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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는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

성범죄는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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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인정한 부부 강간

법률상의 처를 다른 ‘사람’과 달리 봐야 한다는 논리는 ‘부부’라는 특수한 지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법은 부부에게 상호가 동거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법원은 동거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이혼 사유로 인정하고 위자료까지 물어주라는 판결을 내린다. 이와 같이 배우자는 상대 배우자에게 동거 의무를 부담하는 유일한 사람이고, 부부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동거 의무 위반이 될 소지가 있는 특수성이 있다. 게다가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형법의 보충성 원칙 때문에 법률상의 처는 강간죄의 대상인 ‘부녀’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반면 형법이 처와 일반적인 사람을 구별하고 있지 않고, 민법상 부부 동거 의무가 있더라도 이것을 근거로 처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법률상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강간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우리 법원의 시각은 어떨까.

부부강간죄를 다룬 최초의 대법원 사건은 1970년에 있었다. 처가 다른 여자와 동거하고 있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간통죄로 고소했다가 다시 새출발하기로 하고 남편을 상대로 한 소송과 고소를 취하했는데, 그 후 남편이 부인을 강제로 간음한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이 부부에게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설사 남편이 강제로 처를 간음하였다 하더라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970년 이 판결 이후 2013년까지 대법원은 줄곧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존재하는 한 법률상의 처는 강간죄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2008년 부부간 강간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있기는 했다. 그런데 그 사안은, 남편이 부인과 협의이혼하기로 합의하고 협의이혼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이후 부인을 강간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 부부간에는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없었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있는 것을 전제로 강간죄를 인정한 1970년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5월 16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1970년 판결을 변경했다. 대법원의 논리는 이렇다.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내용, 가정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 형법의 체계와 개정 결과 등을 보면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도 남편이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가해 아내를 간음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13년 5월 16일 선고 2012도14788 사건). 한마디로 줄이면 ‘세상이 변했고 따라서 판례도 변한다’는 것이다.

유사강간죄 신설

개정 형법의 강간죄 조항 바로 다음에는 유사강간죄라는 항목이 신설됐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유사강간죄로 분류해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강간죄는 피해자의 성기에 자신의 성기를 넣어야 성립하기 때문에 성기가 아닌 신체의 일부에 범인의 성기를 넣는 범죄에 대해 신체를 더듬는 정도의 행위를 처벌하는 강제추행죄를 적용하는 불균형이 있었던 데 대한 반성으로 신설된 범죄다.

이번 개정 형법에서 강간죄의 형량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개정 전과 같다. 이에 대해 성범죄의 형량이 강화되기를 바라는 측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최근 조두순, 김수철, 김정덕 등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강력 성범죄 사건 때마다 범인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 현실에서 성범죄 엄벌주의에 힘이 실렸다. 이런 여론에 의해 실제로 법률의 형량이나 실제 선고되는 형량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범인에 대한 형량을 높이면 여성 인권에 대한 보호가 충실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지는 냉정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강력범죄의 끝은 살인죄다. 일반적인 범죄의 형량을 정하는 기준도 살인죄가 된다. 성범죄가 아무리 간악하더라도 살인죄보다 무겁게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인데, 성범죄를 엄벌하자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범인에게 살인죄와 큰 차이가 없는 처벌을 한다고 해보자. 여론은 피해자의 원한을 갚은 것인 양, 정의가 실현된 것처럼 환영할 것이다.

성범죄는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
그러나 시각을 조금만 바꾸어보자. 그 이후의 성범죄 사건에서 강간으로 끝낼 계획이었던 범인이, 피해자에게 얼굴이 노출돼 발각될 경우 살인죄나 별 차이 없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해 피해자를 아예 없애기로 마음먹고 살인까지 저질러버리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강력한 처벌이 강력범죄를 야기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직접 피해자가 아닌 제3자의 분노나 정의감 해소를 위해 정작 직접 피해자의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피해 여성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다.

개정 형법이 강간죄의 형량을 가중시키지 않은 데에는 성범죄 엄벌주의가 낳을 수 있는 부작용도 충분히 고려됐을 것이다.

신동아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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