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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책? 여전히 유효한 경고장?

  • 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책? 여전히 유효한 경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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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등 개도국에 영향

맬서스는 초판을 익명으로 출간하면서 제목도 ‘인구의 원리에 관한 소론: 윌리엄 고드윈, 콩도르세, 그 외 여러 저술가의 연구를 논평하면서 장래의 사회개혁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함’이라고 길게 붙였다. 파격적인 주장의 반향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2판부터는 유럽 각국의 인구 관련 자료를 망라해 객관성을 보강했다. ‘도덕적 억제’를 통한 인구 문제 해결 가능성도 낙관적으로 바꿨다. 빈민 구제에 대해서는 관련 법률의 완전 폐지가 아니라 점진적인 폐지가 좋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인구론’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 경제에 낙관적인 경제학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도했다. 개혁주의자들은 맬서스의 철자를 고쳐 ‘몬스터(Monster·괴물)’라고 불렀을 정도다. 독일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는 식량 생산력의 비약이라는 변수를 간과한 ‘인구론’을 “세계의 문헌 가운데 가장 멍청한 책”이라고 조롱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맬서스가 말하는 과잉 인구란 자본주의에 의해 불가피하게 생기는 상대적 과잉일 뿐이라고 폄훼했다.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절망에 빠진 빈민층을 위로하고 ‘인구론’을 공격하기 위해 구두쇠 스크루지가 개심한다는 내용의 명작 ‘크리스마스 캐럴’을 썼다고 한다.

반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인구론’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했다. “인구론은 젊은 천재의 작품이다. 인구론의 중요성은 그가 발견한 사실들이 신기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실에서 나오는 단순한 법칙을 강조한 데 있었다. 이 책은 사상의 진보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케인스는 “만일 리카도가 아니라 맬서스가 19세기 경제학이 뻗어나온 근간이었더라면, 오늘날 세계는 얼마나 슬기롭고 풍요한 곳으로 되었을 것인가”라며 추어올렸다. 구스타프 콘은 “역사를 통틀어 모든 국가 경제에 토대가 되는 가장 중요한 자연법”이라고 상찬했다.



‘인구론’은 빗나간 예측과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20세기 이후 세상을 바꾸는 촉매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구 폭발을 경험한 개발도상국들이 맬서스의 이론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경고는 1970~1980년대까지 한국, 중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에서 위력을 떨쳤다. 중국의 엄격한 ‘한 자녀 정책’은 인구론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은 사례다. 이 정책은 요리, 한자와 더불어 중국에서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3가지 가운데 하나라는 인구의 증가율을 연 1%로 끌어내렸다. 한국도 이 책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1960년대는 세 자녀 운동, 1970~1980년대 두 자녀 운동으로 인구 억제정책을 폈다. 오늘날에는 저출산을 걱정할 만큼 세상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新맬서스 이론

지구촌 전체로 보면 맬서스의 우려는 여전히 유효하다. 유엔은 세계 인구가 2011년 70억 명을 돌파해 2025년 81억 명, 2050년에는 96억 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한다. ‘인구론’은 1801년 영국 최초의 근대적 인구 조사가 실시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바 있다.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인구 증가와 이로 말미암은 천연자원 고갈, 환경오염 등으로 인류가 앞으로 100년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진단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여기에 ‘신(新)맬서스 이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구론’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 정립에도 결정적인 다리 구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윈은 ‘종의 기원’ 서문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모든 동식물에 적용한 것이 자신의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맬서스가 기술 진보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인구론’에 담긴 통찰과 현실주의적 비판의식은 오늘날에도 간과할 수 없는 긴요성을 지닌다. 전문가들은 2025년에는 세계 인구 가운데 3분의 1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18억 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식량을 물, 석유 등으로 확대하면 ‘인구론’의 경고는 더욱 심각해진다. 맬서스를 거짓 예언자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신동아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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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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