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회전 안 하는 UPS 차량
사업 규모가 점점 커지자 인맥에만 의지해 직원을 채용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오너십(ownership)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집집마다 전화가 생기자 메시지 전달 업무를 없애는 대신 백화점에서 구매한 물품을 집까지 배달하는 것으로 서비스를 확장한 그는 도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직원을 각 구역에 고정적으로 배치했다. 직원들이 그 지역 사정에 밝고 고객과의 친밀도를 높여 전문성을 갖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회사에 이익이 나면 직원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특히 1927년부터 직원들에게 주식을 제공해 진짜 ‘오너’ 자격을 갖게 했다. 케이시는 1955년 “오늘의 UPS를 만든 건 UPS 직원들의 오너십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UPS는 상장을 미뤄오다 1999년 기업공개(IPO)를 단행했지만, 전체 주식의 10%만 시장에 내놓았다. 상장기업이지만 주식의 대부분을 임직원이 갖고 있다는 얘기다.
2011년 UPS 연간보고서에서 스콧 데이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직원 오너십은 UPS가 자랑하는 오랜 전통이자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UPS에서는 기사나 화물처리 담당자도 관리직으로 승진하면 회사 주식을 소유할 수 있고, 파트너로 대우받는다. 데이비스 CEO는 “직원 오너십이 기업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라고 여긴 창업자들의 뜻을 다양한 주식 제공 보상 프로그램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UPS는 직원 오너십을 통해 경영 면에서 혁신을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혁신을 주도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지금도 널리 이용되는 컨베이어벨트는 1924년에 UPS가 처음 화물을 처리하는 데 도입했다. 여객운송만 하던 항공기에 화물운송을 시도한 것도 1929년 UPS가 최초다(항공화물운송은 1931년에 대공황 여파로 중단됐다가 1952년에야 재개됐다).
UPS가 신기술 도입에 앞장선 데는 기술과 자동화의 가치에 일찌감치 눈뜬 케이시 창업주의 영향이 컸다. 그는 문제를 발견하면 문제를 잘게 쪼개 분석하고, 되도록 영향력이 큰 해법을 찾으려고 했다. 크고 복잡해 보이는 문제도 분석해 들어가면 작고 단순해진다. 거기에 최신 기술까지 접목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고 봤다.
UPS 운전자 가이드라인은 세분화와 기술 접목으로 탄생한 UPS의 명품으로 꼽힌다. 왼손으로 안전띠를 매면서 오른손으로는 시동을 거는 법에서부터, 차에서 내려 물건을 나를 땐 열쇠를 새끼손가락에 걸어야 불편을 덜 수 있다는 내용까지 운전자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매뉴얼로 만들었다.
도로 위에서 지체하거나 사고라도 나면 고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UPS는 꼼꼼한 운전자 가이드라인과 신병훈련소에 비유되는 혹독한 운전교육을 통해 모든 직원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운전하도록 훈련시킨다. UPS 직원들의 놀라운 안전 운전 기록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기관은 물론 여러 단체에서 UPS의 안전운전 교육을 지원받았을 정도다.
UPS는 업무를 세분화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데서 더 나아가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현재 UPS 차량은 대부분 자동 시동 장치를 이용한다. 이젠 열쇠를 어느 손가락에 걸어둬야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장 가능성이 높은 차량을 미리 골라내는 방법으로 돌발사고 가능성을 낮췄다. 운송트럭 부품에 센서를 달아 고장을 일으키기 전 발열과 떨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 자료를 기준으로 출발 전 모든 트럭의 상태를 점검해 고장 가능성을 진단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부품을 교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미국에서 UPS 로고를 단 차량이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UPS 운전자 매뉴얼 중에 좌회전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UPS는 좌회전 신호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우회전만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회사 안에서 성장하는 인생”
이 같은 운영 최적화 노력 덕분에 UPS는 어느 누구라도 필요한 교육을 받고 시스템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그래서 UPS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노력한 만큼의 성취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도전해보는 일터다.
2003년 8월 영국 월간지 ‘HR매거진(HR Magazine)’에서 UPS의 기업 문화를 소개한 기사 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크리스틴 비렐리는 남편이 다치고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UPS에서 파트타이머로 포장상품 검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최종학력이 고교 중퇴인 그녀는 UPS에 취업하기 전 16년 동안이나 일을 하지 않았다. UPS는 그녀가 고등학교 졸업 인정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금은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저는 UPS를 떠날 수가 없어요. UPS가 저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해줬으니 제가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지요. UPS는 제 인생을 바로잡아줬고, 전 여전히 성장 중이죠. 제 인생은 회사 안에서 성장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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