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하버드대, 캘리포니아주립대, 밀워키대 같은 곳이 오픈액세스에 적극적인 대학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이들 대학도 교수의 강의 동영상 등을 일반에 공개하는 정도에 그치지, 학술논문을 무료로 제공하지는 않죠. 그런데 한국에선 학술 선진국이 오픈액세스를 추진한 배경과 그 제한적 성격을 인식하지 않고 맹목에 가까울 정도로 밀어붙이고 있어요.”
▼ ‘무조건 무료’의 실질적 문제점이라면.
“한국은 지금까지 글로벌 데이터베이스 업체에 고액의 사용료를 내면서 선진국의 연구 성과를 구매해 배워왔어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들 글로벌 업체의 연간 매출은 2012년을 기준으로 2000억여 원에 달합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 1곳당 1억~20억 원의 구독료를 지불하는 편이죠. 그런데 한국의 연구 성과는 무조건 무상으로 개방하고 선진국의 연구 성과는 계속 비싼 값에 사보라는 것이니, 이치에 맞지 않는 거죠. 국익을 지키는 데도 부합하지 않고요.”
이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일종의 ‘논문 유통업’이라고 할 수 있는 학술 콘텐츠 데이터베이스 업종은 막대한 수익을 내는 사업 분야이고, 학술 논문도 상당한 고부가가치 지식상품으로 평가되는 셈이다. 학술 콘텐츠 데이터베이스 업종의 선두권에 있는 네덜란드의 엘스비어는 학술 콘텐츠로 연간 5조 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향후 한국인이 생산한 논문이 여러 나라에서 값비싸게 구독되고 한국의 토종 학술 콘텐츠 데이터베이스 업체가 글로벌 업체로 성장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학술계에선 “지금 추세라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정부의 논문 무료 공개를 비판한 한국전자출판협회 세미나.
2011년 한국연구재단의 발표에 따르면 SCI에 등재된 한국 논문은 4만4718편이다. 국가별 SCI급 논문 게재 건수로는 세계 11위에 해당하고, 중복을 제외한 전 세계 총 논문 126만892편 중 3.55%의 점유율을 보이는 것으로, 결코 작지 않은 비중으로 평가된다.
한국 정부의 2013년 예산 중 연구개발(R·D) 투자는 16조9000억 원대인데(기획재정부 자료),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3위에 해당한다. 2012년 개인연구비 규모는 8000억 원대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공약사항인 ‘창조경제 구현’과 관련, R·D에 8조1000억 원을 투입해 2017년까지 GDP의 5%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러한 정황을 감안하면 향후 한국인이 생산하는 논문의 양과 질은 더욱 좋아질 것으로 예견할 수 있다.
한국전자출판협회 관계자는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인 데다 전 세계에서 한국의 경제, 과학, 기술 발전과정을 모델로 삼으려는 나라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논문의 국제적 가치도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한국의 반도체, 조선, 자동차, 금속, 의학 등의 경쟁력은 세계 최상위급인데, 이들 분야의 국내 논문은 선진국 논문에도 뒤지지 않는 최신 트렌드와 고급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를 구독하는 해외 기관도 최근 3년 사이 2배로 늘었다고 한다. 한국학 관련 자료를 서비스하는 해외 대학 도서관 담당자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생산된 논문에 대한 반응도 좋은 편이다.
미국 하버드대 학술자료 담당자인 강미경 씨는 “한국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 업체인 DBpia의 필요성이 이제는 해외 사서들 사이에도 확산된 상황이다. 없어서는 안 될 데이터베이스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UCLA의 수 첸 도서관장은 “한국 논문은 꼭 필요한 자료여서 구독을 중단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논문 저자들에게 ‘슈퍼甲’ 행세
학술계 일각에선 음악,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대중문화 분야의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2010년 5조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2조 원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가져왔는데, 학술 분야도 육성하기에 따라선 대중문화 분야 못지않은 한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연구재단의 논문 무료화 계획에 의해 이러한 장밋빛 전망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