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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노래가 있는 풍경

흐르는 것이 강물뿐이랴 추억도 세월 속에 야윈다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흐르는 것이 강물뿐이랴 추억도 세월 속에 야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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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연재 ‘노래가 있는 풍경’은 우리 시대를 관통해 한국의 ‘허리 세대’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준 명곡을 찾아 탄생 배경과 의미, 이 땅의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세월이 흘러 이즈음에 되돌아 보는 느낌 등을 담으려 한다. 선곡은 한국갤럽의 ‘한국인이 사랑하는 명곡’을 참고해 객관성을 유지할 것이다. 글은 언론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김동률 서강대 교수, 사진은 한국 문화와 역사를 향한 사진적 접근에 오래도록 관심을 가져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권태균 신구대 교수가 맡는다.
  • 한 시대의 삶을 노래를 통해 반추함으로써 같은 세대에게는 추억과 동질감을, 젊은 세대에겐 그 노래들이 ‘보통 한국인’에게 던지는 감동과 교훈을 교감시키고자 한다.
흐르는 것이 강물뿐이랴 추억도 세월 속에 야윈다
동해남부선은 말 그대로 한반도 남쪽 동해 바닷가를 달리는 기차다.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부산진역을 출발해서 포항까지 145.8km를 두 시간에 걸쳐 달리는, 열차 노선치고는 아주 짧은 단선 노선이다. 1930년 개통 당시의 출발역이었던 부산진역을 대신해 지금은 서면 로터리 인근 부전역에서 출발한다. 자동차 시대에 밀려 정거장도 많이 줄어드는 바람에 노선은 아주 단출하다. 그래서 동해남부선을 타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부 경남 지역 주민을 제외하고는 해운대, 송정, 기장, 일광을 거슬러 올라가는 빼어난 바닷가 절경을 보기 위해 낭만주의자들이 가끔 이용하는 그저 그런 노선이다.

속절없이 가버린 젊은 날

이 존재감이 없는 기차 노선은 훗날 이 땅의 중년 세대를 울리는 대중가요의 결정적인 모티프가 된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란 노랫말은 이 기찻간에서 탄생한다. 듣는 이에게 불현듯 아득한 옛 생각에 잠기게 하는 노랫말이다. 검은 교복, 얼룩무늬 교련복에 양은 도시락을 담은 김치 국물 밴 가방을 옆에 끼고 통학하던 그런 세월을 느닷없이 추억하게 한다. 속절없이 가버린 젊은 날을 반추하게 하는 그런 노래다.

최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는 바로 이 땅의 기성세대를 위무하기 위해 태어난 노래다. 기성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질곡에서 더러는 기쁨을 맛보았지만 대개는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온 세대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어울린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노래쯤이나 된다고 할까. 그래서 아마 이 노래를 듣는 중년들은 저마다의 옛 생각에 잠을 못 이룰지도 모르겠다.

낭만에 대하여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랑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진 슬픈 뱃고동 소리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는 동래군 일광면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지금의 행정구역상으론 부산이다. 부친은 29세의 나이로 부산에서 국회의원(2대 민의원)에 당선된 최원봉이다. 1950년 최백호가 태어나던 바로 그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 대립하며 백범 김구 선생과 같은 길을 걸었다. 6·25전쟁 중 북진하던 연합군(터키군) 트럭과 최원봉이 탄 지프가 충돌하는 사고가 났는데, 그의 죽음을 두고 ‘정치적 암살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가족들은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일광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유복자 격인 최백호를 홀로 키웠다. 그래서 일광역에서 동래를 거쳐 부산 서면을 오가던 동해남부선이 최백호에겐 청소년기의 기억을 몽땅 가지고 있는 존재다. 하지만 일광역 또한 흔적도 없다. 첫사랑 그 소녀를 만나는 설렘으로 기차에 올랐던 역 광장은 공설 주차장으로 변해 있고, 건널목에는 한 무리의 핏빛 칸나가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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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신구대 교수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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