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부울경 民心 르포

“경기 침체, 조국 사태로 민심 ‘출렁’… ‘정권심판’ 우세”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20-03-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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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대 총선 최대 격전지, 40석의 향배

    •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선거 타령이냐”

    • 울산, 靑 선거개입 사건에 “사실이면 천인공노할 짓”

    •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휘청…탈원전 논란

    • ‘뚝심’ 김두관, ‘영원한 재야’ 장기표의 ‘낙동강 혈투’

    • 코로나19 수습, 경제, 인적 쇄신 여부가 분수령

    [배수강 기자]

    [배수강 기자]

    “예전 주말 저녁이면 여가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아입니꺼. 주말에는 가족단위 손님들이 줄을 섰는데, 손님이 없는 지 오래됐지예. 예전에는 (인근 경남 창원시) 창원공단 단골손님도 많았는데 거기도 탈(脫)원전 (정책) 탓에 회식은커녕 문 닫은 회사가 많더라고. 그나마 중국, 일본 사람들이 좀 오다가 요새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개미 한 마리 안보인다카이. IMF(외환위기) 때도 장사는 했는데 해방 이후 처음 ‘부산의 상징’이 문을 닫았어요.” 

    3월 1일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 앞에서 만난 50대 천모 씨는 4·15 총선 민심을 묻자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선거는 무슨 선거냐”며 헛웃음을 쳤다. 

    그의 말처럼 부산의 명소 자갈치시장 현대화건물 1층 수산물 코너와 2층 식당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방역 작업을 위해 광복 이후 처음 휴장을 했다.

    민주당 東進 교두보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은 21대 총선 최대 격전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공식·비공식 방문을 포함해 모두 17번 PK 지역을 방문하면서 ‘고향’을 챙겼다. ‘한 달에 한 번 넘게 PK 지역을 찾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울경은 민주당의 동진(東進)정책 핵심 지역이자 전략적 요충지다. 

    1990년 1월 이른바 ‘3당 합당’ 이후 부울경은 미래통합당(민주자유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후신)의 텃밭이었다. 그러나 19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3석(부산 2, 경남1)을 차지하며 동진(東進)의 교두보를 마련했고, 20대 총선에서는 전체 40곳 중 8곳(부산 5, 경남 3)에 깃발을 꽂으면서 ‘사실상 민주당이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대부분의 광역·기초단체장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여당 내에서는 “21대 총선에서 적어도 부산에서만 10석 이상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최근 부울경 민심은 2018년 지방선거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하고 민심은 다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무리하게 최저임금 인상한다고 식당 종업원들 다 쫓겨났지예, 주52시간제 한다면서 중소기업들 다 흔들리지예, 조국 사태로 나라가 분열됐지예, 검찰개혁 한다고 수사 잘하는 검찰총장 흔들어 놨지예, 온통 나라 시끄럽게만 하고 한 게 뭐가 있습니꺼. 미국하고 일본하고 싸우고, 중국하고 북한에 굽신거리고…마, 나도 민주당 뽑았지만 정치 얘기만 하면 열 받습니다.” 

    부산 해운대 한화리조트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경기 침체와 조국 사태 등으로 민주당의 총선 성적이 예전만 못할 거라고 예측했다. 그의 말처럼 부산 시민들은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지난해 ‘조국 사태’와 패스트트랙 정국, 검찰개혁 논란 등으로 지역 정서가 예전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 해운대에서 조개구이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2) 씨는 “문 대통령이 취임하고 부산 경제가 좀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는데, 매출은 해마다 10~20%씩 줄어들었다”며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줄였는데 손님은 더 줄어들었고, 식당 개업하는 사람만 늘어나니 갈수록 힘들다. 이제는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했다. 

    주부 김지현(51) 씨는 “그동안 부산은 줄곧 보수당만 찍다가 탄핵 이후 문통(문 대통령을 지칭)을 뽑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오거돈) 시장도 뽑아놨는데 오히려 경제가 더 추락했다는 얘기가 많다. 집권 4년차가 됐으면 뭔가 성과가 나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며 “일자리가 없어서 그런지 실력이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대학 졸업한 아들도 취직이 안 돼 2년째 ‘공시생’”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국 잘못 뽑았으면 사과하면 될 일을…”

    문재인 대통령이 2월 6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부산형 일자리 상생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월 6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부산형 일자리 상생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실제 부산시 전체 고용률(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은 4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부산의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해 1월 29만5000명에서 11월 26만4000명으로 10개월 만에 10% 이상 줄어든 반면, 도소매·숙박 음식업은 지난해 1월 36만 명에서 11월 41만5000명으로 큰 폭(15.2%) 증가했다. 임금 근로자는 줄고, 자영업과 연계되는 도소매·숙박 음식업의 종사자 수는 대폭 늘었다. 

    2월 2~4일, 3월 1일 부울경에서 만난 PK 지역민들은 대체로 조국 사태를 시작으로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무마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청와대 인사들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를 비판하면서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 비공개, 윤석열 검찰총장 압박 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부산 서면시장에서 만난 직장인 배모(49) 씨는 “딸을 키우는 부모로서 조국 사태 당시 문 대통령과 여당이 보여준 ‘조국 감싸기’에 굉장히 실망했다”며 “조 전 장관 딸은 허위 인턴증명서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고 특혜성 장학금도 받았다고 하던데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대통령 취임사가 공허하게 들린다”고 말했다. 

    자동차 정비업체를 운영하는 김철호(46) 씨는 “부산 사람들은 위선적이거나 뒤에서 딴소리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문 대통령도 잘못을 한 사람을 (법무부 장관으로) 뽑았으면 사과하면 될 일을 ‘눈 가리고 아웅’하다 보니 나라만 시끄러워진 거 아닌가”라며 “문 대통령이나 추 장관도 말을 안 듣는다고 윤석열 총장 압박할 게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했으면 박수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민심을 반영하듯, 2월 11~13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결과 4월 총선에서 여당보다 야당 승리를 기대하는 의견이 처음으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4월 15일 총선 때 ‘정부견제론’을 선택한 응답자는 45%, ‘정부지원론’에 손을 들어준 응답자는 43%였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4월부터 실시한 같은 내용의 조사에서 정부견제론이 앞선 것은 처음이었다. 부울경 지역에서는 정부견제론(50%)이 정부지원론(34%)보다 큰 격차로 앞섰다. 

    부산·경남지역 방송사 KNN이 폴리컴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7~28일 경남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 8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도 ‘경제실패, 안보위기 등을 초래한 현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응답(54.5%)이 ‘개혁과 국정운영에 발목 잡는 보수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응답(36.9%)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코로나19’ 사태로 정부의 악재가 덮였고, 이를 잘 수습하고 문 대통령의 진정성을 잘 알리면 21대 총선에서 다시 ‘돌풍’을 기대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부산 연산동 먹자골목에서 만난 김형일(39) 씨는 “지난해부터 여당 처지에선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지만 미래통합당도 뭐 하나 잘한 게 없다는 평가가 많다”며 “여러 악재가 코로나19 사태로 묻힌 측면이 있고, 이러한 국난을 잘 극복해 내면 오히려 여당 후보들이 평가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부산 명장동에 사는 배모(76) 씨는 “코로나19 초기에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데다,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서 중국에 마스크를 보내더니 결국 대한민국은 세계 2위 감염국이 됐고 국민들은 마스크를 사러 돌아다니고 있다”며 “사태 초기에 중국인 입국 금지도 하지 않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마치 우리 국민들이 잘못된 양 말하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부울경 지역민들은 보수대통합과 미래통합당 공천과 관련해선 비교적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이른바 ‘옥새 들고 나르샤’를 연출한 계파 간 공천 갈등으로 보수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만큼 공천이 마무리돼도 선거일까지 지켜보겠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20대 선거에서 막장 공천은 유권자들의 화를 돋웠고,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곳 보수파들의 표심도 갈렸다. 그런데 부산 출신 김형오 공천심사관리위원장이 비교적 큰 대가 없이 탄핵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쳐내고 외형적으로 보수연합을 도모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 원래 부울경은 ‘보수’가 주류인데, 그동안 워낙 ‘헛발질’을 해대니 잠시 민주당에 표를 준 측면도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보겠다.”(부산 남포동 편의점 주인 김준웅 씨)

    “보수통합엔 긍정적, 새인물은 ‘기대 이하’”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기 전인 2월 2일 오후 한산한 부산 자갈치시장 식당가. [배수강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기 전인 2월 2일 오후 한산한 부산 자갈치시장 식당가. [배수강 기자]

    그러나 ‘새 인물’을 기대했지만 ‘기대 이하’라는 평가도 나온다. 부산 지역신문의 한 칼럼니스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산지역 통합당 현역의원 8명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 빈자리에 대부분 자신들의 보좌관 출신 인사들과 김형오 위원장이 제거하겠다고 한 ‘구닥다리’들에게 경선 기회를 줘 ‘혁신공천’이 무색해진 측면이 있다, 자신들은 혁신하지 않으면서 정권 심판만 외치면 시민들이 받아들이겠나. 통합당은 애초 부산 전 지역 석권을 목표로 했지만 북강서갑, 해운대을, 연제구, 중·영도구 등에선 박빙 선거가 예상된다.” 

    이에 대해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경제성장률 저하와 경기 침체, 부동산 대란, 조국 사태, 검찰개혁 논란에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정권심판론이 우세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남은 기간 정권심판론을 확산 혹은 차단하느냐에 따라 여야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묘하게도 부산, 울산, 경남의 경우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의 청와대 감찰 무마 사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경남 창원 지역경제 침체는 4·15 총선에서 여당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대표의 지적처럼, 울산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원전 기업이 많은 창원의 탈원전 논쟁도 부울경 총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울산 태화강역 앞 택시 승강장에서 만난 4명의 운전기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8년 6월 울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시장(당시 자유한국당) 비서실이 압수수색(3월 16일) 당하는 모습이 지역 언론에 생방송으로 방영됐다. 시장과 비서실장, 시장 동생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소식이 지역에 쫙 퍼졌다. 판사 출신 김 시장은 그나마 한국당에서 ‘깨끗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일 잘하는 광역단체장’으로 뽑혔는데 굉장히 의아했다. 당시 여당 송철호 후보(현 울산시장)는 TV토론회에서도 이 문제를 계속 공격했고, 가뜩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문제로 화가 난 시민들은 ‘아, 김기현이도 썩었구나’ 하고 한탄했다. 울산에서 경남 동부지역과 부산으로 가는 택시 손님이 많은데, 나부터 손님들에게 김 시장과 한국당 욕을 해댔다. 이 사건은 부울경 전체 선거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최근 검찰의 공소장 보도를 보니까 청와대 인사들과 송 시장 측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기획’을 했다고 하더라. 사실이라면 천인공노할 일이고, 다들 김기현이 불쌍하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지방선거 때와 다를 거다.”

    경제냐, 노무현의 의리냐

    박동원 대표는 “울산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이에 연루된 송철호 시장의 직무수행에 대한 불만(전국 17개 시·도지사 평가에서 최하위, 2월 11일 리얼미터 발표)으로 여권에 대한 지역 여론이 악화된 상황”이라며 “다만 울주군 지역에선 5선에 도전하는 무소속 강길부 의원의 출마 여부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남 지역에선 탈원전 논란과 ‘낙동강 혈투’도 4·15 총선에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꼽힌다. 창원 지역총생산의 15.4%를 차지하는 두산중공업이 최근 노조에 휴업을 제시할 정도로 경영이 악화된 원인을 두고 탈원전과 부실경영 논리가 부딪치고 있다. 또한 봉하마을이 있는 김해, 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양산 등 이른바 ‘낙동강 벨트’를 교두보로 민주당의 동부경남 약진도 관전 포인트. 민주당의 경남지역 전략적 요충지인 김해갑(민홍철), 김해을(김정호), 양산을(서형수)은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다. 민주당은 일찌감치 정권심판론을 차단하고 경남 전역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 김두관 전 경남지사를 양산을에 투입했고, 통합당은 김해을 지역에 ‘영원한 재야인사’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이사장을 내려보냈다. 봉하마을이라는 민주당의 상징성을 희석하면서 고토를 회복한다는 복안이었다. 박동원 대표의 분석은 이렇다. 

    “20대 총선에서 양산을은 한겨레신문 사장 출신 서형수 의원이 도의원 출신 이장권 새누리당 후보에게 1262표차로 신승(辛勝)한 곳이다. 당시 무소속 후보 3명이 출마해 20%가량의 표를 분산시켰다. 이곳에는 문 대통령 사저가 있는 만큼 민주당은 반드시 사수해야 할 곳이고, 통합당은 정권심판론을 내세워 후보 난립을 막고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게 당선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창원 성산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후보단일화를 한 지난해 4·3 보궐선거와 달리 민주당이 이흥석 후보를 공천하면서 현역인 정의당 여영국 의원, 통합당 후보와 3파전이 예상된다. 원전산업 붕괴로 두산중공업이 타격을 받고 지역경제가 어려운 만큼 이번 선거에선 통합당 후보에 다소 유리한 지형이 됐다.” 

    김해 장유동의 한 대형 아웃렛에서 일하는 김철호(46) 씨는 “김해 사람들은 경제 돌아가는 꼴을 보면 통합당에 표를 주고 싶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생각하면 그게 잘 안 된다고 말한다”며 “‘정권심판’이냐 ‘야당심판’이냐를 두고 투표일까지 고민할 거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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