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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 SF

차원 이동자(The Mover) 7-2

데카르트의 비밀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차원 이동자(The Mover) 7-2

  • 탁월한 이야기꾼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SF 소설 ‘차원 이동자(The Mover)’를 연재한다. 과거와 현재,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차원 이동자’ 이야기로,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을 선보이는 이 소설 지난 회는 신동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주>
차원 이동자(The Mover)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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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9년 겨울, 군인 신분으로 세상을 유랑하던 르네 데카르트는 독일 도나우 강 인근 주둔지에서 후일 신이라고 믿게 될 어떤 존재와 접촉했다. 그 존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안다고 믿는 것 전체를 의심해 본 적이 있었더냐? 네가 믿어온 그 하느님이 혹시 악마일 수 있단 생각은 안 해 봤더냐?” 

엄청난 충격에 빠진 데카르트는 꿈을 꿨거나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들려왔으며 어느 순간 그의 생각 안에 자리 잡았다. 그는 번민하고 방황했다. 내면의 목소리가 거꾸로 악마일 수 있었으며 어쩌면 자기 자신이 미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둥번개가 몰아치던 어느 날, 비를 피하던 데카르트는 들판을 가로질러 어떤 집 헛간 처마 아래로 들어섰다. 온몸이 흠뻑 젖어 떨고 있던 그에게 퍼뜩 기이한 공포가 엄습했다. 눈앞에 펼쳐진 가공할 자연 현실이 모두 날조된 가상이라면, 그 모든 게 악마가 저지른 눈속임이라면 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근거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거대한 의심에 빠진 데카르트는 마침내 절대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 세상 전체를 의심할지라도 그걸 의심하고 있는 나라는 주체만큼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이성의 원리에 따라 세계를 건립할 근거가 수립된 순간이었다. 데카르트는 자신을 찾아온 미지의 목소리를 하느님이라 확신했고 자신이 신으로부터 받은 의심의 세례야말로 진정한 축복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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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가 수립한 합리주의 과학 전통이 서구 근대 문명의 도화선이었음은 분명한데…, 하지만 폐해도 많았던 건 사실이지요.” 

속삭이듯 말한 예림이 팔짱을 꼈다. 수첩에 무언가를 적으며 민서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이른바 근대 주체라 불리는 코기토(cogito)가 현대 문명의 여러 부조리를 만들어내고 말았죠. 과도한 이성주의, 자연 파괴, 인종 차별…, 또 여성 혐오?” 

“글쎄. 그게 다 데카르트 탓만은 아니겠지만…, 핵무기가 등장한 것도 결국 유럽의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기계론적인 세계관에서 비롯됐다고 생각되는군요.”

“동감입니다, 교수님. 이성 능력을 과신해 과학기술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게 현대 문명의 여러 위기를 낳았으니까요. 우리 문명의 이 오만함, 그게 두더지들이 노린 것이겠죠?” 

“이제 두더지의 정체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군요.” 

미소 지은 민서가 수첩을 내밀었다. 여러 개의 도형과 그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한 예림이 뭐라 말하려하자 민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물론 이해하긴 어려우실 겁니다. 그냥 참고하며 들어주세요. 차원의 중복 얘기 기억하시죠?” 

“무한개의 차원이 겹치며 우주 역사가 반복된다는?” 

“네. 그걸 아셔야만 교수님께서 두더지라고 표현하신 자들이 하고 있는 작업의 의미가 분명해질 듯해서.” 

예림은 수첩에 적힌 ‘임계점’이라는 단어에 눈길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서가 다시 말했다. 

“우리 우주는 어떤 임계점을 벗어나지 않는 한 평화롭게 반복 회전하는 팽이 같은 것이죠. 차원이 중복된다고 말했지만 그게 3차원 개념처럼 두께가 증가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림자 위에 다른 그림자가 보태진다고 해서 질량이나 밀도가 늘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벌어질 일들이 순차적으로 발생하기만 하면 그 사건이 설령 운석과의 충돌이라 하더라도 차원 자체엔 충격을 주지 않아요.” 

“거기까진 이해할 것 같군요.” 

“좋습니다. 문제는 차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동자의 출현이에요. 그들은 파동 형태로 움직이는데 그 자체가 우주에 엔트로피를 만들어내요. 파동도 에너지니까 이전에 없던 강력한 에너지 현상의 출현은 결국 차원을 교란시키겠죠?” 

“조금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쉽게 말해 쓰레기를 발생시킨다는 애기죠. 차원엔 복원력이 있어요. 임계점을 넘지 않으면 차원은 어떤 변화든지 흡수해 원래 상태로 회복합니다. 그런데 차원 이동은 그 임계점을 넘나들기 때문에 복원력에 문제를 일으키곤 하는 거죠.” 

“어떤 문제인가요?” 

“차원을 흔들어요. 너울대는 파도처럼. 이걸 진정시키지 않으면 우주 전체의 차원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죠. 그것 때문에 차원 이동이 금지된 것 같습니다.”
“어렵군요. 아무튼 차원 이동 자체가 차원을 교란시킨다는 뜻으로 이해할게요.” 

“맞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이동 자체도 위험하지만 만약 이동자가 행성 역사에 개입하게 되면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요. 저흰 그걸 차원이 꼬인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새로운 차원이 튕겨 나와 독립하는 현상이 벌어져요. 기존 차원 세계와 겹쳐지지 않는 곁가지 차원이 생겨나는 셈이죠.” 

“역시 엔트로피의 증가인가요?” 

“물론이죠. 지구를 예로 들어 볼게요. 이동자의 숙주가 공원의 개미를 밟아 죽였다고 쳐요. 차원 이동자만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 개미겠죠?” 

“차원이 꼬여 불필요한 세계가 발생하나요?” 

“아뇨. 그 정도 변화는 차원 스스로 복원해내요. 동요는 약간 일어나겠지만 사건 세계가 재배열되며 곧 정돈됩니다. 하지만 이동자가 남미 숲 전체에 불을 내면 상황은 달라지죠. 임계점을 넘는 순간 불필요한 차원이 열리고 지구 시공간에 불균형이 초래돼요. 이게 반복되면 우주 전체에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는 차원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겁니다.” 

“두더지들이 지구에 구멍을 판다고 했는데 그게 그런 의미인가요?” 

“아니, 그건 더 심각합니다. 보통 이동자는 차원 질서를 붕괴시키는 지경까지 가진 않아요. 하지만 두더지는 임계점을 훨씬 초과하는 사건을 일으켜 아예 차원을 함몰시키려는 겁니다.” 

“차원 함몰? 구멍을 판다?” 

“네. 행성 하나를 반복적으로 파괴시킴으로써 차원 질서를 무너뜨리다 보면 마침내 우리가 아는 차원 우주 밖으로 나갈 구멍이 생긴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둘 사이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예림이 천천히 입을 뗐다. 

“그렇다면…, 민서 씨.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정상적인 차원 세계가 아니겠군요? 이미 두더지에 의해 교란된 곁가지 차원 세계가 맞나요?” 

침을 꼴깍 삼킨 민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불행히도…, 그렇습니다. 우린 비정상적으로 꼬인 차원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몇 번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반복적으로 파괴되고 있는 저주받은 행성에서.” 

“희망이 없나요?” 

“추격자들이 있으니까…, 언젠가 그들이 통제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교수님과 제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두더지가 개입한 꼬인 차원계임이 분명합니다. 미래의 이 행성은 이미 파괴돼 있을 거고. 설령 두더지들이 제거된다 해도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이상 그 사실만큼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죠.” 

예림이 지갑을 열어 사탕을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어둠이 내린 도심을 무심히 바라보던 민서가 갑자기 속삭였다. 

“그거 아세요? 이동자를 만난 지구인이 의외로 많다는 거.” 

눈을 똥그랗게 뜬 예림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사탕 때문에 웅얼대고 말았다. 민서가 웃으며 말했다. 

“UFO나 외계인을 만난 사람들은 협회를 만들어 서로 모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이동자를 만난 사람끼리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에도 지부가 개설돼 있죠. 마침 오늘 저녁 정기모임이 있는데 같이 가보시겠어요?”




신동아 202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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