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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북한 급변사태 최신 시나리오Ⅱ

‘제2 청일전쟁’은 한중분쟁?

“中의 센카쿠 다음 목표는 北”

  • 김영림 | 재일 군사평론가 c45acp@naver.com

‘제2 청일전쟁’은 한중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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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양함대에 자극받은 日

1882년 대원군을 실각시키고 권력을 잡은 민씨 척족이 일본식 훈련을 받은 신식 군대 ‘별기군’을 편성해 구식 군대를 차별하자 반발한 병사들이 일본인 교관과 한양 거류 일본인들을 살해하고 대원군을 복위시키려는 반란을 일으켰다(임오군란). 민비 세력이 구원을 요청하자 청조는 갓 도입한 영국제 순양함 3척이 호위하는 수송선단으로 지상군을 신속히 조선에 전개해 반란을 진압했다.

청조는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는 데 직접적인 발판이 될 수 있는 한반도에서만은 일본에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개입했다.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 장악을 낙관하던 일본에 선수를 치는 데 성공했다. 청조는 1884년의 갑신정변 때도 조선에 병력을 신속하게 투입해 영향력을 공고히 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영국이 조선의 거문도를 불법 점거한(거문도 사건) 1886년에도 북양함대를 파견해 위세를 떨쳤다.

당시 일본은 예산의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청의 갑철함과 동급인 전함을 구입해 대항하는 ‘대칭전략’ 대신 저렴한 순양함과 당대의 최신 병기인 어뢰정을 구입해 대항하는 ‘비대칭전략’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러던 1891년 북양함대가 일본을 친선 방문하자 일본인은 자국의 해군력이 크게 열세라는 것을 깨닫고 충격에 빠졌다.

1893년 일본은 왕의 칙어를 통해 전 공무원 급료의 10%를 헌납하고 왕실 내탕금까지 투입해 ‘정원’과 ‘진원’을 능가하는 1만2000t급 영국제 최신 전함 ‘후지(富士)’와 ‘야시마(八島)’를 도입하기로 했다. 2척을 도입하는 데 들어간 예산이 GDP의 1.2%에 달했다. 현재 일본의 국방예산이 GDP의 1%에 묶여 있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 일본이 최신 전함 확보에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후지’와 ‘야시마’가 진수된 것은 청일전쟁 종전 이듬해였다.



그런데도 청나라 해군은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그 원인으로는 청조의 전술적 불운과 인프라 미비를 꼽을 수 있다. 청일전쟁 초기 청의 북양함대와 일본 연합함대가 황해에서 벌인 결전에서 ‘정원’과 ‘진원’은 수백 발이 넘는 포탄을 맞았지만 치명탄은 단 한 발도 허용하지 않는 방어력을 과시했다. 거꾸로 ‘진원’이 발사한 30cm 거포탄 한 발이 일본 해군 지휘함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했다.

그럼에도 일본 함대가 승리한 요인은 수병들의 우수한 숙련도에 있었다. 청조는 대함대를 확보한 순간부터 자만에 빠져 해군 예산을 삭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수병의 훈련도와 사기가 크게 저하됐다. 교육과 훈련이라는 기초적 인프라가 워낙 불비(不備)했기에 북양함대는 수많은 포탄을 수면으로 떨궈야 했다.

日 꺾고 美와 태평양 半分?

일본 연합함대는 기본 전력은 열세였지만 수병들의 숙련도, 보급, 정비 등 인프라가 탄탄했다. 그 결과 ‘정원’ ‘진원’을 격침하진 못했지만 주변의 호위함을 다수 침몰시켜 판정승을 이끌어냈다. 싸움에 임하는 진지함이 승부를 가른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패권 확보가 향후 자국의 명운을 결정하리라는 비상한 각오로 싸웠다.

1885년부터 3년간 일본 육군사관학교 교수를 지낸 독일인 메켈은 “한반도는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와 같다”고 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실력자 야마가타 아리토모(1838~1922·일본 최초 총리 역임)는 1890년 ‘외교정략론’을 통해 일본 영토를 절대적으로 방어해야 할 ‘주권선’으로, 한반도를 주권선의 방어를 위해 반드시 장악해야 할 ‘이익선’으로 설정했다.

청도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과하진 않았다. 리훙장의 심복 마젠충(1845~1899)은 북양함대 구축이 한창이던 1880년대 초 ‘정원’급 갑철함 9척과 순양함 36척을 확보하고 조선의 거문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면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며 동아시아의 해양 패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조는 일본을 능가하는 전력을 확보한 것에 자만해 더 이상의 증강을 중단함으로써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패했다. 그 결과 청은 한반도에 대한 이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대만을 일본에 할양했는데, 그때 센카쿠 제도도 함께 일본에 넘어갔다.

그 후 중국은 기나긴 내리막길을 걷다가 오늘날에 이르러 설욕을 꾀하고 있다. 청일 간 해상 패권 경쟁의 종착점이던 센카쿠 제도를 새로운 동북아 해상 패권 경쟁의 출발점으로 삼은 중국의 다음 목표는 어디가 될 것인가.

중국은 국력 신장에 따른 자신감과 함께 축적된 내부 모순에서 비롯된 사회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려는 의도에서 해양 팽창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1차적으로는 동북아 패권의 경쟁자가 될 개연성이 높은 구적(仇敵) 일본을 꺾고, 2차적으로는 태평양의 절반을 미국과 양분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 의회 조사국 보고에 의하면 중국은 2020년대까지 6척의 항공모함을 확보하려 한다. 반면 미 해군은 예산 축소 때문에 11척인 항모를 8척으로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미 해군은 항모를 대서양과 태평양 등 전 세계 바다에 분산 배치하고 있으니 서태평양에서는 오히려 중국에 비해 열세에 놓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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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림 | 재일 군사평론가 c45ac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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