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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하기아 소피아 뛰어넘는 불멸의 유산을 쌓다

‘오스만의 미켈란젤로’ 미마르 시난

  • 서정일|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jeongseo@snu.ac.kr

하기아 소피아 뛰어넘는 불멸의 유산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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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마르 시난(1490~1588)은 같은 시기 서유럽에서 활약한 미켈란젤로에 비견된다. 견실함과 아름다움이 균형을 이룬 건축을 추구했던 그는 신의 도움, 인간의 노력과 인내를 통해 완벽하고 우아한 그의 창작물이 불멸할 것을 소망했다. 그것은 유럽 르네상스 건축의 가치 체계와도 통했다.
하기아 소피아 뛰어넘는 불멸의 유산을 쌓다

<사진 1> 멜키오르 로리크가 그린 이스탄불 전경(1559, 1561~62). 제3 언덕 위의 쉴레이마니예가 보인다.

마르마라 바다와 보스포루스 해협이 만나는 곳. 조용히 출렁이는 물결 위로 이스탄불 반도가 떠 있고, 두두룩하게 솟은 언덕 위엔 토카프 궁전, 하기아 소피아, 블루 모스크가 나란히 앉아 있다. 바다와 땅, 하늘과 더불어 긴 세월 동안 다듬어진 편안한 풍경이다. 고유한 문명의 존재를 증언하는 이국적 경관이다.

갈라타 지역으로 올라가면 골든혼 너머로 이스탄불 반도의 풍경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이스탄불 반도의 일곱 언덕 가운데 세 번째 언덕이 눈앞에 등장한다. 크고 작은 둥근 지붕을 이고 있는 그 언덕의 건물들은, 마치 바다에서 물방울들이 솟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지막한 건물들을 아래로 거느리면서 하나의 집합적인 경치를 이룬다.

곳곳의 돔과 첨탑들이 이루는 이 도시의 실루엣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루엣 가운데 하나였을 이것을 만든 주체는 바로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반도를 무대로 한 마지막 세계 제국인 오스만이었다. 지금의 풍광은 제국시대에서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이 말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16세기 유럽 화가 멜키오르 로리크가 그린 이스탄불과 비교해보라(사진 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보존되고 있는 이스탄불 역사지구 풍경은 앞으로도 긴 시간 인류와 함께하며 불멸로 남을 것이다.

오스만 제국의 상징



하기아 소피아 뛰어넘는 불멸의 유산을 쌓다

<사진 2> 쉴레이마니예 자미 내부의 돔.

비잔틴 제국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건축물 하기아 소피아(532~537년)에 대해서는 이 연재에서 이미 살펴보았다(2013년 4월호 참조). 그렇다면 이스탄불에서 오스만 제국의 참모습을 웅변하는 건축물은 무엇일까. 갈라타에서 바라다보이는 세 번째 언덕에서 웅장하고도 단정한 외관으로 서 있는 이슬람 모스크가 그것이다. 이 건축물에 오스만 제국의 성과가 집약돼 있다.

이 모스크의 이름은 ‘쉴레이마니예’. 건립자인 오스만 제국의 열 번째 술탄인 쉴레이만 1세(재위 1520~1566)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1520~1566년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통치한 그를 서양인들은 ‘위대한 자(il Magnifico)’ 즉 ‘대제’라고 불렀다. 쉴레이만 대제는 이라크와 발칸 반도에서 군사적 성공을 거둔 뒤 그의 재산을 쏟아부어 1577년 쉴레이마니예 자미(‘자미’는 금요 모스크를 가리키는 터키어)를 완공했다.

이뿐만 아니라 주변에 여러 채의 건축물도 함께 지었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넓은 평지 위에 지어진 건물군(群)은 북쪽으로 골든혼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곳은 대도시 이스탄불에서 술탄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행차하는 종교적 중심이었다. 이스탄불 주민들의 문화 중심이자 일상생활의 중심이기도 했다.

쉴레이마니예 자미는 주변에 마당과 담장을 거느리고 기품 있게 서 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자미의 영역은 216×144m 규모다. 자미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하고도 조용한 빛이 가득하다. 탄성을 자아내는 커다란 공간이 사람을 맞는다. 장엄한 공간의 바닥에선 무슬림들이 성지인 남동쪽 메카를 향해 엎드려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신도들은 모스크 안에서 메카 쪽을 향할 때 ‘키블라’라는 벽과 마주한다. 그 벽 한가운데 ‘미흐라브’라는 벽감(壁龕·장식을 목적으로 벽을 오목하게 판 공간)이 설치되어 있다. 키블라와 미흐라브를 두는 것은 이슬람의 오래되고 확고한 전통이다. 그런데 이 모스크의 나머지 부분은 다른 모스크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과 놀라운 축조 방식을 지녔다.

신의 섭리 표현한 건물

하기아 소피아 뛰어넘는 불멸의 유산을 쌓다

<사진 3> 쉴레이마니예 자미의 내부.

자미의 중앙에서 사방을 보면 4개의 육중한 벽기둥이 큰 정사각형 바닥의 각 모서리에서 아치를 떠받치고 있다. 아치, 펜던티브, 반구, 그리고 최상부 돔까지 여러 구조체가 질서정연하게 기하학적 체계를 이루며 결합해 있다. 전체적으로는 넓고 천장이 높아 탁 트인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자미 한가운데서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둥근 돔이 보인다. 서양 건축 전통에서 돔은 종종 하늘을 암시하는데, 이곳의 돔도 천상을 은유한 듯하다(사진 2). 돔 표면에는 아름다운 패턴을 천상의 그림인 양 그려놓아, 돔의 장려한 자태를 더해준다.

돔의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는 둥근 금빛 명판에 장식적인 글자가 쓰여 있다.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던 하산 첼레비가 쓴 쿠란 구절(35장 41절)이다.

“하늘과 땅이 운행을 멈추지 않도록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니 그것들이 운행을 벗어날 때 어느 누구도 그것들을 유지시킬 수 없나니 실로 하나님은 관대하심과 관용으로 충만하심이라.”

돔이 하늘을 은유함을 명확하게 해주는 문장이다. 건물 전체가 신의 섭리 아래 놓여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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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jeongse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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