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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부리 달고 산 거구 전방위 지식 탐구도 ‘대식가’

육당 최남선

  • 소래섭│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주전부리 달고 산 거구 전방위 지식 탐구도 ‘대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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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육당은 새로운 시가 창작과 잡지 간행 등 문화운동과 아울러 우리 고대사 및 문화 연구에도 몰두했다. 단재 신채호, 위당 정인보 등과 함께 당시 우리 고대사 연구에 한 획을 그은 것이 바로 육당이다. 이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사상을 탐구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위한 ‘나라 만들기’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보았다. 또한 이는 일제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한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역사와 민속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조선총독부가 통치 정책의 참고자료를 얻기 위해 실시한 여러 조사 사업에서 시작됐다. 이후에는 총독부와는 별개로 이마무라 도모에, 아키바 다카시 등에 의해서도 학문적 연구가 이뤄졌다. 그들은 정교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한 객관적 연구를 지향했지만, 거기에는 암묵적으로 식민주의적 시선이 내재했다.

반대로 육당을 비롯한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연구는 식민 담론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 담론의 일종으로 시작됐다. 그들의 연구는 문화적 동화론을 지지했던 일본 학자들에 대한 반론으로 제시됐고, 더 나아가 식민지배 문화인 일본문화와는 다른 조선문화의 독자적 기원과 발전을 의도적으로 찾는 작업이었다. 이들은 단군신화, 무속, 토착적 민중문화 등에 주목했다.

육당은 우리 민족 특유의 정신적 특성을 ‘조선심(朝鮮心)’이라는 말로 정의하고, 1920년대 이후 어디에서든 조선심을 드러내고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의도에서 출발한 그의 조선심 연구는 1927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회 촉탁이 되면서 훼절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에도 여러 경로로 일제에 협력했던 육당은 결국 1949년 반민족행위자로 지목돼 마포형무소에 수감된다.

옥중에서 육당은 자신의 과거 행적을 설명하는 자열서(自列書)를 남겼는데, 반민족행위에 대한 그의 변명은 이랬다. “조선사 편수위원, 중추원 참의, 만주괴뢰국 건국대학 교수, 이것저것 구중중한 옷을 연방 갈아입었으나 나는 언제나 시종일관하게 민족정신의 검토, 조국역사의 건설, 그것 밖으로 벗어난 일이 없다.” 아마도 육당이 일제에 협력하지 않았거나 광복 후 치열한 자기반성의 글을 남겼다면, 육당에 대한 평가는 지금과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대식가라서 다행인 까닭

주전부리 달고 산 거구 전방위 지식 탐구도 ‘대식가’

1927년 11월 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화가 안석영이 그린 대식가 최남선의 캐리커쳐.

안석영은 육당의 이중적 행적을 ‘대식가’라는 말로 비꼬았는데, 실제로도 육당은 대식가였던 듯하다. 안석영에 앞서 1926년 잡지 ‘별건곤’은 육당의 대식가적 면모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육당은 군것질이 심해서 주머니 속에 늘 호떡, 군밤, 왜콩, 호콩 등을 넣고 다녔다고 한다. ‘별건곤’의 필자는 육당의 몸집이 점점 비대해지는 것도 군것질 때문인 것 같다고 적었다. 안석영이 그린 육당의 캐리커처를 보면 마치 3등신 같은데, 육당은 대식가답게 몸집도 비대한 편이었다고 한다.

육당은 음식에 대한 본격적인 글이나 문학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대식가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몇 편의 글이 있다. 그중 하나는 육당이 우리나라 최초로 창간한 잡지 ‘소년’에서 찾을 수 있다. ‘소년’ 창간호의 맨 앞에 실려 있는 글이 ‘해에게서 소년에게’이고, 바로 이어진 글이 ‘여러분은 뜻을 어떻게 세우시려오’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소년시언(少年時言)’이다. 이 글에서 육당은 어린 시절의 인생 설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음식에 비유해 설명한다.

대저 경단이나 송편이나 만두나 이것은 다 성형된 뒤에 이름이로되 밀가루나 쌀가루에 물을 타서 뭉친 반죽 때에는 다 같은 반죽이니 아무 분별도 없는 것이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떡반죽 같아서 지금에 뭉쳐 만들면 아무것이라도 될 수 있을 뿐더러 또한 잘못하면 쉬거나 뭉그러져서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말 수도 있는 것이라. 이때 우리가 어찌 조심치 않으리까.

-‘소년시언’, ‘소년’ 창간호, 1908년 11월호

청소년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이지만, 어쩐지 이 글을 읽노라면 육당의 주머니에 늘 떡이 들어 있었다는 ‘별건곤’의 기사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육당이 1929년 발간한 잡지 ‘괴기(怪奇)’에 실린 ‘기괴한 기호-식욕도착증’이라는 글을 보자. 이 잡지는 ‘괴기’라는 제호와 달리 엄청난 목적을 지니고 창간됐다. 창간호 앞부분에 육당이 밝힌 이 잡지의 의미를 읽다보면 숨이 막혀 질식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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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섭│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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