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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심는 탈북자 교육이 ‘탈남’ 부추긴다

‘탈북-입북-재탈북-구속’ 김광호 사건의 교훈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환상 심는 탈북자 교육이 ‘탈남’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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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탈북, 남한에 정착했던 김광호 씨가 북한으로 돌아갔다가 재탈북,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충격을 안겼다. 탈북자 단체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현행 탈북자 교육을 되짚어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환상 심는 탈북자 교육이 ‘탈남’ 부추긴다
1월 24일, 북한 조선중앙방송에서는 북한으로 되돌아온 ‘탈북자’ 4명의 합동 기자회견을 방송했다. 이들 중엔 김광호(37) 씨도 있었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귀환 탈북자’ 기자회견을 공개하고 있다. 벌써 8명이 넘는다. 정부는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의 정확한 숫자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탈북자 단체에서는 1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목숨을 걸고 ‘자유대한’ 품에 안겼던 그들이 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던 차에 지난 6월 김 씨가 북한을 다시 탈출했다가 중국에서 공안에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 씨는 국내로 소환됐고,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전 재산 들고 북한행

김 씨의 사연은 드라마틱하다. 2009년 8월 동거녀 김모 씨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한 그는 한국행을 도와주겠다는 브로커를 통해 라오스, 태국을 거쳐 그해 11월 한국으로 들어왔다. 전남 목포에 정착한 그는 동거녀 김 씨와 결혼식도 올리고 딸도 낳았다. 일용직이었지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다. 자동차도 샀다. 한국 사회에 안착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10월 갑자기 남한 생활을 정리했다. 자동차도 팔고, 은행에서 모든 예금과 적금을 해약해 현금화했다. 그렇게 전 재산 4000만 원을 들고 아내, 아기와 함께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소지한 돈을 북한 당국에 뺏기지 않으려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에 있는 어머니에게 돈을 맡긴 후 자수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0월 말이라 두만강 물은 불어 있었고 날씨도 궂어 어린 딸을 데리고 강을 건너기가 쉽지 않자 선양에 있는 북한영사관을 찾아갔다. 영사관 직원의 지시에 따라 칠보산호텔에서 9일 동안 대기하다 11월 3일 고려항공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정식 입북했다.

그는 평양의 호텔에서 2개월 정도 머물며 국가안전보위부의 조사를 받았다. 이때 국가정보원의 합동신문 조사방법과 집중 신문 사항,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위치와 구조, 센터 내 탈북자 수용 장소 등을 알려줬다. 센터 내에서의 생활도 일일 일과표로 만들어 제출했다. 하나센터 위치, 시설, 교육내용, 교육담당자 신원은 물론 한국에서 알게 된 탈북자 23명의 신원, 자신을 관리했던 경찰관들의 인적사항까지 진술했다.

1월 24일엔 아내와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해 “남조선은 사기와 협잡,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험악한 세상” “탈북자는 남조선 괴뢰들이 벌이는 반공화국 인권소동의 희생자” “돈만 있으면 증인도 원수로 돌변하고, 허위증언을 하고 돈이 없으면 피해자도 피고석에 앉아야 하는 불법 무법의 사회”라고 한국을 비난했다.

기자회견 후 김 씨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새집도 선사받았다. 하지만 당 간부가 그에게 하사된 새집을 가로채고 헌 집을 지정해줬다. 뒤늦게 사실을 안 그는 새집을 돌려달라고 중앙당에 신소(민원)를 넣었다가 오히려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평양에서는 환대를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고향에서는 철저한 감시 대상이 됐다.

당 간부들에게 이런저런 시달림을 받기도 했다. 그가 가져간 전 재산은 중국에서 두만강을 도강해 북한으로 잠입하려던 과정과 북한의 최종 입북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에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남은 돈도 툭하면 집으로 몰려와서 술이며 고기를 요구하는 당 간부들을 대접하느라,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무심코 “남한에선 잘 먹고 잘살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체포되는 바람에 이를 무마하느라 탕진했다.

북한 사회에 재정착하는 데 실패한 데다 신변의 위협까지 느낀 그는 일가족과 처제, 처남을 데리고 다시 북한을 탈출했다. 중국에서 남한으로 돌아오기 위해 브로커와 연락을 취하던 중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북한은 김 씨 일행을 모두 넘겨달라고 요구했지만 중국 당국은 북한 국적인 김 씨 처남과 처제는 북한으로 압송하고, 한국 국적인 김 씨와 아내, 딸은 한국대사관으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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