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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뼛속 스며드는 맑은 기운 혼을 깨우는 대쪽 선비 정신

경북 봉화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뼛속 스며드는 맑은 기운 혼을 깨우는 대쪽 선비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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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 스며드는 맑은 기운 혼을 깨우는 대쪽 선비 정신

봉화 닭실마을.

경상북도의 최북단 봉화군은 북쪽으로 소백산을 사이에 두고 단양군과 마주하며 서쪽으로는 영주시, 남쪽으로 안동시와 이웃한다. 동쪽의 울진 땅을 건너면 동해 바다다. 봉화를 찾는 이들은 대개 단양과 영주를 거치지만, 내가 디디는 행로는 안동의 도산서원을 거쳐 북녘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따라서 내게는 안동, 봉화의 접경을 이루는 청량산이 곧 봉화 땅으로 드는 관문이다.

찻길이 홀연 강줄기와 나란히 하는 데서부터 눈에 잡히는 산봉들의 모습이 범상치 아니하다. 높고 기이한 산을 더욱 훤칠하게 하는 이 강줄기가 바로 청량산 기슭을 돌아 이현보 종택 앞으로 흘러가는 낙동강 최상류 물길이다. 강줄기는 이어 이육사 시인의 고향 마을 앞을 흐른 뒤 퇴계 선생의 묘소 뒷산을 휘감아 돌고 도산서원을 거쳐 안동호로 든다. 빼어난 산수가 인걸을 낳고 키운다는 말은 이 산과 이 물길에서 실감하게 된다.

화려한 산의 자태는 강을 건너 산의 품 속에 든 뒤에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산길이 제법 길고 경사가 있지만 청량사까지는 누구든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데, 이곳 절 마당에서 마주하는 산 풍경이 실로 그림처럼 아름답다. 반공(半空)에 솟은 산봉우리들은 마치 푸른 바다에 뜬 돛배 같기도 하며, 햇빛을 반사하는 너럭바위와 무성한 숲은 출렁이는 수면 같다.

맑은 가을날의 청량산은 말 그대로 만산홍엽이다. 눈길 가는 데마다 선홍빛, 주황빛 단풍이 드리워져 산속에 든 이의 속살마저 붉게 물들일 듯싶다. 절 뒤편에 난 등산로는 단풍 터널과 다를 바 없다. 단풍에 취하며 걷다보면 더욱 놀랍고 황홀한 경치를 만날 수 있는데, 이는 땀 흘린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여분의 복이다. 이른바 6.6봉(12봉우리)의 빼어난 풍광이 차례로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청량산에 기대는 마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인봉은 청량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870m)다. 가장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먼 데서도 위용이 선연한 그 봉우리다. 정상에 서면 발 아래로 병풍처럼 늘어선 기암절벽들이 내려다보이고, 먼 데의 크고 작은 산들은 물론 굽이굽이 흐르는 강줄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장인봉 동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선학봉이다. 청량산 열두 봉우리의 이름은 조선시대의 유학자 주세붕이 풍기군수를 지내던 때 직접 이곳을 유람하며 지었다고 전하는데, 이 봉우리가 마치 학이 날아오르는 듯한 형세를 하고 있어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산은 그 자체로 위엄과 기품을 갖기도 하지만, 명류의 문필과 언사에 힘입어 이름값을 더하는 경우도 많은데 청량산도 예외는 아니다. 주세붕뿐만 아니라 신라의 명필 김생과 문장가 최치원이 이 산을 거들고 있는 데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학자 이퇴계가 화룡점정의 훈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何處無雲山

어딘들 구름 낀 산이 없으랴마는

淸凉更淸絶

청량산이 더욱 맑고 빼어나다네

亭中日延望

정자에서 매일 이 산을 바라보면

淸氣透人骨

맑은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든다네

-퇴계의 시 ‘망산(望山)’

청량산에 관한 퇴계의 여러 시문 가운데서도 그 애정이 가장 짙게 드러나는 시편이기에 이 시는 청량사 경내의 돌에도 새겨져 있다. 퇴계에게 산수는 자신의 학행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따라서 산수는 언제나 반성과 규범의 대상으로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그 지고한 가치는 맑음과 꼿꼿함(淸絶)인데 이는 곧 퇴계 자신의 지향점이기도 했다. 퇴계가 청량산을 주희(朱熹)가 머물던 중국 무이산(武夷山)으로 자주 상정하곤 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평생 주자를 공부하면서 스스로 그 세계를 더 넓고 깊게 했던 퇴계는 실제로 무이산을 가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여 자신의 이상향 무이산을 청량산으로 옮겨올 도리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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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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