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단독] 질본, 코로나 검사대상 축소 추진 의혹

“웬만하면 검사 소견 내지 말라는 것”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03-1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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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 소견 따라’ 가능하던 검사 조건에 3월부터 ‘폐렴’ 추가

    • 전문가 “조건 까다롭게 해 진단 검사 수 줄이려는 것” 의심

    • 질본 “현장 의사들 요구 반영한 것” 해명

    3월 12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집단 감염증 확진자가 나온 서울 구로구 보험사 콜센터 건물에서 한 시민이 검체 검사를 받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3월 12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집단 감염증 확진자가 나온 서울 구로구 보험사 콜센터 건물에서 한 시민이 검체 검사를 받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사례정의’를 여러 번 고쳤다. 현재는 3월 2일 7판이 나온 상태다. 사례정의는 감염병 감시와 대응을 위해 관리해야 할 대상을 의미한다. 1월 4일 당시 질본 ‘우한시 원인불명 폐렴 대책반’이 발표한 코로나19 의사환자(의심환자) 첫 정의는 이랬다. 

    “발열(37.5℃)과 중증 호흡기증상(폐렴 등)이 있으면서 증상이 나타나기 전 14일 이내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화난(華南) 해산물 시장을 방문한 자.”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화난시장’을 방문하고 14일 이내에 발열과 폐렴 증상이 둘 다 나타난 사람만 관리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넓혔던 사례정의, 최근 다시 축소?

    이후 코로나19가 중국 전역을 넘어 세계 각국으로 확산한 사실이 드러났다. 1월 20일 국내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왔다. 의료계를 중심으로 사례정의를 확대해 신종 감염병을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2월 초 태국, 싱가포르 등을 방문한 적 있는 코로나19 환자가 중국 여행력이 없다는 이유로 방역망에 잡히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이 빗발쳤다. 보건 당국은 비로소 사례정의에 ‘의사 소견에 따라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자’를 포함했다. 2월 20일 발표된 6판부터는 특정 증상 발현 여부, 특정 지역 방문 여부 등과 관계없이 의료진 판단에 따라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할 수 있는 길이 공식적으로 마련됐다. 

    현재 코로나19 진단검사비는 약 16만 원. 개인이 검사를 의뢰하면 비용을 직접 부담한다(확진 판정 시 정부 부담). 반면 사례정의상 의심환자에 해당하거나 의사 권유에 따라 검사를 받으면 돈을 낼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진단검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경에는 이러한 사례정의 확대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3월 2일 발표된 7판에서 사례정의가 다시 변경됐다는 점.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차의과학대 교수)은 “질본이 이때 별다른 설명도 없이 진단 범위를 대폭 축소했다”고 비판했다. 사례정의 7판 ‘조사대상 유증상자’ 항목 1번은 ‘의사 소견에 따라 원인미상폐렴 등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자’로 돼 있다. 6판과 달리 ‘원인미상폐렴 등’ 일곱 글자가 추가됐다. 전 교수는 “일반인한테는 별것 아닌 듯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장 의사들에게는 매우 큰 변화”라고 지적했다. 



    “과거엔 환자가 발열증상 정도만 보여도 의사가 상황을 검토해 감염이 의심스러울 경우 코로나19 진단을 권할 수 있었다. 이제는 신경 쓸 게 늘어났다.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오면 엑스레이부터 찍어야 하나? 환자가 병원에 오래 머물면 바이러스 노출 위험이 커질 텐데? 촬영 후 폐렴이 아닌 걸로 나오면 검사 비용은 어떡하지? 등등. 얼마 전 일선 병원장 한 명이 사례정의 변경에 대해 얘기하며 ‘너무 힘들게 됐다’고 토로하더라.” 

    전 교수 얘기다. 그는 “현장 의사들은 보건 당국이 코로나19 진단 건수를 줄이려는 의도로 사례정의를 바꾼 게 아니냐고들 한다. 과거 사례정의를 확대할 때는 적극적으로 홍보하던 질본이 이번에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은 점도 의심을 키우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경증 환자는 진단검사 대상에서 제외?

    문재인 대통령은 3월 11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망자가 더 나오지 않게 각별한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3월 11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망자가 더 나오지 않게 각별한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 제공]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7판 개정을 통해 코로나19 진단 대상자 범위가 크게 줄었다”고 평했다. 

    “코로나19 환자를 보면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상태부터 위중 단계까지 환자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원인미상폐렴 증세는 적어도 중증 이상일 때 나타난다. 현장 의료진이 질본 사례정의를 충실히 지켜 폐렴 환자 위주로 진단검사를 실시할 경우 기침, 발열 등 가벼운 증상만 보이는 초기 코로나19 환자의 진단검사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문제는 무증상감염 얘기가 나올 만큼 초기부터 코로나19 전파력이 크다는 점이다. 경증환자 진단을 놓치면 방역에 구멍이 뚫리지 않겠나.” 

    김 교수의 비판이다. 서울 한 대형병원 교수는 보건 당국이 사례정의를 개정하면서 코로나19를 의심할 수 있는 여러 증상 가운데 굳이 ‘원인미상폐렴’을 특정한 점을 문제 삼았다. 그의 얘기다. 

    “전문의시험에 자주 나오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어떤 환자의 경우 엑스레이에서 폐렴증세가 잘 보이지 않는가’이다. 답을 말하면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 탈수증세가 있는 환자, 노인 등이다. 이들은 엑스레이로 폐렴을 잡아내기 어렵다. CT 촬영을 해야 비로소 증상을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폐렴증세를 보이는 환자 중 상당수는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령자다. CT촬영 없이는 폐렴 증세를 확인하기 어려운 이들이다. 그런데 왜 폐렴을 사례정의에 제시했을까. 의료진이 보면 ‘웬만하면 코로나19 검사를 권하지 마세요’라는 의미가 읽힌다.”

    봉쇄에서 피해 최소화로 전환?

    그렇다면 보건 당국은 왜 최근 사례정의를 변경했을까. 질본이 이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의사들은 “진단검사 건수가 줄어들 것을 기대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한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진단검사가 유례없이 많이 이뤄진 면이 있다. 보건 역량이 진단 분야에 집중돼 환자 치료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런 이유로 보건 당국이 새로운 기준을 세웠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월 중순 이후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중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증상이 악화해 사망하는 일이 잇달아 벌어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3월 1일 경증 코로나19 확진자를 의료기관이 아니라 생활치료시설에 격리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전략이 환자 발생 자체를 억제하는 ‘봉쇄’에서 중증환자 사망을 막는 ‘피해 최소화’ 쪽으로 전환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3월 11일 질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망자가 더 나오지 않게 각별한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앞선 응급의학과 교수는 “보건 당국이 감염병 상황을 판단하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고자 사례정의를 바꾸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 보건 당국이 할 일이다. 하지만 지침을 바꿀 때 이유를 설명하고 의료진의 협조를 구하지 않으면 현장 대응이 어려워진다. 의료진이 공감하고 협조할 수 있도록 사례정의 변경 이유를 투명하게 밝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질본 관계자는 “7판 사례정의 변경을 통해 진단검사 대상이 축소됐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현장 의사들이 코로나19 의심 소견을 낼 때 참고할 증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 ‘원인미상폐렴’을 예시로 넣었을 뿐이며 그 뒤에 ‘등’이 있기 때문에 의사 판단의 재량권은 여전히 유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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