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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아 소피아 뛰어넘는 불멸의 유산을 쌓다

‘오스만의 미켈란젤로’ 미마르 시난

하기아 소피아 뛰어넘는 불멸의 유산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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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과 북쪽의 아치 아랫부분은 4개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받치고 있다(사진 3). 각 기둥은 하나의 큰 돌을 깎아 만든 것이라 그 자체의 위용도 대단하다. 쉴레이마니예를 지을 때 창립자인 술탄을 비롯해 설계자와 건설자들은 이 건축물의 상징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뚜렷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건물을 지은 궁정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친구 무스타파 사이 첼레비에게 부탁해 남긴 생각을 읽어보자. ‘건설기록(Tezkiretu ‘l’Bunyn)’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산문과 운문이 결합된 형식이다.

4개의 대리석 기둥은 4명의 선택된 친구들을 상징하며 그 각각은 믿음의 정원에 있는 당당한 사이프러스 같다. 각각은 다른 땅에서 왔는데, 그중 하나는 이교도 시대에 한 처녀에 의해 크즈타쉬 지구에 세워진 것이다. 처녀 기둥(크즈타쉬)이라 불리는 그 기둥은 큰 돌 하나로 만든 미나레트 같고 투바 나무 둥지 같다.

순수한 대리석 기둥들은/

천국의 바퀴살이 된 것 같도다/



한 처녀가 보물을 사람들과 신령들에게 선사했고/

그녀를 기억하도록 기념비를 세웠도다/

산을 깎는 자 같은 거장이 왔고/

그가 그것과 더불어 이 기둥 없는 볼트의 벽기둥을 만들었도다//

‘4명의 선택된 친구들’은 이슬람교 수니파에서 숭상하는 4명의 정통 칼리파, 즉 라쉬둔 칼리파를 가리킨다(그들의 터키식 이름은 에부 베키르, 외메르, 오스만, 알리). 이 칼리파를 상징하는 4개의 기둥은 천상을 떠받치는 바퀴살이나 정원의 사이프러스 나무들로도 읽혔다. 이렇듯 종교적 상징인 동시에 오스만 제국 위업의 상징이기도 했다.

인용한 글에서 보듯 이 기둥 중 하나는 이스탄불 내에서 가져왔고, 다른 하나는 토카프 궁전의 첫째 마당에 보관되어 있던 건설자재를 가져온 것이다. 나머지 두 기둥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레바논 지역의 바알베크에서 배로 실어 왔다.

두 곳은 술탄 쉴레이만의 아버지인 술탄 셀림 1세 때 새로 확보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바알베크는 로마시대 가장 큰 신전이 있던 곳이다.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6세기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짓기 위해 그 신전의 기둥 8개를 해체해 배로 실어 오기도 했다.

그러한 고대 제국의 전통에 따라 쉴레이만도 제국 곳곳에서 대표적인 고대 유산의 기둥을 가져와 한 건물에 결합시켰다. 제국의 통합을 과시한 것이다. 기둥만이 아니다. 아치의 홍예석들은 다양한 색상의 대리석을 깎은 것인데 그것들도 제국 여러 곳에서 가져왔다.

이 건축 공간의 종교적 경건함과 제국의 힘은 규모와 재료에서만 뿜어져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건축물의 아름다움에서 나온다. 이 건물은 보면 볼수록 고도로 세련된 비례의 감각으로 만들어져 있다.

미흐라브와 밈바르(연단), 문과 창문, 각종 장식물 등은 중요한 것이 더 강조돼 보이도록 비례를 맞추면서도 크기와 색채에 차이가 나게 했다. 볼트(vault·아치형 천장), 돔 같은 곡선 구조체를 입체적으로 짜 맞춰 공간 전체의 수학적 비례관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아치들은 “하늘의 궁륭(穹·활이나 무지개처럼 높고 길게 굽은 형상) 같고 미인의 눈썹 같아, 전문가들의 눈을 매료시켰다”고 전한다. 종교적 성소에 걸맞은 아름다움이 넘치는 공간이 되도록 건축가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비잔틴의 유산을 능가하다

흥미롭게도 이 자미 안에서는 하기아 소피아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건축물의 평면과 구조체 모양은 하기아 소피아를 많이 닮았다.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기 전부터 오스만인들은 하기아 소피아를 침해할 수 없는 신비한 걸작으로 간주했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파티흐(정복자)’로 불리게 된 술탄 메흐메트 2세는 가장 먼저 그곳을 찾아가 경의를 표하고 곧바로 미흐라브를 설치해 이슬람의 성소로 삼았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의 건축가들은 하기아 소피아를 능가하거나 모방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쉴레이만 대제의 궁정건축가 미마르 시난도 하기아 소피아의 양식을 따랐다. 그의 말에 따르면 쉴레이마니예는 하기아 소피아 양식을 따라 만든 건물로서는 완벽했다.

“시대의 기술자들과 상서로운 기념비적 건물들의 감독자들이 볼 때 하기아 소피아의 양식으로 지은 이전의 건물들은 품위를 갖추지 못했지만, 이 종은 고귀한 세흐자데 술탄 메흐메트 자미와 그것을 본으로 삼아 만든 고귀한 술탄 쉴레이만 건물군을 완벽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높은 건축물에 다양하고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이 만들어졌고 그 각각은 품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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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일|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jeongse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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