조사를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들어가 누구를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국정원 요원이 드나드는 국회 사무실은 국회 정보위원회와 연락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 2006년 한나라당 개정안에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강화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인정하되 검찰 통제를 받으라는 얘기지요. 지금 민주당은 수사권 폐지를 주장하지만.
염돈재 검찰 통제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불법행위나 인권침해를 하지 말라는 거지요. 또 하나는, 이걸 검찰 지휘라 할지 협조라 할지 모르지만 국정원에도 검사가 나와 있거든요. 그 사람들이 채널 구실을 합니다. 대공 사건이 발생하면 법률 적용이라든지 수사 방법에 대해 수시로 조언하고 협조합니다. 국정원이 검찰 압수수색까지 받는 시대에 수사지휘를 안 받는다는 건 옛날얘기입니다.
오시영 국정원에 파견된 검사의 조언을 수사지휘라고 할 수는 없죠.
염돈재 그 사람이 지휘하는 건 아니지만 수사 세부사항을 검찰에 알려주고 검찰에서도 해야 할 일을 지시합니다.
국가정보위원회 만들자
오시영
염돈재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사권을 폐지하면 안 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대공수사라는 건 장기간 감시와 대북 정보망 운영, 공작 등이 어우러지는 겁니다. 수사과정에 새로운 단서를 잡아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이걸 바탕으로 또 다른 수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선순환이 되기 때문에 대공수사권의 특수성에 비춰 국정원이 갖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지난 20년간 국정원의 수사권 남용이 문제 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민주당에서 이번에 수사권 폐지를 들고 나온 건 흥정 대상으로 삼은 거라 봅니다. 만약 (수사권을) 경찰이나 검찰에 넘기면 파일도 넘겨야 합니다. 그런데 파일을 넘기면 정보 출처와 정보수집 과정이 다 노출됩니다. 이건 절대로 넘길 수 없어요.
또 하나, 세계 정보기관 중 국정원만 수사권을 가졌느냐. 그렇지 않아요. 미국 FBI(연방수사국)와 프랑스 국내중앙정보국(DCRI),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 신베드, 러시아 연방보안부, 중국 안전부도 갖고 있어요. 그밖에 많은 나라에서 국내보안 담당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있습니다. 효율적이기 때문이죠. 새누리당 조사이긴 하지만 국민 70%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국회의 국정원 예산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여기에 대해선 여야 의견 차이가 거의 없는 것 같은데요.
오시영 국정원이 신뢰받는 국가기관이 되려면 일단 예산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물론 비밀리에 써야 하는 특수공작비까지 포함시키자는 건 아니지만, 그 비용도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요를 정확히 산출해 국회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이번에 댓글 사건 공판 과정에 드러났지만, 외부에서 글을 올리는 정보원들에게 월 300만 원씩 지급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게 국민을 의아하게 하고 분노하게 만들거든요. 내가 낸 세금이 왜 저런 데 쓰이느냐. 그런 게 대북정보사업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
제가 생각하는 방안은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정보위원회를 만드는 겁니다. 국회 정보위원회와는 다른 겁니다. 위원은 여야가 추천해 9명 정도로 구성하고 국정원의 모든 정보와 수사내용을 보고 받게 하는 겁니다. 물론 공개와 비공개를 구분해서 말이죠. 여기서 국정원의 예산과 조직도 통제하고요. 미국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압니다.
염돈재 대부분의 국가는 정보기관의 예산총액조차 공개하지 않습니다. 국정원 예산을 특수활동비와 예비비로 편성하는 건 세부내역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것은 총액이 밝혀지면 정보요원 한 사람의 평균 활동비가 드러나기 때문이죠. 또한 예산 변동내역을 보면 정보 목표가 바뀐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한 번에 큰 폭으로 예산이 늘었다면 틀림없이 위성 같은 통신정보 활동이 강화된 거죠. 전문가들은 딱 보면 압니다. 인원이 증감된 것도 알 수 있죠.
정보기관의 모든 활동과 예산을 국회 정보위원회에 상세히 보고하는 나라는 미국과 독일뿐입니다. 미국 국회의원들은 보안을 잘 유지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제가 국정원 1차장 때 정보위원회에서 논의한 내용이 30분도 안 돼 방송에 나왔어요. 국회의원들이 기자한테 약하거든요. 이래서야 국정원과 국회 간에 신뢰관계가 형성되겠습니까. 국정원에만 무조건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할 일이 아닙니다.
탄핵소추보다 해임결의가
사회 정치권에서 남북정상회담 녹취록 공개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 국정원이 녹취록을 전격 공개한 것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야당에선 정치 개입이라며 국정원장 해임 또는 탄핵을 주장했는데요. 이번에 민주당 개혁안에도 국정원장 탄핵소추 및 해임건의가 들어 있습니다. 2006년 한나라당 개혁안에도 같은 조항이 있었고요.
오시영 헌법에 국무위원은 탄핵소추할 수 있는데, 국정원장은 국무위원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탄핵소추 대상에 넣자는 건데,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국회의 해임 요구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해임 요구는 강제성이 없어요. 대통령이 안 들어주면 그만이거든요. 탄핵은 다르지요. 국회에서 소추하면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야 하니까요.
사회 남재준 원장의 행위가 탄핵감일까요.
오시영 법률가 시각에서 탄핵감이라고 봅니다. 꼭 탄핵을 안 하더라도 관련 조항이 있는 것만으로도 견제를 할 수 있죠.
염돈재 탄핵소추권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과연 현실성이 있느냐는 거죠. 국정원장이 NLL(북방한계선) 관련 대화록을 공개했다고 탄핵하려면 국회에서 결의해야 하는데 새누리당이 동의해주겠습니까. 실효성이 없다는 거죠. 실효성 없는 법을 자꾸 만들지 말고 운영의 묘를 살리면 됩니다. 국정원장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면 해임 결의안을 제출해 대통령을 압박하면 됩니다. 효과 면에서 탄핵소추와 다를 바 없어요.
사회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오시영 무엇보다도 국정원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원장을 임명하다보니 대통령과 정권을 보위하는 것을 중요한 업무로 간주합니다. 원세훈 전 원장이 대표적인 사례죠. 검찰총장 추천위원회처럼 독립성이 보장되는 국정원장 추천위원회를 만들어 거기서 복수의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방식이 좋다고 봅니다. 정치적 중립성 면에서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국가정보위원회를 만들어 국정원장으로부터 주요 활동과 예산 사용내역을 보고받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염돈재 뭔가 정보기관에 대한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원장 추천위원회도 하나의 방안이 되겠지요. 그러나 지금도 제도적으로는 거의 완벽합니다.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게 중요합니다. 원장 추천위원회보다는 대통령 직속 정보자문위원회가 낫다고 봐요. 여야 의원 대표 두 사람과 사회 명망가, 정보 전문가 등 10여 명으로 구성해 중요한 불법행위나 정보실패가 있을 때 객관적으로 조사해 대통령에게 개선점을 건의하는 겁니다.
또 하나, 국회 정보위원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기관은 상명하복 관계가 명확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상관 말에 거역하면 항명한다고 시끄러워지고 불이익을 당하기 쉽죠. 하지만 미국에서는 상관으로부터 부당하거나 불법적 지시를 받을 경우 먼저 차상급자한테 얘기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국회 정보위원회에 제소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제도를 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쟁 도구로 삼지 말아야
사회 국정원장 임기는 어떤가요. 해외에서는 정권에 상관없이 수십 년씩도 하는데.
염돈재 미 FBI의 경우 한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한 게 문제가 돼서 임기를 10년으로 정했습니다. 중국은 4년이고 이스라엘은 5년입니다. 미 CIA(중앙정보국)는 임기가 따로 없고요. 임기제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무능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그만두게 할 수 없는 단점이 있지요. 원세훈 전 원장이 3년 반 했는데, 제가 보기엔 너무 오래했어요.
오시영 임기제가 문제도 있겠지만, 신분보장을 통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소신껏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행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염돈재
사회 마지막으로 정권의 국정원이 아닌 국민의 국정원으로 거듭나는 방안에 대해 각자의 소신을 정리해서 말씀해주시죠.
오시영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국정원의 일부 직원들은 제도적 틀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들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서 시대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종래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한 탓에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줬던 것 같습니다. 중심을 잡아줘야 할 사람이 바로 국정원장입니다. 우선 민주적이고 중립적인 절차를 거쳐 선출한다면 국민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되겠죠. 또 임기를 보장한다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소신껏 일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는 예산의 투명한 공개입니다. 아무리 국가정보기관의 밀행성을 보장한다 해도 1조 원대에 달하는 예산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국내 정보 수집은 허용하되 수사권은 주지 않는 게 옳다고 봅니다. 만약 수사권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검찰의 실질적인 수사 지휘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국가 안보 문제에 대한 최종 판단을 국정원이 아닌 사법부가 해야 합니다.
염돈재 지금 국정원이 예산을 은닉하는 일은 없습니다. 어지간한 내용은 국회(정보위원회)에 다 보고합니다. 대공수사권은 가져야 하고, 지금 검찰 지휘를 잘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정치 개입 문제가 논란이 됐는데 이것도 순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정략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우선 법원 판결을 받아보고 나서 사실관계를 따져야 합니다. 개입했다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그 배경이 뭔지. 그런 다음 국정원이 만든 개혁안을 토대로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전문가 견해도 들으면서 충분히 논의해 여야가 합의하는 개혁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회가 주관해 개혁안을 만드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국정원 개혁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고 정말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오시영 북한도 우리말을 씁니다. 경우에 따라 우리와 비슷한 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무조건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여 언로를 막아버리는 일은 없어져야 합니다.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종북이라는 말 잘못 썼다가 최근 손해배상 판결을 받지 않았습니까. 국정원 등 국가기관에서 종북이라는 용어를 남용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종북 프레임에 갇혀 있어 사회갈등이 심화되는 면이 있거든요.
사회 논쟁이 끝이 없을 것 같군요.
염돈재 종북 논란은 국민 의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정보기관이라고 해서 안보만 중시해서는 안 되죠. 더 중요한 건 국민의 인권이죠.
오시영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보면 ‘2분 증오’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2분 동안 상대방을 증오하는 교육을 실시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오른쪽은 왼쪽을, 왼쪽은 오른쪽을 증오하게 됩니다. 증오를 증폭해 모든 국민을 무뇌아로 만듭니다. 저는 우리 국민이 서로에 대한 증오를 버리고 화해하고 합심해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길 희망합니다. 국정원 개혁이라는 틀 속에 그런 숭고한 가치가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사회 오랜 시간 좋은 말씀해주신 두 분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