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호

“복지는 시장경제 업그레이드 수단” “한국만의 복지국가 유형 만들어야”

6 복지국가

  • 패널| 안상훈 · 강명순 사회| 김형찬 정리| 송홍근

    입력2013-10-22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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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고려대 교수(철학)

    ■ 패널 | 안상훈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 강명순 세계빈곤퇴치회 이사장·전 국회의원

    ■ 정리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복지국가의 이상과 현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복지’를 최우선 순위의 공약으로 내세우며 이구동성으로 복지정책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바야흐로 한국에도 ‘복지국가’의 시대가 열리려는 모양이다. 급속한 산업화의 길을 달려온 우리에게 복지란 참 낯선 단어였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돌보는 일은 가족과 친지의 몫이었고, 타인을 돕는 것은 그저 가진 자의 미덕에 맡겨진 일이었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대가족이 해체됐을 뿐 아니라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한국 사회가 이미 가족 단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험한 세계 체제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후에도 우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표방한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에 빠른 속도로 편입되면서 사회 구성원들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빈부격차도 심화했다. 경쟁에 뒤처진 사회적 약자를 돌볼 여유가 점점 더 없어지면서 ‘복지국가’란 요원한 일인 듯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선거에서 승리를 바라는 정치인들은 불안정한 무한경쟁 사회의 유권자들이 국가적 차원의 복지를 열망하고 있음을 읽어냈고, 그것을 정치의 이슈로 삼았다. 2007년 대통령선거의 화두가 ‘경제’였다면 2012년 대선의 프레임은 ‘복지’였다. 진보 진영에서 논의하던 복지 이슈를 보수 진영에서 가져가면서 복지를 둘러싼 정책 경쟁에 불이 붙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국가가 그 성과를 효율적으로 나눠 가지며 장기적으로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할 때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인 듯하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국민의 생활수준을 일정 정도 보장하고자 개개인의 삶에 국가가 다방면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을 가진다.

    그럼에도 복지국가를 사회민주주의와 구분해 논의하는 것은 그것이 이념을 넘어 모든 국가의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논의되고 시행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를 대표한다는 현 집권당이 복지 이슈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복지국가 논의의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복지국가 논의는 이념을 넘어선 것인 동시에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성취한 국가에서 안정적 발전을 위해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다. 그것은 ‘혁명’과 같은 극단적 방법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며 대다수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집행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정치·경제 면에서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만큼 복지국가를 구현하려면 서로 다른 의견 간에 다소 지루할 정도의 섬세한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조세를 통한 부의 재분배와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제도적 개입 수준을 놓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압축 성장이 적잖은 폐해를 낳았듯 최근 몇 년 사이 복지를 둘러싼 정치권의 과도한 경쟁은 복지국가 관련 논의를 상당 부분 왜곡하고 있다.

    최근 선거 과정에서 경쟁적으로 내놓았던 무지갯빛 복지 공약이 정책 집행 과정에서 혼란에 빠지는 것은, 복지국가가 국민의 합의 도출 과정이 생략된 채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더욱이 우리 앞에는 분단 극복이라는 난제가 놓여 있다. 복지국가 논의가 한국 사회의 발전 방향만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는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 거주민의 삶의 변화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복지국가 논의는 기본적으로 탈이념적인 동시에 이념적 입장차를 고려하고 그것들을 넘어서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통일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김형찬 한국 사회의 이념과 통일 한반도의 철학을 논의하는 ‘이념 vs 이념’ 여섯 번째 토론 주제는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는 탈이념적 주제일 수도 있지만, 이념 간에 적절한 협의와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렵다. 복지국가의 조건은 무엇이며 어느 정도까지 복지가 이뤄져야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먼저 복지국가의 조건과 범위에 대해 논의해보자.

    공민권, 참정권, 복지권

    안상훈 복지국가 문제는 탈이념적이면서도 동시에 다분히 이념적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복지국가라는 개념의 범위와 관련해 특히 그렇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전제로 논의한다는 점에서 탈이념적일 수 있다. 복지국가가 자본주의의 수정, 그러니까 업그레이드를 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복지 확대는 고장 난 시장경제를 고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얼마만큼, 어떤 속도로 고칠 것이냐를 두고 이념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래서 매우 이념적인 주제이기도 한 것이다.

    현대국가가 발전 단계마다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 살펴보면서 복지국가의 조건을 얘기해보자.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결사 등의 자유 개념이 완성된다. ‘공민권’이 형성되는 이 단계가 첫 번째 시민권 단계다.

    그런데 법에 의해서만 신체 구속이 가능하고 개인의 자유가 궁극적으로 보장되는 상황인데도 농노 시대와 비교해 먹고사는 문제에는 변화가 없는 모순이 발견됐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보기에 말이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된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따져보니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한 혁명인 터라 일방적으로 자본가에게만 유리한, 노동자에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게임 룰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게임의 룰을 만드는 정치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러면서 ‘참정권’ 보장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시민권의 두 번째 발전 단계다.

    민주적 참정권이 보장되면 다수결의 정치가 작동한다. 노동자를 대변하거나 노동자 계급을 위해 입법활동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정치인이 의회에 들어가 다양한 종류의 사회 입법이 이뤄지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시민권의 세 번째 단계인 ‘복지권’이 형성된다.

    한국은 시민적 권리와 관련한 공민권이 보장돼 있으며 민주화 이후 참정권도 보장됐기에 그 결과로서 복지권, 그러니까 사회권에 대한 권리 신장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의 전제 조건은 성숙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강명순 철학적으로 잘 정리해주셨다. 복지국가는 개인주의나 자유방임주의를 지양하고 국민의 공동복리를 주요한 과제로 채택한다. 고용보장, 의식주 보장, 노인·여성·아동의 사회보장, 국민연금 제도 등을 확립한 나라가 복지국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삶에서 평등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 아래 최저소득 보장과 최소한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국가 형태가 대두했다.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를 넘었으므로 복지국가로 나아갈 경제적 조건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복지국가 이슈가 선거전에 활용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표를 얻고자 임시방편으로 급조한 복지 공약을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국정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선거 때 표 얻으려고 복지국가를 내세우지 말라는 얘기를 정치권에 하고 싶다. 복지 전문가들이 편을 갈라 다투는 것도 볼썽사납다. 긴 안목으로 복지국가 이슈에 접근해야 할 때다.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국민이 공동 합의를 이룬 후 보편적 복지든, 차별적 복지든 장단기 계획을 세워 해나가야 한다.

    ‘복지’와 ‘복지국가’

    “복지는 시장경제 업그레이드 수단” “한국만의 복지국가 유형 만들어야”

    안상훈

    김형찬 복지국가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안상훈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속에서 존재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런 점에서 ‘복지’와 ‘복지국가’를 구분해야 한다. ‘복지국가’라는 것은 수정자본주의, 혹은 복지를 통한 자본주의의 수정 전략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는 두 가지를 동시에 지향해야 한다. 하나는 복지 그 자체고, 다른 하나는 성장이다. 다시 말해 복지국가의 첫 번째 지향점은 강명순 이사장 말씀대로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삶에서 평등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시장경제를 업그레이드해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불평등, 양극화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야만 시장경제가 계속 굴러갈 수 있지 않나. 그런 이유에서라도 복지는 해야 하는 것이다.

    첨단 산업화가 가진 큰 결점이 고용 없는 성장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매출이 크게 늘어난다고 고용이 그에 따라 늘지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첨단 산업 현장에서는 사람이 에러’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많은 현장일수록 불량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경제가 선진화할수록 일자리 없는 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기에 국가가 나서 고용을 증진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고용 증진 역시 복지인 것이다.

    가부장주의를 없애는 것도 시장경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차별받는 관행 탓에 결혼 보이콧, 출산 보이콧이 일어나고 있다. 아이 기르고 집안일 하는 것이 여성 몫으로 강제되는 문화 탓에 여성의 인적자본이 낭비되고 있다. 국가가 복지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동시에 사회생활을 하는 게 쉬워지면 저출산 고령화 문제도 풀린다. 또한 시장경제도 한 단계 향상된다. 보육복지는 더 나은 성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강명순 우리나라는 어떤 유형의 복지국가를 선택할지를 두고 논쟁하느라 진을 뺀 것 같다. 보편적 복지냐, 차별적 복지냐 등을 두고 다투기보다 어떻게 하면 조세부담률을 45%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는 게 먼저다.

    김형찬 지난 대통령선거 때 여야가 모두 복지 이슈를 들고 나와 다퉜는데, 프레임만 남았지 내용은 유명무실화하고 있다. 프레임 싸움을 하다보니 누가 더 세게 나가느냐가 중요했다. 현실을 다 무시하고 세게 나가는 쪽이 이긴다는 식으로 가버린 것 같다. 그러다보니 약속한 것을 책임지지 못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강명순 쌍방이 다 책임져야 한다. 분위기 잡은 사람이나, 세게 나간 사람이나 다 책임져야 한다. 국민이 그들에게 책임을 지라고 요구해야 한다.

    남유럽과 일본의 他山之石

    김형찬 한국 사회가 어떤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하는지 논의하기에 앞서 복지국가의 실제 유형과 나라별 차이점을 살펴보면 좋겠다.

    “복지는 시장경제 업그레이드 수단” “한국만의 복지국가 유형 만들어야”

    강명순

    강명순 일반적으로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째 유형은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볼 수 있는 자유주의적 복지국가다. 일명 앵글로-색슨 모델, 영미식 모델이라고도 한다. 이 모델은 저소득층에 대한 공공부조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춘다. 선별적으로 복지를 집행하는 것이다. 집행 과정에 국가 개입은 최소화하고 민간에 대한 복지 의존율이 높다.

    둘째 유형은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대륙 복지국가에서 나타나는 보수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이다. 이들 국가는 사회보험 의존도가 높다. 노동자가 퇴출될 때 소득보장에 중점을 두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비(非)노동인구를 보호할 만큼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재정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들 국가의 정책은 복지제도를 통해 실직자의 사회계층을 유지해주는 데 방점이 찍혀 있으며 시장은 주변적 역할을 한다.

    셋째 유형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의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이다. 취약계층뿐 아니라 중간계층에게도 보편적 복지를 제공한다. 가족이나 시장의 역할은 주변적이고, 국가가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복지급여와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도 일반적으로 국고에서 재원을 마련한다. 소득을 상실한 노동자에게도 높은 수준의 지원을 한다.

    안상훈 강 이사장께서 교과서적으로 잘 정리해주셨다. 나는 조금 다른 유형으로 구분해보겠다. ‘부담 수준’과 ‘복지 수준’이라는 틀로 복지국가를 유형화해 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는 게 증세와 복지의 상관관계이기 때문이다.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가 되려면 한 세대 내에서 복지 수준과 부담 수준을 총량적으로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로 ‘고부담·고복지’를 하는 북유럽 국가와 대륙 유럽 국가가 있다. 앵글로-색슨 국가들은 ‘중부담·중복지’를 하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처럼 ‘저부담·저복지’를 하는 유형이다. 이 세 유형 모두 재정적 측면에서는 지속가능하다.

    이 대목에서 문제가 되는 모델을 살펴보자. 최근 2~3년 동안 재정위기로 입방아에 오르내린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남유럽 국가처럼 저부담·고복지를 지향하거나 저부담·중복지를 정책 방향으로 결정하면 장기적으로 재정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일본 민주당도 저부담·고복지를 하려다 실패했다. 한국도 고복지를 하려면 고부담을 해야 한다. 부담을 많이 하기 싫으면 중부담·중복지 정도는 해야 한다. 이 문제를 놓고 국민적 대타협이 이뤄져야 한다.

    어떤 복지가 좋은 복지냐를 두고도 논란이 있다. 그간 주류 경제학에서는 현금 복지가 가장 좋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20세기형 복지국가들은 현금 위주로 복지가 구성돼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들 국가가 현금 복지는 아주 가난한 계층 위주로 재편하고 사회서비스 관련 복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남성만을 위한 복지 안돼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의 경우 현금 복지, 사회서비스 복지가 공히 높은 수준으로 시스템이 설계돼 있다. 프랑스 독일 같은 보수주의 복지국가는 남성 가장 중심의 실업보험 연금보험에 방점을 찍고 있고, 보육이나 요양 같은 사회서비스는 남성 노동자 중심의 현금 복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래서 ‘보수주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겠다. 현금 복지 지출규모는 굉장히 큰데 사회서비스 복지는 거기에 필적할 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사회민주주의 유형과 보수주의 유형의 복지 지출 총량은 거의 비슷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보수주의 유형이 더 많다는 점이다.

    앵글로-색슨 국가들은 중간 정도의 복지 수준에서 사회민주주의 모델과 마찬가지로 현금과 서비스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현금은 가난한 사람 위주의 공공부조로 이뤄진 반면 보육 요양 등은 보편적으로 설계해놓은 후 가난한 사람은 무료, 소득에 따라 차등해 비용을 지불하는 형식이다.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은 무료, 부자들은 돈을 꽤 내는 그런 시스템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현금 복지 위주로 시스템을 설계한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재정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한 남성만을 위한 복지국가가 돼버린다는 약점도 갖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금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 위주로 구성하고, 보편적 복지는 사회서비스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서비스 쪽에서 국가가 상당히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은퇴한 노인들이 약간의 임금만을 받고도 매우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 있다.

    김형찬 복지국가의 유형에 대해 살펴봤다. 우리는 어떤 유형을 따라야 할까. 또한 한국은 현재 어느 단계에 서 있는 걸까.

    강명순 특정 유형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한국만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야 한다. 어느 단계에 서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쾌하다.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혼란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서로 물고 싸우는 시점이라고 정리하면 된다.

    김형찬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무엇부터 정리해나가야 하나.

    강명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서는 경쟁적 논쟁보다 공동 노력을 통한 국민 합의가 필요하다. 복지 전달 체계부터 개선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수급 제도도 개혁해야 한다. 근로 능력이 있는 30~50대 수급자가 43만 명으로 전체의 30%에 달하는 상황이다. 자활을 위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절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을 마련한 후 무상복지, 무상보육을 하는 게 순서다. 사회복지사의 처우 개선도 시급하다.

    노사정+α 대타협 필요

    안상훈 강 이사장 말씀에 동의한다. 지난해 총선, 대선을 거치면서 ‘복지정치’가 활성화했다. 여야가 동시에 복지를 놓고 경쟁했다. 앞서 말했듯 복지 수준, 부담 수준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일본처럼 국채를 발행해서 복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증세와 관련해 조세 저항이 강한 것은 조세 정의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소득 자영업자의 조세 포탈이 일종의 관례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 아닌가. 저부담·저복지에서 중부담·중복지나 고부담·고복지로 나아가려면 궁극적으로는 국민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국민부담률은 조세부담률에 사회보험료와 사회서비스 이용료를 더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5년 동안 증세 없이 세출 구조조정, 복지 효율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복지를 늘리겠다고 한 것은 국민이 조세 정의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 증세 얘기를 섣불리 하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장기적으로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과 사회보험료, 사회서비스 이용료를 인상해야 한다. 그러려면 조세정의를 확보해야 한다. 세금도 제대로 못 걷는 마당에 복지를 늘리겠다면서 국채를 발행하면 남유럽 국가처럼 실패할 수 있다. 조세 정의를 확보한 후 중부담·중복지를 할 것인지, 고부담·고복지를 할 것인지를 두고 노사정 혹은 노사정 플러스 알파의 대타협이 이뤄져야 한다.

    김형찬 끝으로 통일 한국에서 실현돼야 할 복지국가의 형태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안상훈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스웨덴 모델을 얘기한다. 스웨덴식 복지국가 전략의 핵심은 사회서비스에 있다. 스웨덴 모델이 매우 좋긴 하나 수준과 속도에서 따라가기 어려운 우리만의 사정이 있다. 통일 준비가 그것이다. 단기적 통일비용의 대부분이 복지비용이 될 것이다. 당장 내일 통일된다고 가정하면 한국의 복지제도가 북한 주민에게 공히 제공돼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을 비롯해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을 다 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북한 주민을 2등국민으로 취급할 수도 없지 않은가.

    지속가능한 복지국가가 되려면 부담과 복지를 맞춰야 하는데, 국채 발행은 위험하다고 앞서 말씀드렸다. 국채 발행을 미뤘다가 통일 시점에서 하자는 게 내 주장이다. 통일 시점에 국채를 발행해 복지비용을 감당하자는 것이다. 통일은 경제적으로 편익이 상당하다. 통일이 가져오는 경제적 이득을 통해 돈을 갚을 수 있으며, 통일 한국의 채권은 국제시장에서 매력 있는 상품일 것이다.

    “복지는 시장경제 업그레이드 수단” “한국만의 복지국가 유형 만들어야”

    10월 4일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가운데)의 사회로 안상훈 서울대 교수(왼쪽), 강명순 세계빈곤퇴치회 이사장이 복지국가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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