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공염불된 개혁공천

“與, ‘진문(眞文) 공천’ 획일화, 중도 확장 차단” “野, ‘돌려막기’ ‘사천’ 논란, 새 피 수혈 못해”

  • 김성곤 이데일리 정치부 기자

    skzero@edaily.co.kr

    입력2020-03-23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민주당, 친문 공천 득세…‘진박 공천’ 유사

    • 靑 출신 대거 투입, ‘그 나물에 그 밥’ 공천

    • 금태섭 탈락 상징적…‘소수의견 배제당’

    • 통합당, 막판 잡음으로 공천위원장 하차

    • 홍준표 김태호 ‘거물’ 무소속 출마

    공천 탈락한 금태섭 의원(왼쪽).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14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제2차 중앙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DB, 뉴스1]

    공천 탈락한 금태섭 의원(왼쪽).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14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제2차 중앙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DB, 뉴스1]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여야가 약속한 개혁공천은 ‘공염불’이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개혁공천의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용두사미였다.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 발탁과 전진 배치라는 초심이 무너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용퇴론’이 사실상 무산됐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한때 86세대 2선 후퇴론이 거세게 불었지만, 대안부재론 탓에 유야무야됐다. 사실상 ‘그 나물에 그 밥’ 공천이었다. 

    미래통합당 역시 영남 중진 등 다선 의원 물갈이와 수도권 ‘돌려막기’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공천 막바지에는 당 대표와 공관위원장이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결과적으로 여야가 내세웠던 혁신공천은 물거품에 그쳤다는 평가다. 

    공천 핵심은 물갈이와 새로운 피 수혈로 상징되는 인적 쇄신이다. 건강하고 맛있는 밥상을 유권자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전제는 오래되고 부패한 재료를 버리고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재료로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역대 총선을 보면 개혁공천은 총선 승리의 징검다리였다. 민주당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국민의당 창당에 따른 야권 분열 여파로 참패가 예상됐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친노 좌장 이해찬 컷오프’ 등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주도한 개혁공천 효과였다. 통합당도 2012년 19대 총선에서 이명박(MB) 정부 레임덕으로 쉽지 않았지만 결과는 ‘과반 승리’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도한 개혁공천과 인적 쇄신 효과였다. 그런데 이번 4·15 총선 공천은 여야 모두 그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을 강조해 왔다. 원혜영 공천관리위원장은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으로 총선 승리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시작은 좋았다. 표창원·이철희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분위기도 좋았다. 일부 공천 잡음도 있었지만 대체로 순항했다. 최대 논란은 ‘친문 득세·비문 탈락’ 경향성이었다. 세대교체론을 잠재운 86세대 중진의 기득권은 오히려 강화됐다. 

    서울 강서갑 현역인 금태섭 의원의 탈락은 상징적이다. 합리적 성향의 소신파인 금 의원마저 포용하지 못한다는 비판 때문이다. 금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반대하면서 친문 지지층의 거센 비난에 시달렸다. 금 의원은 공천 탈락 후 “제가 부족해서 경선에서 졌다”고 승복했지만 후폭풍은 작지 않다. ‘소수의견 배제’라는 민주당의 획일화를 드러내면서 ‘중도 확장’ 가능성을 차단했다는 우려다. 친문 저격수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친문 ‘팬덤 정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맹비난했다. 이 밖에 공천에 탈락한 오제세·민병두·정재호·신창현 의원(이상 컷오프)이나 이석현·이종걸·유승희·손금주 의원(이상 경선 탈락) 등도 대체로 비문 또는 계파색이 옅은 의원들이다.

    ‘무혈입성’한 86세대와 靑 낙하산

    반대로 친문 성향의 전·현직 지도부와 86세대 중진들은 ‘무혈입성’했다. 특히 86세대를 대표하는 이인영·우상호·송영길 의원은 건재를 과시했다. 또 홍영표·전해철·윤호중·김태년 의원도 손쉽게 공천 문턱을 넘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했던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은 서울 구로을, 고민정 전 대변인은 서울 광진을에 각각 전략공천을 받았다. 또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서울 양천을), 박수현 전 대변인(충남 공주·부여·청양), 진성준 전 정무기획비서관(서울 강서을), 조한기 전 제1부속비서관(충남 서산·태안)도 단수공천을 받았다. 아울러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경기 성남 중원),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서울 관악을), 한병도 전 정무수석(전북 익산을),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서울 성북갑)은 경선에서 승리했다. 

    민주당 공천의 최대 특징은 친문 성향 86세대의 공천 티켓 확보였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86세대 책임론과 교체론이 거셌지만, 공천에서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오히려 친문 독식 계파공천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0대 총선 당시 국민의당 창당에 따른 비문(非文) 계열 대거 이탈이라는 구조적 요인을 고려해도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온다. 4년 전 김종인 당시 비대위 대표가 주도한 공천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더구나 여성이나 청년 우대는 애초 공언과 달리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친문불패 공천이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이 지난 20대 총선에서 ‘진실한 친박’을 골라내기 위한 ‘진박 공천’과 뭐가 다르냐는 비난이 나온다. 

    친문 위주의 공천이 총선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보수 진영이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발목을 잡아온 만큼 대야(對野) 투쟁력 확보를 위한 단일대오는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보수야권이 4월 총선 이후 문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는 점을 고려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총선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번 공천이 중도층 확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18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우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북·미정상회담의 여파로 압승을 거둔 것과 달리 현 상황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마스크 대란 등의 악재로 민심이 차가운 데다, 부동산 폭등 등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론이 불거질 소지도 다분하다. 게다가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둘러싼 말 바꾸기 논란도 신뢰 위기를 증폭시켰다. 최악의 경우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이 180석 대망론에도 불구하고 참패한 사례가 재현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죽기 좋은 계절” 현실화된 통합당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3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위원장직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공천 탈락한 홍준표 의원(오른쪽). [동아DB]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3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위원장직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공천 탈락한 홍준표 의원(오른쪽). [동아DB]

    역대 총선에서 보수정당 공천은 늘 시끄러웠다. 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과 한나라당의 공천은 피로 얼룩졌다. ‘이명박 vs 박근혜’ 혈투로 얼룩진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여파였다. 이후 18대 총선 친박계 학살, 19대 총선 친이계 학살이 이어졌다. 20대 총선에서는 ‘유승민 배제’로 대표되는 ‘진박공천’ 파동으로 자멸했다. 4년 전 총선에서 대선·지방선거를 거쳐 21대 총선까지 4연패(連敗)를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통합당은 와신상담했다. 삼고초려 끝에 모셔온 ‘공천 칼잡이’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었다. 김형오 전 의장은 지난해 8월 통합당 전신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여러분, 죽기 딱 좋은 계절입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경고는 현실이 됐다. 김형오 공관위 출범 이후 영남 다선 중진들의 대규모 물갈이가 진행되면서 피바람이 불었다. 거물급 인사의 공천 배제로 국민적 이목을 사로잡은 흥행몰이에도 성공했다. 

    ‘보수 텃밭’인 영남에는 대대적인 칼질이 이어졌다. 직전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컷오프됐다. 반발은 격렬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이번 협잡에 의한 공천 배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결코 승복할 수 없다”며 대구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김태호 전 지사 역시 “참 나쁜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또 보수통합의 시너지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핵심 인사들도 줄줄이 컷오프됐다. 이른바 ‘탄핵 5적’(홍준표·김무성·유승민·김성태·권성동) 문제도 공천 탈락 또는 불출마로 정리됐다. 외연 확대를 위한 친박 색깔 빼기 노력도 이어졌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5선 중진 이주영 의원,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3선 김재원 의원, 윤상현 의원 등도 공천에서 컷오프됐다. TK 출신 중 비교적 합리적이면서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한 대북 전문가 백승주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주호영(대구 수성을→수성갑), 김용태(서울 양천을→구로을), 정우택(충북 청주상당→청주흥덕), 김재원(경북 상주의성군위청송→서울 중랑을 경선), 이혜훈(서울 서초갑→동대문을 경선) 등 중진들의 수도권 험지 차출도 논란이 됐다. 정치 신인들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 당선 가능성과 크게 상관없는 지나친 ‘보여주기식 돌려막기’라는 지적이다.

    김형오, 막판 잡음으로 하차

    더불어민주당 평택을 당원들이 2월 2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평택을 지역의 전략공천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평택을 당원들이 2월 2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평택을 지역의 전략공천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비교적 순항하던 김형오 공관위는 ‘사천(私薦) 논란’으로 막판 홍역을 치렀다.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개인적 인연을 공천에 반영했다는 비판이다. 태영호 전 공사(서울 강남갑), 최홍 전 맥쿼리투자자산운용 사장(서울 강남을),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이었던 황보승희 전 부산시의원(부산 중·영도구), 서병수 전 부산시장(부산진갑) 등이 대표적이다. 당 안팎에서 비난이 거세지면서 황교안 대표와 김형오 위원장이 정면충돌했다. 공관위 공천 결정에 당 최고위가 재의를 요구한 것. 보통 공관위가 공천 전권을 행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공관위는 6곳 재의 요구 중 일부 수용했다. 체면을 구긴 김 위원장은 3월 13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친문 논란이 불거진 서울 강남병 김미균 후보자의 전략공천을 철회한 뒤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고 오늘부로 공관위원장직을 사직하겠다”며 사퇴했다. 황교안 대표는 갈등 봉합에 나섰다.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민주당 공천과 관련 “과거 ‘진박 감별’ 논란이 연상될 정도로 친문 위주의 공천이었고, 청와대 출신과 586세대 위주의 공천이었다”며 “금태섭 의원의 공천 탈락 등과 연관시킬 때 향후 총선에서 중도층 유입이 어렵거나 민주당을 지지하던 기존 중도층이 떠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합당 공천과 관련해서는 “공관위 결정을 번복하는 건 공당이 아니다. 특히 사천 논란도 친박이 김형오 위원장을 공격하기 위한 프레임”이라면서 “공관위를 흔들어 무력화하면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서 총선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