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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의 재발견

토르 망치 ‘묠니르’ 손잡이가 짧아진 이유

  • 김원익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문학박사 apollonkim@naver.com

토르 망치 ‘묠니르’ 손잡이가 짧아진 이유

  • ●천둥벌거숭이 로키, 시프의 머리카락 ‘싹둑’
    ●남편 토르의 분노, 황금 머리카락으로 ‘배상’
    ●대장장이 꼬드겨 황금 수퇘지, 반지, 망치 제작
    ●화근인 입을 꿰인 로키, 복수를 다짐하는데…
묠니르를 들고 출전하는 천둥신 토르. [Max Friedrich Koch, 1905]

묠니르를 들고 출전하는 천둥신 토르. [Max Friedrich Koch, 1905]

북유럽 신들은 각자 보물을 한두 개씩 갖고 있다. 가령 오딘은 ‘궁니르’라는 창과 ‘드라우프니르’라는 반지를, 풍작의 신 프레이르는 ‘스키드블라드니르’라는 배와 ‘굴린부르스티’라는 수퇘지를, 천둥신 토르는 ‘묠니르’라는 망치를 갖고 있다. 이들이 보물을 갖게 된 것은 모두 변신의 귀재 로키의 장난 때문이다. 

로키는 원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는 아무런 변화 없이 밋밋하게 시간을 보내는 걸 가장 싫어한다.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다른 신들 모르게 뭔가를 꾸미는 걸 좋아한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조용히 있으면 미칠 것 같기 때문이다. 어느 날 천둥신 토르의 아내 시프의 머리카락을 훔쳐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로키는 신들의 향연이 있을 때마다 시프가 기다란 자주색 황금빛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은근히 자랑하는 게 눈에 거슬렸다. 

로키는 우선 토르의 집 근처에 매복해 있다가 토르가 외출하는 걸 확인한 다음 담을 넘어 시프의 방으로 숨어들었다. 마침 시프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허리춤까지 길게 드리운 머리카락이 마치 가을날 벼이삭처럼 황금빛을 발산하며 절로 치렁댔다. 로키는 칼을 빼어 들고 얼른 시프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내고는 잽싸게 토르의 집을 빠져나왔다, 낮잠에서 깨어난 시프는 거울을 보고서야 자신의 머리카락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머리카락 싹둑 잘린 시프

시프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하늘이 무너진 듯 목 놓아 울기만 했다. 시프에게 머리카락은 자존심이자 마치 성서에 등장하는 삼손의 머리카락처럼 힘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토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시프는 울다 지친 나머지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토르는 우선 아내를 달랜 다음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를 녀석은 천둥벌거숭이 로키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의 머리카락 도난 사건에 대해선 함구하면서도 로키의 행방을 은밀히 수소문했다. 그다음 그를 급습해 목을 움켜쥐고 다짜고짜 아내 머리카락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하던 로키는 점점 더 목을 조여오는 토르의 기세에 눌려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시프의 머리카락을 원상 복구해 놓겠다고 약속하고서야 비로소 풀려났다. 



하마터면 큰일을 치를 뻔했던 로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옷매무새를 고치고 토르를 쳐다보며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을 던진 채 얼른 비프로스트(중간계 미드가르드와 신계 아스가르드를 연결하는 무지개다리)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금세 무지개다리를 건넌 그는 미드가르드로 내려가더니 곧장 난쟁이들이 사는 동굴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땅속으로 내려갔다. 그가 발을 멈춘 곳은 솜씨 좋은 이발디의 아들들이 살며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던 커다란 동굴 앞이었다. 그는 문패를 확인하고 이내 동굴 안으로 들어가더니 풀무질에 여념이 없는 이발디의 아들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황금으로 시프의 머리카락을 복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프의 머리에 착 달라붙는 미세한 황금 가발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였다. 그들이 대가를 요구하자 로키는 “당신들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힘이 돼주겠다”면서 “황금 머리카락을 만들 수 있다면 틀림없이 신들의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얼렁뚱땅 둘러댔다. 머리 회전이 빠른 로키는 토르가 자신의 목을 옥죄고 있을 때 이미 모든 대책을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난쟁이 대장장이가 만든 황금 수퇘지

난쟁이들은 로키의 말이 별 실속은 없지만, 약간의 황금과 수고만 들이면 되는 일이었기에 그리 손해 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풀무질을 해대며 황금을 녹여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실 가닥을 뽑아내더니, 순식간에 사라진 시프의 머리카락보다도 더 섬세하고 아름다운 황금 가발을 만들어 로키에게 내밀었다. 로키가 그 가발을 손에 들고 살짝 입김을 불어보자 마치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듯 가볍게 살랑거렸다. 로키는 만족한 듯 만면에 가득 웃음을 띠었다. 

로키의 기뻐하는 모습에 고무된 듯 이발디의 아들 중 하나가 마침 최고조에 이른 용광로의 불꽃이 아깝다며 신들이 기뻐할 선물을 2개 더 만들자고 다른 형제들에게 제안했다. 그들은 한참 망치질을 하며 ‘뚝딱’거리더니 금세 ‘궁니르’라는 창과 ‘스키드블라드니르’라는 배를 만들어 각각 오딘과 프레이르에게 갖다주라며 로키에게 건네줬다. 시프의 황금 가발에 덤으로 두 개의 보물까지 받은 로키는 언제나 그렇듯이 연거푸 고맙다는 말을 해대며 동굴을 나섰다. 

로키가 형제의 동굴을 빠져나왔을 때 그에게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래서 곧장 지상 미드가르드를 거쳐 아스가르드로 가지 않고, 기억을 더듬어 지하 골목길을 약간 헤매고 돌아다닌 끝에 또 다른 형제 대장장이인 에이트리와 그의 동생 브로크의 동굴을 찾아 들어섰다. 형제는 낯익은 로키를 보자 반색을 하며 맞이했다. 하지만 정작 눈길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세 가지 보물에 쏠려 있었다. 로키는 기다렸다는 듯 실컷 구경하라며 슬며시 보물들을 형제들 앞으로 내밀었다. 

형제들은 얼른 보물들을 손에 받아 들더니 한참 동안 구석구석 자세히 살펴보았다. 시기와 우월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보물들을 뜯어보자 로키는 경쟁심을 부추길 요량으로 그들도 이처럼 훌륭한 보물을 만들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에이트리와 브로크는 거의 동시에 자신들은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보물을 만들 수 있다고 답했다. 그 순간 로키는 단호하게 그들의 말을 부정하며 더 훌륭한 보물을 만들 수 없다는 데에 자신의 머리를 걸겠다고 외쳤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분노한 난쟁이 형제는 로키의 제안을 받아들여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건방진 로키의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키에게 술을 한잔 권하며 잠깐 기다리게 한 뒤 대장간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형 에이트리가 황금을 두드려 만들고자 하는 형상을 만들면 동생 브로크는 그것을 용광로에 넣고 풀무질로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식이었다. 그들은 완벽하게 짝을 이루며 그야말로 나무랄 데 없는 보물들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에이트리는 커다란 황금 조각 하나를 용광로에 넣어 시뻘겋게 달군 다음, 모루 위에 올려놓고 망치로 한참을 두들겨 형상을 만들고 다시 용광로 속에 넣었다. 그러자 브로크가 불의 세기를 보아가며 풀무질을 하기 시작했다. 에이트리는 동생 브로크가 못 미더운 듯 한동안 풀무질을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어떤 일이 있어도 풀무질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대장간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곤충 한 마리가 날아와 브로크의 손등에 앉더니 가볍게 침을 쏘고 날아갔다. 브로크는 손등 쪽을 한순간 슬쩍 쳐다보기는 했지만 풀무질을 계속했다. 대장간으로 들어온 에이트리는 용광로에서 ‘굴린부르스티’라는 황금 털이 달린 수퇘지 한 마리를 꺼냈다. 

원하는 작품이 나오자 에이트리는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동생 브로크가 다시 풀무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곤충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브로크의 목에 앉아 따갑게 쏘고는 날아갔다. 브로크는 약간 놀라 움찔했지만 역시나 풀무질을 멈추지 않았다. 얼마 후 에이트리가 돌아와 용광로에서 단단하게 벼린 ‘드라우프니르’라는 황금 반지 하나를 꺼냈다.


에이트리 형제가 만든 보물들

토르에게 황금 가발을 건네는 로키. [Emma K Gordon, 1910]

토르에게 황금 가발을 건네는 로키. [Emma K Gordon, 1910]

에이트리는 두 번째 작품도 제대로 나오자, 이번에는 커다란 쇳조각 하나를 용광로에 넣고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똑같은 곤충이 다시 날아오더니 브로크의 미간에 앉아 두 눈꺼풀을 차례로 세차게 쏜 다음 날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피가 두 눈 속으로 흐르는 바람에 앞이 보이지 않자 브로크는 불길을 조절할 수 없었다. 브로크가 얼른 풀무질하던 오른손을 들어 피를 닦아내는 바람에 불길이 조금 잦아들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대장간으로 들어서던 에이트리가 깜짝 놀라 부리나케 달려와 동생을 심하게 꾸짖었고, 놀란 동생이 오른손으로 다시 풀무질을 시작하자 순간적으로 불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가 되살아났다. 에이트리는 이를 보충하기 위해 물건을 약간 오래 용광로 속에 놓아두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에이트리가 용광로에서 꺼낸 ‘묠니르’라는 망치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손잡이가 약간 짧았다. 

3개의 작품이 모두 완성되자 에이트리는 동생 브로크에게 로키와 함께 아스가르드로 가서 신들에게 이 보물들의 놀라운 신통력을 설명해 주고 최고의 보물이라는 것을 입증받은 뒤, 약속대로 건방진 로키의 머리를 받아 오라고 부탁했다. 브로크가 3개의 보물을 손에 들고 대장간에서 나오자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던 로키가 반색을 하면서도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열심히 풀무질을 하던 브로크에게 갑자기 세 번이나 나타나 훼방을 놓았던 곤충은 바로 로키였다. 

로키가 난쟁이 브로크와 6개의 보물을 들고 나타나자, 신들은 곧 글라드스헤임 궁전에서 회의를 개시했다. 그들은 논의 끝에 이발디의 아들들이 만든 보물과 브로크 형제가 만든 보물 중 어느 것이 더 훌륭한지 판단할 심판관으로 오딘과 토르와 프레이르를 선출했다. 먼저 로키가 3명의 심판관 앞에서 이발디의 아들들이 만든 보물의 신통력에 대해 설명했다. 

로키는 제일 먼저 황금 가발을 시프에게 내밀며 그녀의 예전 머리카락과 비교했을 때 전혀 손색없다고 말했다. 과연 시프가 그것을 머리에 쓰자마자 가발이라고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머리에 착 달라붙었다. 예전 생머리보다 더 윤기가 흘렀고, 더 부드럽게 출렁거렸다. 신들이 시프의 새 머리카락을 보고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시프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고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토르는 화를 풀고 로키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로키는 두 번째로 신들을 향해 ‘궁니르’라는 창을 내보이며, 한 번 쏘면 절대로 과녁에서 벗어나지 않는 창으로 이발디의 아들들이 신들의 왕 오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창을 건넸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신들에게 ‘스키드블라드니르’라는 배를 내보였다. 그 배는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모두 완전무장을 하고 탈 수 있을 만큼 크며,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절로 돛을 팽팽히 불려 쏜살같이 달릴 수 있고, 종이처럼 마음대로 접어서 간편하게 넣어 다닐 수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발디의 아들들이 풍작의 신 프레이르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그에게 건넸다. 

로키의 설명이 끝나자 이번에는 브로크의 차례였다. 그는 맨 먼저 신들에게 ‘드라우프니르’라는 반지를 내보이며, 그 반지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아흐레가 지나면 똑같은 반지가 여덟 개나 생겨나는 신비한 물건이라고 소개했다. 자신과 형이 신들의 왕 오딘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며 건네주었다.


신들이 선택한 최고 작품은 ‘묠니르’

묠니르를 만들고 있는 에이트리와 브로크 형제. [Elmer Boyd Smith, 1902Arthur Rackham, 1901]

묠니르를 만들고 있는 에이트리와 브로크 형제. [Elmer Boyd Smith, 1902Arthur Rackham, 1901]

브로크는 두 번째로 신들에게 ‘굴린부르스티’라는 수퇘지를 내보이며, 녀석은 땅 아래든 바다든 하늘이든 어디든 다닐 수 있으며, 어떤 말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고 소개했다. 또한 녀석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나 지하에서도 환하게 길을 밝히며 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금으로 된 녀석의 털이 빛을 발해 주변을 환하게 비춰준다는 것이다. 브로크는 말을 마친 뒤 그 수퇘지는 자신과 형이 풍작의 신 프레이르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며 건네주었다. 

브로크는 마지막으로 신들에게 ‘묠니르’라는 망치를 내보이며, 이 망치는 손잡이가 약간 짧은 게 흠이지만, 어떤 무기도 절대 그것을 부러뜨릴 수 없다고 자랑했다. 또한 던진 자의 힘을 모두 쏟아 넣을 수 있고 아무리 멀리 던져도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잃어버릴 위험이 전혀 없으며 아주 조그맣게 만들어 호주머니나 옷깃에 숨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 다음 자신과 형이 토르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그에게 건네주었다. 

로키와 브로크가 보물들을 하나씩 소개할 때마다 신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지만, 특히 마지막 ‘묠니르’를 설명할 때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그래서 오딘과 토르와 프레이르가 여섯 개의 보물 중 가장 빼어난 것을 정하기 위해 숙고에 들어갔지만 결정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각각의 보물들이 모두 신비한 힘을 갖고 있지만 망치 ‘묠니르’를 따라갈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묠니르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을 거인들의 공격으로부터 막아줄 수 있는 최상의 무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신들의 왕 오딘이 심판관인 세 신을 대표해 가장 좋은 보물은 토르에게 떨어진 망치 ‘묠니르’라고 선언하자 브로크는 환호성을 질렀다. 궁지에 몰린 로키는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브로크가 약속대로 로키 머리 소유권을 요구하며 다가오자 손사래를 치며 자신의 머리 대신 그 크기만큼 금을 줄 테니 제발 진정하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브로크는 로키의 제안에 콧방귀를 뀌며 마치 저승사자나 된 것처럼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로키는 살며시 뒷걸음질을 치더니 몸을 돌려 줄행랑을 쳤다. 

갑자기 허를 찔린 브로크가 로키를 추격하려 했지만 로키는 이미 멀찌감치 꽁무니를 빼버린 뒤였다. 로키는 땅 위에서든 바다 위에서든 심지어 하늘에서도 아주 빨리 달릴 수 있는 신발을 신고 있어 번개처럼 빨랐다. 발을 동동 구르던 브로크가 토르에게 하소연했다. 묠니르처럼 좋은 선물을 주었으니 약속을 어기고 달아난 로키를 잡아달라는 것었이다. 토르는 한참을 수소문하며 로키의 행방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그를 붙잡아 브로크에게 데려왔다.


“화근인 로키의 입을 꿰매버리겠다”

브로크가 로키의 머리를 얻기 위해 칼을 들어 목을 치려는 순간 로키의 머릿속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로키는 브로크에게 자신은 그들 형제에게 머리는 주겠다고 했지만 목은 아니라고 외쳤다. 말하자면 약속대로 자신의 머리는 가져가도 좋지만 목은 상하지 않게 하라는 거였다. 이에 브로크도 지지 않고 로키에게 그러면 머리 쪽에 붙어 있는 입은 자신들의 것이니 항상 화근이 되는 그것이라도 꿰매버리겠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브로크가 평소 허리춤에 넣고 다니던 칼을 꺼내 로키 입술에 구멍을 뚫어 꿰려고 했지만 도무지 입술에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칼은 뾰족했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로키 입술에 상처 하나 낼 수가 없었다. 난감해하던 브로크는 갑자기 에이트리 형이 늘 갖고 다니던 아주 뾰족한 송곳을 떠올렸다. 그가 형의 송곳을 아쉬워하자마자 갑자기 그의 발 앞에 형의 송곳이 쏜살같이 날아와 떨어졌다. 브로크는 얼른 그 송곳을 들어 로키의 입술에 찔러보니 과연 쉽게 구멍이 뚫렸다. 

브로크는 로키의 입술에 빙 둘러서 구멍을 낸 다음 허리춤의 가죽 벨트를 풀어 길고 가늘게 잘라 끈을 만들어 그 구멍들에 넣고 단단히 묶어버렸다. 로키는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입이 막혀 신음도 내지 못했다. 브로크의 형벌 작업이 끝나자 로키는 입 아래가 온통 피범벅이 된 채 곧장 글라드스헤임을 뛰쳐나왔다. 이어 얼른 손으로 가죽끈을 푼 다음 고통스러운 듯 입 주위를 손으로 부여잡았다. 궁전 안쪽에서는 신들이 즐겁게 웃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깊은 수치심을 느낀 로키는 언젠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며 급히 자신만이 아는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처를 치료하는 게 급선무였다.


토르 망치 ‘묠니르’ 손잡이가 짧아진 이유

김원익
● 1961년 전북 김제 출생
● 연세대 독문학과 졸업(문학박사), 독일 마부르크대 수학
● 신화연구가,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
● 저서 : ‘신화, 인간을 말하다’ ‘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 외 다수




신동아 2020년 4월호

김원익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문학박사 apollon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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