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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 SF

차원 이동자(The Mover) 7-1

두더지들의 세계사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차원 이동자(The Mover) 7-1

  • 탁월한 이야기꾼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SF 소설 ‘차원 이동자(The Mover)’를 연재한다. 과거와 현재, 지구와 우주를 넘나드는 ‘차원 이동자’ 이야기로,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을 선보이는 이 소설 지난 회는 신동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주>
차원 이동자(The Mover) 7-1
1
공민서의 첫인상은 묘했다. 오똑한 콧날에 온화한 눈빛을 지녔지만 부드럽게 각진 턱은 강인함을 품고 있었다. 선예림은 준비해간 소설 표지를 펼쳐 사인을 부탁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자신의 책에 정성스럽게 서명한 민서가 말했다. 

“제 책 독자가 많진 않아요.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돌려받은 책 서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예림이 말했다. 

“고문헌학자인 전 어땠겠어요? 블랙홀, 웜홀, 화이트홀 도대체 무슨 얘긴지 모르겠더군요.” 

잠시 침묵한 채 자신보다 열 살 이상 연상인 예림을 지그시 바라보던 민서가 천천히 입을 뗐다. 



“이제 교수님 얘기를 들어볼까요?”


2
프리드리히 니체가 그 위험한 생각에 도달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에겐 비밀스러운 내면의 목소리가 존재했다. 1864년 여름의 어느 저물녘, 본 대학 기숙사에서 격렬한 두통과 함께 쓰러졌던 청년 니체는 자신을 구성하는 정체성이 이중화됐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자아 안에 누군가가 더 있었고 그 존재가 끝없이 그에게 말 건네고 행동까지 조종했다. 

학생회 동료들과 만취해 창녀들과 어울린 뒤면 니체는 무리에서 홀로 떨어져 새벽까지 독일 본의 도심을 이리저리 방황했다. 내성적인 목사 지망생은 우두커니 별들을 바라봤고 자신을 압도하는 그 엄청난 외부의 힘을 하느님이라 단정할 수 없었다. 그게 하느님이라 할지라도 기독교가 감당할 수 없는 더 초월적 존재였다. 그는 뭐라 형용할 길 없는 그것을 ‘인간 이상의 존재’ 혹은 ‘초인’이라고 명명했다. 

바젤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니체는 자신이 고안한 초인 철학을 예술사를 통해 구현하려 시도했다. 문헌학도 아니고 예술비평도 아닌 이 어정쩡한 작업을 이해해줄 사람은 드물었다. 그는 고립됐다. 중근동(中近東) 조로아스터교와 인도 불경이 그의 생각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명멸하던 어느 날, 캠퍼스를 산책하던 그에게 엄청난 영감이 떠올랐다. 그건 내면의 존재가 다음과 같이 속삭이며 시작됐다. 

“잘 들으렷다. 너의 이 인생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해 보아라! 큰 수레바퀴가 돌 듯 그렇게. 무엇이 수치이고 무엇이 정의더냐? 도덕은 어디 있으며 신은 무엇인고?” 

이성과 도덕의 위선을 찢어발기고 생 자체의 적나라한 권능을 회복시키려던 그의 신념에 경이로운 빛이 비춰진 순간이었다. 그는 급히 수첩에 ‘영원한 되돌아옴’이라고 메모했다. 

훗날 ‘영원한 회귀’ 혹은 ‘영겁회귀’로 불릴 이 생각은 자신의 실존을 사랑하라는 운명애를 설파할 목적으로 잉태됐지만 실은 몹시 위험한 것이었다. 자신이 통과하고 있는 이 순간이 이미 한없이 반복돼온 것이라면 기꺼이 그 운명에 순종하며 생을 긍정할 수도 있지만 살짝만 실족해도 무도덕의 악마적 방종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현실이 이미 실현된 미래의 무의미한 반복일 뿐이라면 사람은 이제 유희하듯 신의 위치에 올라 어떤 일도 저지를 권한을 부여받은 셈이었다. 곧이어 등장할 아돌프 히틀러가 그러했다.


3
“영겁회귀? 니체가 말한 그 영겁회귀?” 

중얼대던 예림이 커피 한 모금을 삼키고 민서의 서글서글한 눈매를 응시했다. 

“맞아요, 교수님. 우주의 차원은 무한한 반복 속에 있어요.” 

“민서 씨. 그렇다면 우주엔 시작도 끝도 없다는 말인가요?” 

손가락을 테이블에 톡톡 두드리던 민서가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우주는 그래요. 조금 난해하시죠?” 

“그럼 빅뱅 이론은 어떻게 되나요? 그게 우주의 시작 아닌가요? 그럼 언젠가 끝도 있어야 되는 거고.” 

“빅뱅도 시작이라 단정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우주가 다시 수축해 하나의 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끝은 아니에요.” 

“그럼 거대한 원환 같은 것인가요?” 

“그런 3차원 환경을 벗어나 생각하셔야 돼요. 비유하자면 우주의 사건들이 영겁회귀하며 차원이 계속 쌓여간다고 보시면 되죠. 켜켜이 누적되는 겁니다. 그리고 동일하면서도 서로 다른 그 사건 차원들은 N차원을 향해 중복되며 평행하게 존재하게 되고.” 

“어렵군요. 어쨌든 우리 지구 역사로 설명하자면…, 이 행성에서 벌어진 일들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고 무한개의 역사가 계속 새로 쓰이고 있다, 뭐 그런 얘기인가요?” 

“비슷해요. 이동자는 그 차원 사이를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육체 질량을 제로로 만들면서 가능해진 기적이죠.” 

몸을 뒤로 물린 예림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속삭였다. 

“오래 전 끊은 담배 생각이 또 나네요. 우주가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 반복되는 차원의 집합이란 거로군요? 당연히 신은 존재치 않겠고?” 

눈을 반짝인 민서가 재빨리 대답했다. 

“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겠죠? 이 다차원의 반복되는 움직임 자체가 신의 섭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니체 사상을 생각해 보세요. 실존을 절대 긍정하고자 그가 주장한 영겁회귀 사상을 잘못 적용한 사례가 바로 나치즘 아니던가요? 신의 목적성을 상실한 무신론, 또 그것과 결합한 생의 절대 긍정은 위험한 거예요.” 

“그렇긴 하죠. 실은 전 의심하고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차원의 지구 역사에 개입해온 못된 손을.” 

“못된 손?” 

“두더지들이요. 요괴들.”
“아…, 술탄 무하마드 속에 들어갔던 그 악마?” 

“네. 그들은 인류 문명을 도우면서 또 파괴해 왔어요. 문명을 싹틔우고 발전시켜줬지만 그게 오히려 지구를 몰락시키는 빌미도 됐던 셈입니다. 말하자면 이브를 유혹해 선악과를 먹게 한 뱀 같은 존재죠.” 

“니체의 삶에도 개입했을 수 있겠군요? 두더지가 또 누구 삶에 개입했을까요?” 

“데카르트요!”




신동아 2020년 4월호

윤채근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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