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랜드연구소는 최근 ‘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한 준비(Preparing for the Possibility of a North Korean Collapse)’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가운데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은 북한 붕괴 후 한국, 미국, 중국이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각각 북한 내 관할구역을 설정한다는 시나리오다. 특히 중국이 북·중 국경선에서 북한 영토 내 50km까지 진군해 완충지대(buffer zone)를 세운다는 이야기는 상당한 파장을 야기했다. 과연 북한 붕괴 시 제2의 한반도 분단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이 보고서의 저자는 브루스 베넷(Bruce Bennett) 박사다. 그에 따르면 보고서의 포인트는 북한이 반드시 붕괴한다고 단정한 것이 아니라 북한 급변사태 즉, 현 정권이 갑작스럽게 무너질 경우에 대비하는 방안을 밝히는 것이었다.
총 10장(chapter)으로 된 베넷의 보고서는 북한 정권의 붕괴 과정, 중국의 개입, 북한을 장악하는 데 필요한 한미 연합군사력의 규모에 대한 예측, 한국이 북한 영토를 접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법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역주행하는 한국 국방 정책

이 보고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인 북한 정권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붕괴해 무정부 상태에 빠질 경우 한국의 안보 상황이 현재보다 훨씬 악화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붕괴 시 일어날 수 있는 위기상황은 크게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인도적 위기(Humanitarian Crisis)다.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곧바로 식량 부족으로 인한 대규모 아사 사태, 정치 보복성 학살, 대량 탈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서는 예측한다. 보고서는 한국으로만 약 300만 명의 북한 주민이 넘어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둘째는 대량살상무기(WMD)에 의한 위기다. 사실 북한 정권 붕괴 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사라진다고 북한 땅에 존재하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지휘체계가 무너지면서 국가가 대량살상무기 통제능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해당 부대 지휘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한국을 공격하거나, 내전 상황일 경우 상대편 군벌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보고서는 경고한다. “설사 지휘체계가 살아남더라도 한국군의 개입을 막기 위해 핵무기 및 생화학 무기의 시위성 사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한반도 전체의 정치, 사회적 위기다. 북한 정부 붕괴 시 통일에 대한 기대는 한국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일단 북한 정권의 기만과 선전술에 오랫동안 길들어온 북한 주민들은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120만 명쯤 되는 북한 정규군의 무장해제, 제대조치, 사회복귀는 붕괴 이후 북한 사회의 혼란으로 인해 여의치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특히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은 한국 사회의 범죄세력과 결탁하거나 무장봉기의 중심 세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보고서가 특히 집중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한국의 군사력만으로 북한을 안정화하는 것이 가능한가’다. 북한 붕괴 시 미군이 수행하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미군은 주로 한국군의 병참과 정보 수집을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북한을 안정화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은 ‘화력’이 아니라 ‘병력’이라고 잘라 말한다. 미군이 수행해온 평화유지 작전 및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얻은 교훈을 근거로, 북한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선 북한군의 저항이 없을 경우 26만~40만 명, 저항이 있을 경우 60만~80만 명의 한국군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서는 예측한다. 붕괴 후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정하면 북한 안정화에 필요한 군 병력은 현재 63만여 명 수준인 한국군의 총 병력 규모를 상회한다.

미국 랜드연구소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