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작곡가 이영훈의 장례식을 상징하는 엄숙한 엔딩 뒤 전 객석에서 펄쩍펄쩍 뛰어야 하는 ‘붉은 노을’을 함께 부르는 분위기가 됐을 때 무척 불편했다. 나는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는데 앞좌석 사람이 일어나니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내 개인적인 불만은 창극 ‘서편제’를 보다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안숙선 명창이 좋은 소리를 낼 때마다 ‘얼쑤’ 하고 싶었지만 폼 나는 의자에 앉아 소리를 던지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판소리는 추임새를 넣어야 소리가 완성된다. 객석에서 ‘얼쑤’를 적절히 넣어주어야 소리하는 사람이나 북을 치는 사람이나 흥이 나서 공연을 계속하게 된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 없이 마당에서 벌어졌던 우리 공연 문화의 반영이다.
서양의 극장 문화는 무대 위와 객석의 구분이 명확하다. 액자 틀 안에 공연을 완벽하게 넣어놓고 그 세계의 완성을 즐긴다. 우리는 다르다. 관객도 무대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참여하고 함께 소리 지를 때 존재 이유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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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뮤지컬 커튼콜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이러한 우리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외국 아티스트가 한국에서 공연하고 나서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것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참여하고자 하는 열기다. 억지 춘향 격 커튼콜이 가끔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역시 뜨거운 커튼콜, 기획된 커튼콜은 K뮤지컬만의 특징이다. 공연에서는 별도 커튼콜이 없던 ‘레 미제라블’. 영화를 보니 엔딩 곡으로 바리케이드 신의 웅장한 합창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흘러나온다.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K뮤지컬 커튼콜을 살짝 훔쳐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