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6일 미국 ABC가 방영한 퀴즈쇼 ‘제퍼디’에서 사람과 퀴즈 대결을 벌여 승리한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가운데). 왓슨의 실제 크기는 냉장고 10대 정도로, 퀴즈쇼 무대에 출연한 것은 왓슨의 아바타다.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은 오래전부터 계속돼왔다. 1967년 등장한 맥핵(MacHack)이 인간을 상대한 첫 컴퓨터였으니 꽤 오랜 역사를 지닌 셈이다.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이 큰 화제를 몰고 온 계기는 1989년 IBM 슈퍼컴퓨터 딥소트(Deep Thought)가 체스 세계 챔피언과 대결을 벌이면서부터다. 물론 이때는 처참하게 패했다.
하지만 1996년 IBM 딥블루(Deep Blue)는 체스 챔피언과의 첫 대결에서 승리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최종 결과는 1승 2무 3패로 패배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기엔 충분했다. 실제로 1997년 기능이 개선된 딥블루는 다시 인간과 체스 대결을 벌여 드디어 2승 3무 1패로 승리한다.
하지만 퀴즈 대결은 체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IBM 왓슨은 IBM이 2007년부터 5년 동안 개발한 슈퍼컴퓨터로 IBM 파워750 서버 90대를 10GB 이더넷을 이용해 서버 클러스터로 묶어 냉장고 10대 덩치다.
물론 크기보다 더 놀라운 건 이 머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1초에 80조 번(80테라플롭스)에 이르는 연산 능력을 갖췄고 메모리에는 책으로 치면 100만 권에 달하는 분량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런 능력 덕에 왓슨은 200만 쪽 분량을 3초 안에 검색할 수 있다.
물론 왓슨이 그냥 인터넷 검색을 하듯 대결을 펼친 건 아니다. 왓슨은 퀴즈쇼에 인터넷 연결 없이 자체 데이터베이스(DB)만으로 대결을 벌였다. 왓슨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질문 내용을 알아서 이해하고 데이터를 분석, 찾아낸 근거를 바탕으로 답변한 것이다, 인간처럼.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건 DeepQA라고 불리는 자연어 처리 능력과 정보 수집, 지식 표현과 논리 추론 능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인간의 지능적 사고 및 행동을 모방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말한다. 아직까지 주위에서 흔히 보는 인공지능은 음성인식에 들어간 간단한 일상 대화나 정해진 답변 정도다. 하지만 왓슨은 사람 말을 알아듣고 알아서 답변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컴퓨터와 인간이 대화하는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IBM이 8월 인간 뇌처럼 작동하는 컴퓨터 프로젝트 트루노스(TrueNorth)를 발표했다.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조인트 콘퍼런스 온 뉴럴 네트워크(International Joint Conference on Neural Networks) 기간 중 인간의 뇌를 에뮬레이션할 목표를 둔 트루노스 프로젝트를 알린 것이다.
트루노스는 20억 개에 달하는 신경 시냅스 코어로 이뤄진 거대 네트워크를 시뮬레이션한다. 코어마다 256개씩 디지털 신경을 갖춰 모두 합하면 100조 시냅스다. 신경은 고유한 방법으로 주위 신경에 와서 입력된 데이터와 반응하게 된다. 사람의 뇌와 같은 연산 방식을 갖춘 시뮬레이션을 컴퓨터가 처리하는 셈이다. 2011년 IBM은 신경처럼 정보를 제어할 수 있는 신경 시냅스 코어를 바탕으로 한 코어 네트워크 칩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트루노스는 전통적인 컴퓨터가 정보를 순차 처리하는 폰노이만식 아키텍처 구조를 띤 것과 달리 병렬로 작업한다. 데이터를 분산해서 저장, 분석하는 시스템을 갖춰 시냅스를 통해 의사를 소통하는 뉴런처럼 행동하는 것. 트루노스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 언제 현실화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IBM은 장기적으로 트루노스를 이용하고 1kW 이하 전력만 소비하는 컴퓨터용 칩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인간 추론 능력에 근접한 인공지능 등장 예견
외신에 따르면 인텔도 웨어러블 컴퓨터 등과 연동해 작동하는 인공지능 로봇 ‘지미’를 발표했다. 본체는 3D 프린터로 직접 제작할 수 있지만 이보다 관심을 끄는 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인공지능 탑재다.
물론 지금까지 개발한 인공지능의 IQ는 네 살배기 아이 수준이라고 한다. MIT대가 개발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테스트한 결과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수준도 계속 올라갈 것으로 보이는 데다 활용 분야도 광범위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무인 자동차나 언어 번역은 물론 공항 제어, 인텔리전트 빌딩 시스템에 쓰일 수도 있다. 애플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내놨거나 추진 중인 음성인식과 결합한 자동 개인 비서도 매력적인 시장 가운데 하나다.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영상이나 패턴 인식 기술, 음성인식 등 인공지능을 뒷받침할 만한 분야도 강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인공지능은 머지않아 괄목할 만한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다.
실제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20년이면 인간의 추론 능력에 근접한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으로 예견하기도 했다. 테크캐스트(Techcast)는 2025년이면 인간 정신노동의 30%가량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공지능이 이 정도 수준까지 발전하게 된다면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 인공지능이 갖추게 될 ‘지능’은 개개인의 정보, 그러니까 사생활을 바탕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미래 씨 노트
“중국 왕조를 순서대로 말해보세요.” “아, 그게… 삼황오제 하은주….” 김미래 씨가 답변을 버벅거리는 사이 컴퓨터가 중국 왕조 명칭을 순서대로 모두 외워서 답한다. 이번에도 패배. “맞힐 수 있었는데…치.” 김 씨가 속상해하자 컴퓨터가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다음엔 잘 하실 거예요”라고 격려까지 해준다. 그러고 보니 김 씨가 다니는 회사에도 그동안 인간의 영역이었던 지식 노동 중에서 반복적인 것 상당수는 인공지능이 맡은 지 오래다. “맞아. 콜센터도 이번에 모두 인공지능으로 바뀌었다고 했지.” 김 씨는 이젠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아이에게 권해야겠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다.
관점 디자인 토크 ● 당신의 인생 목표는 ‘컴퓨터가 못할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