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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무료급식 중단 쪽방촌

“사흘 전 마지막 점심”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굶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무료급식 중단 쪽방촌

  • ●22년 운영된 종로 무료급식소, 코로나19로 문 닫아
    ●급식소 출근하던 노인들 “배고픔보다 더 힘든 건 외로움”
    ●술로 배 채우는 돈의동 쪽방촌 사람들
    ●이웃과 안부 인사 나누며 생존 신고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만난 곳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이었다. 이곳에서 노인은 ‘최씨’로 불린다. 최씨가 사는 건물엔 5평 남짓 공간에 쪽방이 4개 있다. 현관 겸 복도를 빼면, 쪽방 하나당 크기는 3.3㎡(1평)가 채 되지 않는다. 

방 안은 어두컴컴하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흡사 지하 동굴 같은 방이다. 부엌이 따로 없는 탓에 방 안에는 얼마 되지 않는 주방 살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때가 잔뜩 낀 휴대용 가스버너와 오래된 전기밥솥, 냄비, 숟가락과 젓가락 몇 개…. 

최씨가 소형 냉장고 문짝을 열었다. 냉장고 안이 휑하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지난 설 연휴에 받은 가래떡과 콜라 2캔, 언제 삶았는지 모를 고구마, 고추장과 된장뿐이다. 오늘 아침 식사를 굶은 최씨가 냉장고에서 가래떡을 꺼낸다. 그가 겸연쩍은 듯 “먹을 게 없어서…”라며 말끝을 흐린다.


22년 만에 중단된 무료급식

최씨가 재떨이로 썼는지 막걸리를 부어 마셨는지 모를 스테인리스 밥그릇 하나를 들고 방문 밖으로 나온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욕실에서 대충 설거지를 한 뒤 가래떡을 물에 불린다. 이 광경을 본 옆방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만날 막걸리만 잡수시더니, 오늘은 뭐라도 드시려나 보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확산한 지 한 달. 그사이 도시 빈민이 모여 사는 쪽방촌 사람들의 일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감염증 확산으로 하루에 한 번,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던 무료급식소가 2월 23일 운영을 잠정 중단하면서 이들의 식생활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곳 쪽방촌 사람들은 상당수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뒤편에 있는 무료급식소를 이용했다. 비영리단체 사회복지원각이 운영하는 이 무료급식소는 외환위기로 노숙인이 급증하던 1998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점심 식사를 제공해 왔다. 무료급식소에서 식사하는 이는 대부분 70~80대 어르신이었다. 하루 평균 이용자는 300~320명 남짓. 


홍등가에서 빈민 거주지로

쪽방촌 주택에는 부엌이 따로 없는 탓에 휴대용 가스버너로 밥을 지어 먹어야 한다(왼쪽).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은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홍중식 기자]

쪽방촌 주택에는 부엌이 따로 없는 탓에 휴대용 가스버너로 밥을 지어 먹어야 한다(왼쪽).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은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홍중식 기자]

하지만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2월 중순부터 감염 우려로 자원봉사자 수가 평소의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월 28일부터 31일 사이 서울 종로구에서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해 식사한 사람 중 4명(29·56·83·136번)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일까지 생겼다. 결국 사회복지원각 무료급식소는 코로나19가 잦아들 때까지 잠정적으로 문을 닫기로 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무료급식소를 이끌고 있는 사회복지원각 총무 해인심 스님은 “이곳이 코로나19 집단 감염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 내린 결정”이라면서도 “무료급식소 운영 중단으로 어르신들이 굶고 계신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무료급식소에서 3년 넘게 자원봉사하고 있는 서진우 씨는 그중에서도 돈의동 쪽방촌에 혼자 살면서 꾸준히 이곳에 식사하러 나오던 노인들을 걱정했다. “부실한 식생활로 자칫 어르신들 면역력이 약해질까 봐 걱정이에요.”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3월 5일 오후 서씨와 돈의동 쪽방촌을 찾았다. 무료급식소를 나와 1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낙원상가 인근에는 고깃집, 술집, 편의점 등 상점이 즐비하다. 큰길 건너편엔 요즘 젊은 층의 ‘핫플레이스’ 익선동 한옥거리가 보인다. 모텔촌을 지나 골목길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돈의동 새뜰마을 알림판’이라는 아기자기한 푯말이 보였다. 돈의동 쪽방촌 입구다. 대문과 전봇대마다 펜으로 써 내려간 ‘빈방 있습니다’ 종이 안내문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산뜻하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우중충한 기운이 감돈다. 

돈의동 쪽방촌은 창신동, 남대문5가, 동자동, 영등포 쪽방촌과 함께 서울 5대 쪽방촌으로 불린다. 일제강점기 이 자리엔 색주(色酒) 골목이 있었다. 광복 후에도 서울 최대 집창촌이 자리 잡았다. 서울시가 1960년대 후반 이른바 ‘나비 소탕’ 작전으로 성매매 여성을 몰아내자, 그 자리를 도시 빈민이 들어와 채웠다. 성매매에 사용하던 건물이 지금 그들의 주거지가 된 것이다. 

초인종이 달린 빨강 대문을 보고 벨을 눌렀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얼굴만 빼꼼 내놓은 채 뜨악한 시선으로 기자 아래 위를 훑어보며 묻는다.
 
“왜, 아가씨가 방 보시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곤 앞장서 길을 안내하며 혀를 찬다.


사람 굶어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곳

“말도 마요. 종로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은 뒤로 이곳 사람들이 밥을 제대로 먹고 있는지 굶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다들 바깥엘 나오질 않아요. 여기는 지금 당장 저 쪽방에서 사람이 굶어 죽었더라는 얘길 들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곳이야.” 

쪽방촌 사람들은 그를 ‘반장 아줌마’라고 불렀다. 이방 저방 사람들 챙기며 쪽방촌 질서를 유지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쪽방촌에는 반장 아줌마가 세(貰) 주는 방이 수십 채나 된다고 한다. 

쪽방은 한 평 안팎 공간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 빈민 주거지다. 그런 돈의동 쪽방촌이 ‘산뜻하게’ 바뀐 것은 2015년 이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와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도시취약지역 생활여건개조사업(새뜰마을사업)에 선정되면서 2018년까지 사업비 52억4200만 원이 투입됐다. 마을 경관이 달라졌고 공동작업장과 마을마당도 생겼다. 그러나 반장 아줌마는 이렇게 자조했다. 

“겉모습만 뜯어고친 거죠. 방 안은 이전과 똑같아요. 나도 여기서 세 받으며 살고 있지만…. 이걸 집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냥 벽 있고 지붕 있는 방이지.” 

대한구세군유지재단이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돈의동쪽방촌상담소 조사에 따르면 이곳엔 쪽방이 모두 590개 있다. 작게는 2.3㎡(0.7평), 크게는 4㎡(1.2평)까지 크기가 제각각이고, 건물 구조도 목조부터 벽돌, 콘크리트까지 다양하다. 하루 숙박료는 7000원에서 1만 원 사이. 한 달 기준으로 27만 원 안팎이 보통이다.


맹물에 캔참치, 라면 스프 넣어 끓인 찌개

무료급식소 폐쇄로 식사에 어려움을 겪는 쪽방촌 노인. 한 평도 채 안 되는 쪽방에서 부실한 식사를 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무료급식소 폐쇄로 식사에 어려움을 겪는 쪽방촌 노인. 한 평도 채 안 되는 쪽방에서 부실한 식사를 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반장 아줌마가 녹색 대문이 달린 2층 건물을 가리킨다. 6평 남짓한 공간에 방이 5개 있었다. 방마다 작은 창문이 하나씩 있고 가스보일러도 돌아가는 이 방 월세는 30만 원. 돈의동쪽방촌에서는 무궁화 5개짜리 ‘특급호텔’ 취급을 받는 곳이라고 한다. 

첫 번째 방에 불이 훤하게 켜져 있다. 얼기설기 불투명 유리를 덧댄 나무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자 ‘드르륵’ 문을 미는 소리가 나며 김씨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엉거주춤 서서 “누구요?” 묻는다. 반장 아주머니가 재빨리 기자 귀에 대고 “할아버지가 관절염을 앓고 있어 다리가 불편하시다”고 속삭였다. 

김씨 할아버지는 쪽방 안에 고만고만한 세간을 갖춰놓고 있었다. 출시한 지 20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소형 컬러TV, 미니 냉장고, 4단 플라스틱 서랍장, 얇은 담요와 베개 하나, 전기 주전자와 양은 냄비가 보였다. 좁은 방에 세간까지 있으니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 뻗으려면 몸을 대각선으로 뉘어야 할 것 같았다. 그에게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시느냐”고 묻자 “무료급식소가 문 닫은 뒤 여기서 직접 해 먹는다”고 했다. 

쪽방촌에서 부엌 갖춘 방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다. 그런데 김씨 할아버지 집에 그 보기 힘들다는 부엌이 딸려 있었다. 반장 아줌마가 세 주는 방 가운데 유일하다고 한다. 그 덕에 김씨 할아버지는 이웃에 비해 그나마 밥 해 먹기가 나은 편이었다. 그가 말했다. 

“작년에 돈의동쪽방상담소에서 받은 쌀이 좀 남아 있거든요. 그걸로 밥 지어 먹어요. 근데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어요. 반찬도 있어야지. 의사가 생선이랑 고기가 관절에 좋다고 자주 챙겨 먹으라는데, 그럴 돈이 없어요. 주머니 사정에 맞게 슈퍼에서 참치 캔 사서 고추장, 라면 스프 풀어서 찌개처럼 끓여 먹어요.” 


“배고픔보다 마음 고픈 게 더 힘들어”

돈의동 쪽방촌은 종로1·2·3·4가동주민센터 관할 구역이다. 종로구는 17개 동주민센터를 통해 무료급식소 폐쇄로 식사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쌀과 국수, 라면, 생수 등 비상식량을 긴급 지원한 상태다. 이를 안내받은 일부 주민은 동주민센터에서 물품을 받았다. 종로구 관계자는 “물품 수량이 많지 않아 모든 취약계층에 전달되지는 못한 것 같다. 추가 후원 물품이 들어오면 이번에 받지 못한 분들께도 전달되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얘기를 전해도 김씨 할아버지는 심드렁했다. 

“그런 거야 뭐 아는 사람만 가서 받는 거지. 정보에서 밀리면 못 얻어먹어요. 크게 상관도 없고. 여기 쪽방촌 둘러보세요. 사람들이 먹는 것에 크게 가치를 두고 사는가. 밥 없으면 굶거나 술로 배 채우죠. 보통은 누가 챙겨줘야 먹는다고.” 

김씨 할아버지 쪽방에서 나와 다시 길을 걸었다. 흰색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건물 2층에서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성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반장 아줌마가 그에게 “박씨,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아서 어째” 하고 인사를 건네자 우울한 답이 돌아온다. 

“나는 말이요, 배고픈 것보다 마음이 고픈 게 더 힘들어요.” 

박씨가 사업 실패 후 집에서 ‘튕겨져’ 나온 건 10여 년 전이라고 한다. 2009년 초 사채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았다. 빚쟁이들 독촉에 시달리던 아내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게 이혼이었다. 종로에 쪽방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일단 거처라도 마련하자는 생각에 들어왔는데, 그새 세월이 훌쩍 흐르고 말았다.


술로 배 채우는 사람들

박씨는 벌이가 있는 친자식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격을 받지 못한다. 스스로 밥벌이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다. 지금은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일용직으로 본인 한 몸 겨우 추스른다고 했다. 

“젊은 나이라도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면 몸만 상하는 게 아니라 영혼까지 피폐해져요. 내가 만날 죽는 얼굴로 쪽방촌을 왔다 갔다 했거든요. 옆에서 보기 딱했는지 누가 무료급식소 가서 점심 먹고 오라고 하대요. 거기서 따뜻한 밥 한 그릇에 위안을 얻었지….” 

오후 3시. 쪽방촌 골목길로 나갔다.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 반장 아줌마 말마따나 골목길은 한산하다. 슈퍼에서 초로의 중년 여성이 소주 2병을 사들고 나오는 게 눈에 띄었다. 이 모습을 본 한 노인이 “영애야, 영애야” 목청 높여 이름을 부른다.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네?” 하며 돌아보는데 초점을 잃은 눈이 흐릿하다. 노인이 여인에게 한마디했다. 

“술 좀 그만 마셔라. 그러다 몸 상한다.” 

여인이 흐릿한 미소를 지은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툭 치면 부러질 것처럼 야윈 몸이다. 쪽방촌에는 매일 술로 연명하다시피 하는 이가 허다하다. 가족 없이 홀로 사는 데다 살기가 팍팍하니 술 마실 일이 많다. 술판이 자주 벌어지니 싸움도 잦다. 자신을 ‘이씨’라고 밝힌 할아버지가 혀를 찬다. 

“영애도 무료급식소 문 닫은 뒤로 밥 안 먹고 술로만 배를 채운다 말이요. 저렇게 몸에 진기(眞氣)가 없으면 면역력이 다 무너질 텐데 어쩌려고 그러는지, 쯧쯧쯧.” 

노인에게 “어르신은 식사 잘 챙겨 드시느냐”고 묻자 “나는 뭐…”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얼굴도 삐쩍 말랐다. 이씨 할아버지가 머무는 쪽방으로 향했다. 방 안에 있는 주방 살림은 단출하다. 노인의 마지막 식사는 사흘 전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먹은 점심이라고 한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사흘 동안 소주와 막걸리로 허기를 달랬다. “왜 술로 배를 채우시느냐” 묻자 이씨 할아버지가 열변을 토한다. 

“이 방 안에 앉아서는 말이야, 밥이 잘 넘어가질 않아. 무료급식소가 문 닫은 뒤 취약계층한테 먹을거리를 준다고 언론에서 떠드는데. 쌀 주고 국수 준다고 속이 든든하게 채워지나. 사람 온기가 있어야지, 그게 밥이지.”


쪽방촌 사람들의 생존 신고

쪽방촌 노인들은 눈이 내리고 비가 쏟아져도 무료급식소를 가고 탑골공원을 돌아다닌다. 하릴없이 시간 보내려는 이유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생사 여부를 알리려는 목적이 크다고 한다. 이씨 할아버지가 한숨 쉬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전염병이다 뭐다 해서 어딜 돌아다니지도 못해. 이놈의 지긋지긋한 쪽방에서 매일 TV만 끼고 뒹군단 말이야. 쪽방촌은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죽어도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곳이야. 그래서 쪽방촌 사람들은 골목길에서 서로 만나면 안부 인사 나누고, 쪽방상담소에도 출석 체크하듯 매일 들락거려요. 내가 오늘도 살아 있다는 걸 알리려고….”




신동아 2020년 4월호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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