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론<br>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지음, 이서행 옮김, 동서문화사
이들 영화와 소설은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문제작 ‘인구론’(원제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설국열차’는 열차의 주인 윌포드의 입을 통해 맬서스의 음울한 디스토피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자원이 제한된 열차 안에서 인구, 식량을 조절하기 위해 계획적인 반란으로 인구를 줄여가는 플롯은 ‘인구론’의 논리와 빼닮았다. 단테의 ‘신곡’ 가운데 ‘인페르노’(지옥 편)에서 영감을 얻어 쓴 브라운의 소설 주인공은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줄이는 생물학적 테러를 기도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구론’의 철저한 신봉자이기도 하다.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이다. 이 공식은 익명으로 출간한 초판에만 나온 뒤 2판부터는 빠졌다. 맬서스의 인구 성장에 대한 가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생존은 인구 규모에 의해 강한 제약을 받는다. 생존 수단이 증가할 때 인구도 증대한다. 인구 증가의 압력은 생산력의 증가를 필요로 한다. 생산력의 증대는 더 큰 인구 성장을 기대하게 한다. 생산력의 증대가 인구 성장의 필요 정도를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인구 성장의 수용력은 한계에 봉착한다. 성행위, 노동, 아이 등을 위한 개인의 비용/수익이 인구의 증가나 감소를 결정한다. 인구가 생존 가능한 규모를 초과하면 자연은 사회 문화적인 잉여(잉여 인구)에 대해 특정한 효과를 부과한다.’
빗나간 예측
맬서스는 인간이 무절제한 성욕 때문에 자식을 분별없이 많이 낳아 이를 그대로 둘 경우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우려한다. 그 결과는 빈곤의 악순환이다. 그는 인구 급증을 막는 방법으로 전쟁, 기근, 질병 등 사망률을 높이는 ‘적극적 억제’와 출산율을 낮추는 ‘예방적 억제’를 들었다. 그가 권고하는 방법은 물론 예방적 억제다. 맬서스가 살던 200여 년 전에는 피임법이 보편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을 늦게 하거나 금욕으로 출산을 줄여야 한다는 견해를 펼치고 있다.
맬서스는 특히 하층민들이 성욕을 참지 못하고 국가의 빈민 보조금에 기대어 아이를 많이 낳으려 한다고 전제했다. 그는 국가가 빈민자를 구호해 생활 조건을 개선하면 출산율만 높아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때문에 국가가 극빈자를 구호하거나 개인이 자선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직후여서 도시 빈민이 증가한 것은 물론 전체 인구가 대폭 늘어나 식량을 수입해야 했다.
다행히 맬서스의 예측은 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아 빗나갔다. ‘인구론’이 첫 출간된 1798년 이후 200여 년 동안 세계 인구는 6배가량 늘어났지만, 식량 생산량은 훨씬 더 큰 규모로 증가했다. 인구는 피임법의 보편화로 상당수 국가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진 않았다. 식량도 농업과 생산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절대적인 부족 현상은 면했다. 다만 분배의 불균형만 찾아볼 수 있다.
‘인구론’은 틀린 예측보다 사회불평등을 옹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쳐져 더 큰 비난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이런 부분들이 비판의 표적이 됐다. ‘도시의 거리들은 더욱 비좁아져야 하며, 보다 작은 집에 보다 많은 사람이 거주하도록 해 전염병이 창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시골의 경우 썩은 물웅덩이 근처에 마을을 짓고, 특히 건강에 유해한 습지대에 새 정착지를 건설하도록 적극 권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염병 치료약이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사회혼란을 근절할 방안을 기획함으로써 인류에 기여하고 있다고 믿는, 인도주의적이나 잘못된 견해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만 한다면 연간 사망률은 1:36이나 1:40에서 1:18, 혹은 1:20까지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모두가 너도나도 결혼적령기에 이르자마자 결혼한다 해도 기근으로 굶어죽는 사람은 거의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무임승차한 꼬리칸 탑승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앞쪽 칸 사람들이 군대를 동원해 서슴없이 학살을 저지르는 상황과 흡사하다.
이처럼 논쟁적인 주장으로 인해 이 책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인구론’은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본 사회주의자와 계몽주의자의 세계관을 뒤흔들어놓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드높았다. 이 때문에 맬서스는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엄청난 비판과 악담에 시달려야 했다.
‘인구론’은 당시 자본가 등 기득권 세력에게는 원군이었다. 빈곤을 정당화하는 것 같은 데다 사회 복지에 애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빈민 구제와 인구 증가를 모두 지지했던 윌리엄 피트 영국 총리도 입장을 바꿔 둘 다 반대했다. 그렇지만 맬서스에게 악의나 우생학적인 숨은 의도 같은 게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빈곤과 인구 증가 중 후자가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기에 작은 해악을 감내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