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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볼넷 = 3.14:1 거포 현혹한 명품 체인지업

류현진 메이저리그 원년 총결산

삼진:볼넷 = 3.14:1 거포 현혹한 명품 체인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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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찬호는 原石, 류현진은 ‘완성품’
  • ● “국내 최고는 ML에서도 통한다” 입증
  • ● 영어 못해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안착
  • ● 좌타자 잡으려면 슬라이더 갈고닦아야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에이전트였던 스티브 김(김철원) 씨는 사석에서 “훗날 누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해도 연봉이나 기록에서 박찬호를 뛰어넘을 선수는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박찬호가 한국이 배출한 최고의 선수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기분 좋게.

국내 프로야구에서 7년 동안 에이스로 활약한 류현진은 LA다저스 입단 첫해, 박찬호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차례로 달성했다. 올 오프시즌 프리에이전트(FA)가 되는 신시내티 레즈의 추신수는 박찬호가 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한 ‘5년 6500만 달러’를 간단히 뛰어넘을 전망이다. 2013년 메이저리그는 투타(投打)에서 류현진과 추신수의 눈부신 활약으로 야구팬들을 그 어느 해보다 즐겁게 했다.

‘과잉투자’ → ‘헐값계약’

박찬호와 류현진은 여러 공통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박찬호는 대학생 시절 미국으로 날아가 메이저리그를 개척한 선구자다. 류현진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전성기를 누린 투수의 미국 진출 사례다. 그간 이상훈, 구대성 등 국내 프로야구 출신 투수(모두 좌완이다)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들은 프라임타임을 지나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메이저리그를 잠시 거쳐간 경우에 불과하다.

류현진은 한창 나이(26세)에 포스팅시스템으로 진출한 것부터 다르다. ‘국내 최고’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모범사례다. 포스팅시스템이란 완전 FA(국내는 9년)가 되기 전에 미국 진출을 선언, 구단이 이적료를 받는 제도.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하면서 이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만든 것으로, 한국에도 같이 적용된다. 한국에서 FA가 되면 구단은 선수와 보상금을 받지만,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면 빈손이 된다. 그래서 FA가 되기 2년 전에 외국 진출의 문을 열어 준다.



류현진이 이 혜택을 받아 한화 이글스가 포스팅했고, LA다저스 구단은 2573만7737.33달러(약 280억 원)라는 가장 높은 금액을 적어내 단독협상 교섭권을 확보했다. 미국에서는 ‘계약을 샀다’는 표현을 쓴다. 이 돈은 한화 이글스가 챙겼다. 류현진은 ‘슈퍼에이전트’로 통하는 스콧 보라스를 고용해 6년 총 연봉 3600만 달러(약 390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따라서 다저스가 류현진을 영입하기 위해 투자한 금액은 6100만 달러가 조금 넘는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포스팅 액수와 연봉 계약이었다. 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2회 연속 4강 진출의 성과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프로야구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반영한 결과였다.

계약 당시 ‘LA타임스’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다저스가 미국에서 검증되지 않은 투수에게 너무 많은 투자를 했다고 보도했다. 류현진이 활동한 대전구장이 수용할 수 있는 관중이 1만여 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국 프로야구의 인프라와 9개 팀의 보잘것없는 저변을 꼬집었다. 메이저리그 구장은 보통 4만 명 이상을 수용한다. 더욱이 미국은 메이저리그를 포함해 프로야구 팀만 수백 개에 달한다. 모든 것을 미국 중심으로 보는 시각이 드러난 기사였다.

하지만 LA타임스의 시각은 곧 바뀌었다. 류현진의 계약은 ‘거저 주운 격’이란 뜻의 ‘Bargain Contract’로 평가됐다. 류현진의 활약으로 다저스는 헐값에 FA 선수를 영입한 셈이 됐다. 오프시즌 다저스는 제2 선발 잭 그렌키를 6년 1억5900만 달러를 퍼부어 영입했다. 그렌키는 올해 15승 4패 평균 자책점 2.63을 기록했고, 제3 선발로 입지를 굳힌 류현진은 14승 8패 평균 자책점 3.00으로 정규 시즌을 마쳤다.

“What′s your name?”

필자는 1994년 LA다저스에서 야구 인생을 꽃피우기 시작한 박찬호와 2013년 센세이션을 일으킨 류현진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두 선수는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박찬호는 투수의 최대 무기인 빠른 볼을 던질 수 있고, 류현진은 피칭 완급 조절의 열쇠인 체인지업으로 타자를 요리한다. 요즘 야구는 체인지업을 못 던지면 마운드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데뷔 첫해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탁월한 구종(球種)으로 평가받았다.

박찬호는 평균 시속 150km 이상의 강속구로 타자를 압도했다. 류현진은 국내 프로야구 7년 동안의 에이스 경험을 바탕으로 LA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도 깜짝 놀랄 정도의 위기관리 능력을 과시했다. 구위(球威)는 박찬호였고, 경기 운영은 류현진이다. 박찬호는 미국에 진출해 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가다듬은 원석(原石)이고, 류현진은 ‘완성품’으로서 미국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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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문상열 │동아일보 통신원 moonsytexas@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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