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상곤 박사의 ‘왕의 한의학’

여의(女醫) 파격 대우하고 장금에게 내밀한 치료 맡겨

산증(疝症)으로 대소변 제대로 못 본 중종

  •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여의(女醫) 파격 대우하고 장금에게 내밀한 치료 맡겨

2/4
이어서 나온 기록은 놀랍다. 다름 아니라 내의원 제조가 묻는 것이다. 내의원 제조는 알다시피 임금의 진료를 담당하는 자리다. 의료 총괄 책임자가 임금의 증세를 진료하는 게 아니라 되레 문안하는 자리로 역전되면서 장금에게 증세를 물어본 것이다. 중종은 답한다. “내 증세는 여의가 안다.” 여기서 여의는 장금이다.

더욱 놀라운 기록이 이어진다. 당시 중종이 앓은 질병은 산증(疝症)이다. 산증은 하복의 통증이 위로 치받쳐 오르는 것이다. 중종은 자신의 병에 대해 설명한다. “요즈음 날씨가 갑자기 한랭해져서 많은 한기가 배로 들어가서 냉기가 쌓여 대소변이 편안하지 못하다.” “그날 밤 장금이 나와서 말하기를 지난밤 왕이 삼경에 잠이 들고 오경에 다시 잠이 들고 소변을 보았으나 대변은 삼일째 불통이다.” 밤을 새우며 진료한 사람은 바로 의녀 장금이었던 것이다.

의관들은 증세에 맞춰 여러 날에 걸쳐 반총산이란 처방을 투여한다. 하지만 차도가 없자 극적인 처방을 구사한다. 밀정(蜜釘)을 사용한 것이다. 밀정은 밀전도법을 이야기한다. 관장법을 통해 대변을 배출하는 것이다. 피마자기름이나 통유탕 등 대변을 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다 직접 관장을 하게 된 것은 임금과 장금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10월 29일 실록은 임금이 대변을 통했다고 기록했다. 장금은 이렇게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치료하면서 왕을 모신 유일한 의녀였지만, 이후 역사 어디에도 그에 관한 기록은 없다.

찬 음식 즐긴 중종

제주도 의녀들의 기록은 특별히 기록돼 있다. 세종 13년 제주 의녀 효덕은 안질과 치통을 잘 치료해 세종이 쌀과 장 등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실록엔 성종 23년에 임금이 치통을 앓자 이비인후과의 유명한 의사를 초빙하라는 명을 내린다. 치통 치료에 일가견을 지닌 제주 의녀 장덕이 죽은 뒤라 그 제자인 귀금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본다. 제주도 의녀가 몇 대에 걸쳐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조선 왕의 평균수명을 보면 왕 노릇이 생명을 단축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대체로 왕실에서 자란 사람들은 질병에 자주 걸리고 단명하며, 반정을 통해 왕이 되거나 외부에서 갑작스럽게 왕이 된 이들은 질병도 없고 장수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종은 반정으로 왕이 된 대표적인 경우다. 중종은 40세에 이르러서야 종기를 앓아 치료받은 기록이 처음 나타난다. 어깨 부위가 아프고 붓는 종기가 생긴 것이다.

합병증으로 기침과 치통까지 생기면서 치료 순서를 고민하다 종기를 먼저 치료하기로 결정하고는 천금루노탕이란 처방을 복용하고 종기를 침으로 터뜨린다. 종기는 의외로 곪지 않아 태일고, 호박고, 구고고 등 고약을 붙인다. 거머리로 하여금 빨아먹게 하고서야 종기가 호전된다. 거의 6개월이 지나서야 종기가 나아지면서 의관들에게 상을 준다.

이후 중종은 건강을 회복하고 임종을 맞는 재위 39년, 57세 되던 해에 다시 질병을 호소한다. 39년 1월 17일 기록을 보면, 치통은 나았지만 잇몸이 아직 아프고 기침병도 생겨 경연(經筵)을 열지 못했다. 기침병을 치료하는 처방은 삼소음이다. 삼소음은 기운을 북돋우는 사군자탕을 기본으로 감기약을 첨가해 위장의 온기를 북돋우면서 가슴을 시원하게 하고 기침을 진정시키는 처방이다. 몇 차례 복용 후 기침 증세가 호전되자 찬 음식을 피해야 재발이 없을 것이라는 건강 지침을 준다. 거꾸로 해석하면 중종은 찬 음식을 즐겼다는 얘기다.

4월이 되면서 중종이 다시 호소한 증세는 어깨 통증이었다. 구고고 등 고약을 붙여보고 찜질도 하면서 치료하지만 신통찮은 효험으로 고민한다. 중종은 오목수(五木水)로 치료하고자 반문한다. 오목수는 5종류의 나무에서 나오는 물을 말한다. 곧 홰나무[槐], 뽕나무[桑], 복숭아나무[桃], 버드나무[柳], 느릅나무[楡] 혹은 닥나무[楮] 등에서 나오는 수액에 물을 타서 목욕하거나 오목을 끓여 목욕물로 사용하는 처방인데 효험이 좋았던 것 같다. 중종은 덧붙여 오목수로 목욕하면서 쉬고 싶다는 뜻을 은근히 피력한다.

또 다른 기록은 오목수의 효능이 상당히 보편적이었음을 나타낸다. 숙용 김씨가 온천수로 목욕하러 가고자 청하자 “이제 과연 농사철인데 왕자군이 선왕의 후궁을 모시고 왕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목수와 벽해수(碧海水·바닷물)로 목욕을 하면 병을 고칠 수 있으니, 내려가지 말라”고 이른다.

똥, 오줌이 약재로

10월 24일부터 중종은 대변이 막혀 곤욕을 치른다. 10월 29일 대변이 통하자 한숨을 돌렸지만 임종의 그림자가 다가온다. 11월이 되자 심열과 갈증을 호소한다. 혀가 갈라지고 입이 마르고 손바닥에도 번열이 있자 청심환, 생지황고, 소시호탕 등 다양한 처방을 통해 치료한다.

재위 39년 11월 4일 의관들은 아주 특별한 약물을 처방한다. 야인건수(野人乾水)다. ‘동의보감’은 이 처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성질이 차서 심한 열로 미쳐 날뛰는 것을 치료한다. 잘 마른 것을 가루로 만들어 끓는 물에 거품을 내어 먹는다. 남자 똥이 좋다.”

2/4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목록 닫기

여의(女醫) 파격 대우하고 장금에게 내밀한 치료 맡겨

댓글 창 닫기

2023/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