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집중해부

마스크 대란(大亂) 주범은 국가다!

누가 시민을 아귀다툼으로 내몰았나

  • 고재석 기자 이현준 기자 문영훈 기자

    jayko@donga.com mrfair30@donga.com yhmoon93@donga.com

    입력2020-03-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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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건용 마스크 권하던 정부, 大亂에 표변

    • “물량 충분하다”던 대통령…시민들은 “장난하나?”

    • 초과생산 단가 50원 인상 인센티브…정작 업체는 몰라

    • 유통업체 “하루 수천 곳 약국 마스크 배분, 유통에 시간차 발생”

    • 지오영·백제약품 등 유통업체 선정 특혜 논란

    • 백제약품 “인건비 등 추가비용, 200원 마진 큰 금액 아냐”

    • “필터 제작 기계 50억 원, 中 필터 수입 못 하면 마스크 생산 차질”

    • “정부, 미세먼지 확산에 자생력 약한 업체 허가…이제 와서 부메랑”

    3월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약국 앞에 평일에 마스크를 사지 못한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뉴스1]

    3월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약국 앞에 평일에 마스크를 사지 못한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뉴스1]

    ‘마스크 대란(大亂)’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사회가 견고히 쌓아왔다고 믿었던 시장 질서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대한민국 국민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현실적 상황 앞에 속수무책으로 놓여 있다. 사람들은 오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약국에 출석 도장을 찍는다. “오늘은 꼭 사야 하는데….” 불안함과 초조함이 약국 앞 긴 줄에 몸을 맡긴 사람들을 감싼다. 그 틈새에 매점매석으로 한몫 챙기려는 ‘꾼’들이 활개친다. 누가 시민을 아귀다툼이 난무하는 현장으로 내몰았나. 비극은 2020년 1월 26일 시작한다.

    프롤로그: 1월 26일~2월 24일, 정부의 표변

    구글 트렌드(Google Trends)는 사회적 이슈나 키워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구글판 ‘검색어 순위’다. 관심도 수치는 0에서 100으로 분류되는데, 100에 가까울수록 많은 사람이 검색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마스크’에 대한 관심도 수치는 1~4에 머물렀다. 

    같은 수치는 1월 26일부터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이날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국내 확산에 대한 우려가 스멀스멀 터져 나오던 때였다. 정부는 국민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1월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KF94, KF99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발표를 내놨다. 그로부터 이틀 뒤, 구글 트렌드에서 마스크 관심도 수치가 36으로 치솟았다. 마스크 수요가 증가하리라는 건 그때 이미 명확해졌다는 방증이다. 

    수요가 늘자 마스크를 사재기하거나 코로나19 확산이 정점에 이른 중국으로 몰래 수출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2월 5일 정부가 매점매석 금지 고시를 실시했다. 2월 5~7일간 신고건수는 무려 703건에 달했다. 정부는 2월 12일에서야 유통망 관리에 나섰다. 이날 정부는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 관련업체들에 마스크 생산량·유통량을 모두 식약처에 신고하게 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국내에서 처음 나온 1월 20일에서 이미 20여 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국내 확진자가 점차 줄면서 마스크의 구글 트렌드 관심도 수치는 하향 곡선을 그렸다. 상황은 급반전했다. 2월 19일, 대구 신천지예수교회에서 31번 확진자와 함께 예배에 참석했던 교인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커졌다. 마스크 관심도 수치는 2월 24일에 이르자 91로 치솟았다. 이튿날 정부는 두 번째 마스크 대책을 내놓았다. 마스크 생산량의 50%를 ‘공적 마스크’ 판매처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2월 26~28일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인천 남동경찰서는 2월 29일 경기도 김포시 한 창고에서 사재기한 마스크 2만9000여 장을 압수하고 관련자들을 불구속 입건했다. [뉴스1]

    인천 남동경찰서는 2월 29일 경기도 김포시 한 창고에서 사재기한 마스크 2만9000여 장을 압수하고 관련자들을 불구속 입건했다. [뉴스1]

    2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마스크 수출 제한 조치로 공급 물량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에게 약국 등에 가면 언제든지 마스크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을 지지하건 지지하지 않건 국민은 대통령의 말에 안도했다. 

    이튿날 정부서울청사에 출근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표정에는 결기가 엿보였다. 이날 그는 마스크 수급 안정 관련 긴급 브리핑을 자청해 “국민의 접근성이 높은 2만4000여 개 약국에 대해 점포당 평균 100장씩 총 240만 장을 공급할 계획”이라면서 “내일(28일)부터 우선 120만 장이 전국 약국을 통해 판매되며 이 중 23만 장은 대구·경북 지역에 우선 공급된다”고 말했다. 꼬였던 실타래가 이내 풀릴 것만 같았다. 

    2월 28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현장 상황은 대통령과 부총리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전개됐다. 이날 약국 앞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우산을 쓴 채 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정작 마스크를 구한 사람은 드물었다. 같은 날 ‘신동아’는 서울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 5호선 광화문역, 1·2호선 시청역 인근 약국 24곳을 찾았다. 방문 시간대는 오전 11시 20분에서 오후 2시 30분 사이. 하지만 공적 마스크를 공급받았다는 약국은 24곳 중 단 한 곳도 없었다. 마스크 구매가 가능한 약국도 3곳에 불과했다. 

    “사람 갖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 윤모(35)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나라에서 약국에 마스크를 배포한다고 해 사러 왔어요. 품절 걱정에 점심까지 거르고 뛰어왔는데 마스크 공급 자체가 없었답니다. 속은 기분이라 허탈하고 불쾌해요.” 그의 얼굴에 ‘속았다’는 표정이 스쳤다. 

    졸지에 총알받이가 된 약사들은 답답함을 토로했다. 여의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A씨는 헛웃음을 지으며 씁쓸하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당장 공급해 주지도 못할 거면서 왜 공급한다고 발표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약사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성토가 가득해요.” 

    광화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B씨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마스크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질렸다는 듯 “1시간 전부터 세어봤는데 손님이 208번째”라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전화는 수시로 울리고 지나는 분들도 들어오셔서 마스크 들어왔느냐고 물어보세요. 수백 번씩 대답하다 보니 저도 지치네요.” 

    서울 광화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C씨는 억울한 일을 당했단다. 손님에게 공적 마스크가 없다고 말했더니 “정부에서 분명히 100개씩 준다고 얘기했는데 어디서 거짓말이야! 문 열자마자 왔는데 없을 리가 있어? 일부러 안 팔다가 더 비싸게 팔려는 수작이지?”라는 폭언이 돌아왔다고 한다.  

    시청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D씨는 정부 공급 물량을 기다리다 지쳐 직접 생산 공장에 가서 마스크를 구입해 왔다. 판매 가격은 4000원.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이마저 순식간에 팔렸다. 기자가 약국에 머무르던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5~6명의 손님이 마스크를 사러 왔다. 30만 원어치 마스크를 한 번에 사가는 손님도 있었다. ‘오늘쯤 공적 마스크가 공급된다는 말을 듣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D씨가 이렇게 답했다. 

    “어제는 어제 공급된다고 들었고, 오늘은 오늘 공급된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내일도 그럴 거예요. 그다음 날도 그럴 거고. 그다음 주도 그러겠죠. 전혀 기약이 없어요. 오죽하면 직접 가서 사오겠어요.”

    3월 5~8일 “인센티브 받더라도 생산량 못 늘려”

    정세균 국무총리가 3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회의에 면마스크를 쓰고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3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회의에 면마스크를 쓰고 참석하고 있다. [뉴스1]

    3월 5일 당황한 정부가 전례 없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다. ‘마스크 5부제’다. 시민들은 국가로부터 출생연도에 따라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요일을 배정받았다. 돈이 많건 적건 1주일간 구매할 수 있는 마스크 수량은 2장이 됐다. 이날 ‘마스크’의 구글 트렌드 관심도 수치는 100에 도달했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의 움직임이 빨라진 건 이즈음이다.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은 마스크 등 보건용품 유통 교란을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려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코로나19 사태를 악용해 보건용 마스크로 유통 질서를 교란한 151명을 검거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구체적으로 △판매·유통업자 창고 보관 37건(88명) △공무원 현장점검 방해 3건(5명) △판매량 신고의무 위반 13건(29명) △생산업자 창고 보관 1건(1명) △기타 유통질서 문란행위 18건(28명) 등이었다. 

    단속 과정에서 확보된 마스크 782만 장은 공적 판매처 등을 통해 신속히 유통됐다. 수사를 담당한 김태현 경찰청 수사과 경정은 “주로 신고나 물류창고 점검을 통해 마스크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며 “현재 마스크는 압수하지 않고 식약처로 넘어가 공적 마스크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단속을 강화한다는 건 그만큼 마스크 물량이 달린다는 방증이다. 정부 당국자의 말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한 시기도 딱 이즈음이다. 3월 6일 김상조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은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거나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 구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3월 8일 정세균 국무총리는 “나부터 면 마스크를 사용하겠다”고 했다. 딱 40일 전 식약처는 KF94, KF99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정부의 말을 먹어치운(食言) 꼴이 됐다. 

    이미 ‘마스크 생산량 증대’라는 단어는 각종 정부 보고서와 언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수천, 수만 번이 적혔다. 하지만 2월 12일부터 식약처가 조사한 마스크 생산량은 하루 평균 1000만 장 수준에 머물렀다. 1주일 7000만 장. 국민 개개인이 1주일에 두 장씩 쓰기에는 부족한 숫자다. 사태가 장기전에 돌입한 터라 마스크 수요가 줄기도 어렵다. 

    정부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생산력 증대를 위한 동기부여에 나서기로 했다. 3월 8일 정부는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 보완방안’을 내놓으며 생산업체에 ‘당근’을 제시했다. 평일 평균 생산량 초과분 및 주말 생산량 전체에 대해 개당 50원씩 단가를 인상하기로 한 것이다. 

    성급한 인센티브는 역효과를 불러오게 마련이다. 한 마스크 생산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6월 30일까지 개당 900원에 조달청에 공급하기로 계약돼 있습니다. 그 계약서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해당 정책(인센티브 확대)의 내용도 언론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이미 공장은 과부하 상태고, 마스크 생산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인력도 필요합니다. 인센티브를 받더라도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날 정부가 꺼내 든 또 하나의 카드가 마스크 수입 요건 완화다. ‘해외직구’로 공급을 늘리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해결책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코로나19 확진자가 세계 각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3월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에서 의료진이 착용하는 N95마스크가 부족해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3월 11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을 선언했다.

    문제의 3월 9일 “200원은 큰 금액이 아니다”

    3월 9일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됐다. 이날 ‘신동아’는 다시 여의도와 광화문을 찾았다. 약국 전산 시스템에 구매 이력을 등록하기 위해 신분증이 필요했다. 이날은 1991년생인 이현준 기자가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월요일이었다. 오전 8시 30분 광화문의 한 약국은 이미 마스크가 매진된 상태였다. 오전 10시 30분 여의도의 한 약국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마스크를 구매했다. 

    마스크 공급 시간과 물량은 제각각이었다. 정부는 약국당 250장의 마스크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작 광화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A씨는 “3월 6일부터 하루 200장씩 마스크가 공급됐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는 지키든 못 지키든 일단 발표부터 하고 보는 것 같다”고 힘없이 말했다. 여의도의 한 약국도 마찬가지로 200장의 마스크를 공급받았다. 

    약국에 공적 마스크를 공급하는 백제약품 관계자는 “하루에도 수천 곳의 약국에 마스크를 배분하고 있기 때문에 약국마다 공급받는 데 시간차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뢰가 깨지니 의혹이 자랄 토양이 형성됐다. 일부 언론, SNS 등에서 정부가 공적 마스크 유통업체인 지오영과 백제약품에 특혜를 부여한 게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지오영의 직거래 약국은 전체 약국의 75.5% 수준인 1만4000여 곳에 달한다. 백제약품을 통해서는 나머지 약국 5000여 곳에 공적 마스크를 공급한다. 

    지오영과 백제약품의 마스크 약국 공급가는 1100원이다. 정부와 마스크 생산업체 간 마스크 계약단가가 1개당 900원이니 유통업체가 개당 약 200원의 마진을 남기는 구조다. 보통 하루 평균 560만 장을 공급하기 때문에 1일 마진은 최대 11억3000만 원이 된다. 

    같은 날 정부는 “매일 전국 약국에 많은 양의 마스크를 공급하기 위한 밤샘 배송과 1인 2매로 소포장하는데 많은 물류비와 인건비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과도한 가격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날 ‘신동아’는 서울 구로구 백제약품 영등포지점을 찾아 이용운 백제약품 구매본부 이사를 만났다. 

    “인력이 부족해 추가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야 하고, 제주도는 항공편을 통해 마스크를 보내니 추가비용이 많이 듭니다. 남는 돈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 기존 업무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당 200원의 마진이 큰 금액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는 중국 상무부를 통해 ‘멜트블로운(MB)필터 수출을 허용해 달라’는 의견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전달했다. 최근 국내 마스크 수요가 급증하면서 MB필터 공급이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건용 마스크는 마스크의 겉을 이루는 부직포, 귀와 마스크를 연결하는 끈, 필터로 구성된다. 필터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이물질을 막아주는 가장 중요한 원자재다. 특히 MB 필터는 초극세 부직포 섬유로, 오염물질을 차단하는 보건용 마스크에서 심장과 같은 존재다. 중요한 원자재인 만큼 만들기도 어렵다. 

    마스크 생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마스크를 조립하는 기계는 대당 2000만 원 정도지만 마스크 필터를 만드는 기계는 한 대에 50억 원에 달한다. 필터 생산을 급격히 늘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마스크 생산업체 136곳 중 대부분은 국산 필터를 주로 사용해 왔다. 다만 22곳은 중국에서 수입한 MB필터를 사용한다. 보건용 마스크 생산업체인 제이와이이노센트 관계자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MB 필터가 부족해 생산량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며 “하루 마스크를 10만 장까지 생산 가능한 설비를 갖췄는데 현재 5만, 6만 장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규모 업체의 난립도 문제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또 다른 마스크 생산업체 관계자는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서 마스크 수요가 많아졌다. 이에 필터를 자체 생산하기 어려운 소규모 마스크 업체가 많이 생겼다”면서 “이를 허가해 준 건 정부”라고 말했다.

    3월 10~13일, 흩뿌려지는 판매망

    3월 1일 서울 중구 명동 한 상점에서 KF94 마스크가 판매되고 있다. [뉴스1]

    3월 1일 서울 중구 명동 한 상점에서 KF94 마스크가 판매되고 있다. [뉴스1]

    공급은 달리고 수요는 늘었다. ‘마스크를 달라’는 아우성이 그칠 줄 모른다. 거리에서는 실망과 분노, 체념이 한데 뒤엉켜 손만 톡 대면 터질 것만 같다. 무질서는 이재(理財)에 밝은 누군가에게는 돈벌이의 기회다. 정부는 마스크 생산 및 판매업자가 매점매석한 마스크에 대해 자진 신고하면 처벌을 유예하는 자진신고기간을 3월 10~14일로 정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자진신고기간은 생산업체나 유통업체가 매점매석하고 있던 물량을 최대한 빠르게 시장에 유통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3월 10일부터 12일까지 자진신고는 3건에 불과했다. 확보한 마스크 물량도 10만장에 그쳤다. 

    그사이 온·오프라인 곳곳에 약국과는 상관없는 판매망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맛집, 부동산, 육아 정보 등을 나누는 인터넷 맘카페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3월 12일 오전 10시 25분. A맘카페에 ‘마스크 KF94 정리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남편이 마스크 제조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업체 거래하고 조금 남은 것 정리하려고 해요. KF94 전부 개별 포장입니다. 직거래 원하시면 (경기) 군포공장으로 방문하시면 가능해요. 개당 1800원에 택비(택배비) 포함 회원들께 판매할 예정입니다. 지금 1000장 정도 남아 있다고 하네요. 최소 주문 50매, 100매 이렇게 가능합니다. 업자 분들 연락 주지 마세요.” 

    글이 게시된 후 15분이 지날 무렵 마스크 구매를 위해 돈을 송금했다는 회원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내 맘카페 곳곳에서 ‘마스크 피싱’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신동아’는 글에 공개된 ‘카카오톡’ 아이디를 등록해 판매책에게 “경기 군포에서 오후 2~3시 사이에 50장을 구매하겠다”고 제안했다. 판매책은 “공무원이 지키고 있어 오후 8시 이후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같은 날 오후 8시 군포시의 한 공단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1시간 30여 분 동안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판매책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3월 13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간식가게 주인이 마스크 판매에 열중하고 있었다. 견과류나 스낵을 파는 가게에 ‘구하기 힘들다’던 KF94 마스크가 대량 비치돼 있어 낯설었다. 어디서 산들 대수이랴. 1장당 4000원으로 비싼 편이었지만 대신 1인당 구매 제한이 없어 10장을 구매했다. 주인에게 “요즘 마스크 구하기 어려운데 어디서 난 거예요?”라고 묻자 “우리도 어렵게 구했어요”라는 말만 되돌아왔다. 주인은 이런 질문이 익숙한 듯 말을 아꼈다. 궁금증은 서울 남대문경찰서 수사과 지능팀의 유태용 경위가 풀어줬다. 

    “아, 거기는 이미 3월 11일이었던가? 신고를 받고 조사한 곳이에요. 거긴 따로 공급처를 뚫었어요. 제조사랄까, 공급하는 도매상들을 통해 판로를 뚫은 거죠. 본인들 능력으로 구해서 파는 거라 문제가 없습니다. 가격 또한 원가보다 5배만 넘지 않으면 됩니다. 4000원이라 해도 원가(900원 추정)의 5배를 넘지 않아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이런 사례에 대해 시민들의 신고가 많이 들어옵니다. 실제로 명동에서 물가안정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마스크 매점매석 사례가 많습니다. 지금도 계속 단속 중입니다.”

    에필로그: 국가란 무엇인가

    비극의 서사를 마무리할 때다. 인적 없는 ‘유령도시’를 만든 정부가 시민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고 채근한다. 시민과 시민 사이에 의심과 경계를 싹틔운 정부가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 달라고 훈계한다. 대관절 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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