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호

완전한 기억의 시대가 온다

라이프로그

  •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Perspective Designer)

    입력2013-10-24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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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기억의 시대가 온다

    라이프로그 카메라 메모토는 개인의 생활을 30초 간격으로 알아서 찍어준다.

    영화 ‘토털 리콜’은 정신보다는 육체로 연기를 펼치는 주연배우를 앞세워 “기억이 없다면 정체성도 없다”는 복잡한 메시지를 전달한 작품이다. 영화 속 미래는 한 개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걸 기억하는 완전한 기억(Total Recall)의 시대로 묘사돼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고든 벨은 2002년부터 이런 완전한 기억의 시대를 대비한 프로젝트 ‘마이 라이프 비츠’를 진행했다. 개인의 삶을 모두 디지털화해 저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저서 ‘디지털 혁명의 미래’에서 이런 완전한 기억의 시대를 그렸다. 그는 책에서 ‘망각에 대한 두려움’이 거대 시장을 낳을 것이라 말한다. 보통 우리가 기억이라 부르는 건 생물학적 기억을 뜻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기억이라는 건 주관적이고 고르지 않으며 감정에 치우치거나 자아의 검열을 받고 인상에 근거하고 변하기도 쉽다. 이에 비해 전자기억이라는 건 객관적이고 냉정하며 무미건조하고 가차 없이 정확하다.

    저자는 실제로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센스캠이라는 걸 목에 걸고 다니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20초 단위로 사진을 찍어 자신의 일상을 기록했다. 이렇게 개인의 모든 걸 기록하고 보관할 것이라는 생각이 물론 지금이 처음은 아니다. 빌 게이츠는 1995년 저서 ‘미래로 가는 길(The Road Ahead)’에서 “언젠가는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을 기록할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개인의 일상 기록이 라이프로깅(Life Logging)을 통해 후대에 남는다면 이런 ‘디지털 불멸성’을 통해 자신의 아바타가 후대와 대화를 하는 등 상호작용을 하게 될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다.

    얼마 전 선보인 메모토(Memoto)라는 제품은 개인의 생활을 30초 간격으로 알아서 찍어주는 라이프로그 카메라다. 크기가 36×36×9mm에 불과한 초소형 500만 화소 카메라로 클립을 이용해 옷이나 가방에 간편하게 부착할 수 있다. 30초마다 알아서 셔터를 내려가면서 사진을 찍고 클라우드 서버에 올려준다. GPS를 내장해 시간이나 장소까지 기록해주고 날짜별로 검색해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기록을 굳이 라이프로그 전용 기기로만 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구글 글래스나 갤럭시 기어, 아이워치 같은 웨어러블 컴퓨터도 얼마든지 라이프로그 기기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웨어러블 컴퓨터가 대중화하면 로컬 하드디스크와 경계가 무너질 것으로 보이는 클라우드 공간에 개인의 모든 기록을 저장하고 꺼내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더 이상 수첩은 필요 없다. 청문회에서 정치인들이 너나없이 말하던 “기억나지 않습니다”라는 말도 사전 속에서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왜냐고? 당신의 모든 기록을 클라우드가 기억하니까.

    ◎ 김미래 씨 노트

    “아. 이건 좀 기록해둘까?” 수첩을 꺼내 든 김미래 씨를 보는 동창들 표정이 이상하다. “어머. 넌 아직도 수첩에 그런 걸 기록하니? 어차피 라이프로그에 다 찍히는데 뭐하러 그런 걸 하는지 몰라.”

    김 씨도 어릴 때부터 버릇처럼 꺼내 들던 수첩을 쑥스럽게 다시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하긴 이제 30초마다 내 일상을 찍어주는 카메라가 사진이며 동영상, 음성 기록, 어디에 갔었는지 장소까지 다 GPS로 재서 기록으로 남겨 클라우드에 올려주는데 뭐가 걱정이랴 싶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지난달 우리 모임 어디에서 했더라?” 이런 얘기를 꺼냈다간 한소리 듣는다. “진짜 완전한 기억의 시대네. ㅜㅜ.”

    관점 디자인 토크 ●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사전에서 지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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