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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 혼자 죽는다 - 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

제49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 최우수작

  • 노동우 이수진 김형석 성유진 오소영 최하은

男, 혼자 죽는다 - 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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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왜 남자는 홀로 죽는가

男, 혼자 죽는다 - 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

일러스트레이션·박용인

6년 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릴 때 몇 번 뵌 적 있던 친척의 사망 소식이었다. 서둘러 찾은 장례식장에는 장례식 특유의 부산스러움 대신 착 가라앉은 공기만이 떠돌았다. 고인의 아내도 자식도 없었다. 먼 친척 몇 명이 장례식장에 와줬지만 대부분 예의상 왔을 뿐, 고인과 친하게 지내던 이들은 아니었다. 나의 외할머니, 즉 그의 누나조차 최근 몇 년간 동생과 거의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장례식장엔 그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외할머니의 남동생인 그는 특유의 처진 눈꼬리로 사람 좋게 웃는 분이었다. 내 작은 손에 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라도 꼭 쥐여주시던 따뜻한 분이었다. 그는 아내와 자식 넷을 데리고 외할머니 댁을 자주 찾았다. 그의 마지막이 이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여자보다 외롭게 죽는 남자

팀원 한 명이 술자리에서 우연히 이 얘기를 꺼냈을 때, 우리는 모두 “왜?”라고 물었다. 단란했던 여섯 식구는 가장의 장례식에 오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사업을 하며 쌓아왔을 인맥도 한낱 모래알 같았다. 그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왜 죽기 직전까지 누나에게조차 연락 한 번 하지 않았을까. “대체 그 남자는 왜 혼자 남겨졌지?” 이 작은 의문이 우리를 무연고(無緣故) 사망자에 관한 취재로 이끌었다.

무연고 사망자 공고. 신원미상이거나 아무도 시신을 찾아가지 않은 사망자들은 이 공고에 포함돼 각 구청 홈페이지에 올라간다. 서울에서만 한 해에 280여 명의 무연사가 발생한다. 2010년 273명, 2011년 301명, 2012년 282명이었다. 공고문은 한 달 동안만 공개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종종 삭제되지 않고 남아 있기도 한다. 우리는 2012년 3월부터 2013년 5월까지의 무연고 사망자들을 추렸다. 총 83명이었다.

무연고 사망자 목록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숫자. 83명 중 남자는 77명, 여자는 6명이었다. 77 대 6. 너무도 확연한 차이. 우리의 의문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왜 남자가 더 많지?

무연고 사망자 대부분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가 취재한 83명 중에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나 무직인 사람이 많았다. 일자리가 있는 경우에도 공공근로거나 일용직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서울의 가장 가난한 공간에 살았다. 취재를 하려고 우리가 자주 찾아간 곳은 쪽방이나 고시원이었다. 평범한 동네인가 싶다가도 갑자기 허름한 곳이 나타났다. 강남 주소지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3층 주택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쪽방이 나왔다.

하지만 경제적 형편만이 ‘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이 무연사하는지’에 대한 답이 되지는 않는다. 무연사할 확률이 비교적 높은 독거노인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2011년 서울시 독거노인 중 71%가 여성이었다. 저소득 독거노인 비율도 여성이 남성보다 3배가량 높다. 이 수치대로라면 무연사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 그러나 77명의 남자와 6명의 여자라는 뚜렷한 차이. 현실은 달랐다.

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이 무연사할까. 똑같이 가난한데도 왜 여성과 달리 남성은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외롭게 죽는 걸까. 2013년 봄,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아주 사소한 실마리

무연고 사망자 83명 중 쪽방촌에 머문 이는 16명, 고시원에서 살던 사람은 8명, 여관에서 장기 투숙한 사람은 3명, 주택 단칸방이나 쪽방에서 살던 이는 22명, 아파트에서 죽은 이는 5명 등이었다. 그곳은 그들이 마지막 생을 보낸 장소고, 꽤 오랜 거주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옆방 사람도, 집주인도 그들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만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그냥 가끔 동네 오다가다 마주친 게 다예요. 교회 다니시고, 약주 하시고.” 김권호 씨의 옆집 사람이 그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다. “사촌 여동생한테 얹혀살면서 같이 옷가게를 했어요.” 마지막 거주지에서 이진수 씨에 대해 얻을 수 있는 단서도 딱 여기까지였다. “딸이 있다고 했나?” 강영호 씨의 옆방 남자가 말하자, 그 옆에 있던 사람이 “아니지, 아들!”이라며 정정했다. 기억은 엇갈리기도 했다.

작은 실마리로 취재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교회를 다녔다는 언급 하나로 시작된 취재도 많았다. 이금순 씨의 경우에는 성당에서 온 우편물만 보고 무작정 성당을 찾아갔고, 오민규 씨에 대해서는 “폐지 줍는 일을 했지”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온 동네 폐지 수집상을 찾아 헤맸다. “택시 회사에서 일했어요.” 최명식 씨처럼, 직장을 알게 된 건 꽤 고급 정보에 속했다. 마지막 주소지에서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하면 공고문에 적힌 등록기준지에 가보기도 했다. 취재는 한 번에 끝나는 법이 없었다.

한 곳을 여러 번 찾기도 했다. 이순모 씨에 대해서는 첫 취재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 “아, 맞다. 경로당에서 일했던 거 같던데”라는 말을 들었다. 조승만 씨의 경우 네 번째 찾아갔을 때 비로소 봉제공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김민숙 씨의 행적을 찾아 세 번이나 요양원을 방문했지만 원장으로부터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 시도로 원장에게 손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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