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사바나

‘박사방 쇼크’ 사회복무요원 3人의 증언

“담당공무원 패스워드로 국가전산망 내 집처럼” “개인정보 무단이용 금지 주의사항 듣지 못해”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0-04-01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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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착취 동영상 제작 및 유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3월 25일 검찰에 송치되기 전 서울 종로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성 착취 동영상 제작 및 유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3월 25일 검찰에 송치되기 전 서울 종로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성 착취 동영상 제작 및 유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은 자신의 범행을 적극적으로 돕는 이를 ‘직원’이라고 불렀다. 현재까지 경찰수사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조주빈에게 피해자의들 개인정보를 넘긴 ‘직원’이자 핵심 공범들 중 2명은 사회복무요원이었다. 20대 강모 씨(1월 9일 다른 혐의로 구속돼 재판 중), 최모 씨(경찰 수사 중) 등이 바로 그들.

    경찰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해부터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며 정부 전산망에 접속해 조주빈이 노리는 피해자 및 주변 사람의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불법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 또한 서울시 송파구의 한 주민센터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며 30여 명의 개인정보를 불법취득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조주빈은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개인정보로 피해자들을 옭아맨 뒤 나체 사진을 찍게 하는 등 자신의 요구를 꼼짝없이 따르도록 했다.

    주민번호부터 주소까지 파악 가능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의 범행 수법. [동아DB]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의 범행 수법. [동아DB]

    전국 여러 공공기관에는 강씨나 최씨처럼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복무요원이 배치돼 있다. 과연 사회복무요원은 강씨나 최씨처럼 실제 일반인의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족관계 같은 개인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한 구청 행정지원과에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 A씨는 “그렇다”고 말했다.

    A씨는 지역 내 사회복무요원 및 민방위 대상자 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이들의 인적사항을 업데이트하려면 국가 전산망에 접속해야 한다. A씨는 “처음 업무를 배정받을 때 담당 공무원이 자기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려줬다. 그것으로 전산망에 들어가면 관할 지역에 사는 주민과 여기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사람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 B씨는 복지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관내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의료급여증명서나 복지카드를 발급해주는 일이다. 그가 사용하는 전산망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으로 주민 이름을 검색하면 주민등록번호, 주소 뿐 아니라 경제적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게 돼 있다. B씨는 “관할지역 밖에 사는 사람이라도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면 각종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또 다른 사회복무요원 C씨 또한 업무 과정에서 다수의 개인정보를 수시로 확인해왔다고 밝혔다.



    취재결과, 이들 사회복무요원은 개인정보를 다루기에 앞서 보안 등에 대한 별도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A씨는 “담당자한테 전산망 사용법을 배웠을 뿐 개인정보 무단이용 금지 같은 주의사항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B씨는 “전산망 접속 자격을 받기 전 치러야 하는 시험에 ‘개인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해도 되나’ 같은 문제가 있긴 했다. 하지만 너무 기초적인 질문이라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맞힐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공무원은 정기적으로 개인정보 보호 및 보안 관련 교육을 이수한다. 외교부 소속 일반 공무원 D씨는 “개인정보를 다룰 때 유의하라는 내용의 공문도 주기적으로 내려온다”고 말했다. 국가공무원법도 공무원의 업무상 비밀엄수를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개인정보를 유출하다 적발되면 파면·해임 등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복무기간 22개월 동안만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은 이러한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른바 ‘박사방’ 사건으로 사회복무요원의 개인정보 접근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병무청은 3월 24일 사회복무요원이 배치된 각 기관에 공문을 보냈다. 사회복무요원에게 개인정보 접근권한을 부여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일선 관청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A씨에 따르면 3월 26일 관할지역 내 사회복무요원에게 개인정보 관련 업무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합동근무’는 가능? 모호한 조항

    병무청 훈령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규정’ 제15조 제3항에는 사회복무요원이 개인정보 취급 분야 업무를 할 때는 담당직원과 합동으로 근무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김정수 병무청 부대변인은 “이 규정은 사회복무요원을 해당 업무의 보조 인력으로 참여시킬 수 있다는 의미”라며 “개인정보를 다루는 일에 있어서 사회복무요원이 담당 공무원을 대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 조항이 사실상 무시돼왔다. B씨는 “공무원으로부터 ‘나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경우엔 개인정보 관리 업무를 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C씨 역시 “공무원이 옆자리에 있으면 되는 걸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C씨는 “공무원이 옆자리에 있다 해도 일하는 책상이 다른데 무슨 의미가 있겠나. 마음만 먹으면 타인의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수집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12월 현재 전국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은 6만698명이고, 이 중 1만8298명은 행정지원분야에서 일한다. ‘박사방’ 사건 이후 사회복무요원이 개인정보를 취급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규정에 ‘개인정보 취급 불가’ 조항을 넣어달라는 내용이다. 김정수 병무청 부대변인은 “행정안전부와 합동으로 사회복무요원 개인정보 업무 실태를 조사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관련 복무규정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파악한 후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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