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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는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

성범죄는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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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역범은 밤길을 혼자 걷던 하의수를 강제로 납치해 성폭행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하의수는 남자로 태어났으나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이었다. 하의수는 강역범을 강간죄로 고소했다.

#2 나마초는 부인으로부터 거듭 잠자리를 거부당하자 하루는 술에 취한 채 귀가, 거부하는 아내에게 완력을 행사해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 아내는 나마초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강간으로 형사고소를 했다.

최근 4년간 전체 범죄 건수도 줄었고 살인, 강도와 같은 강력범죄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강간, 강제추행과 같은 성범죄는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9년 1만5693건이던 성범죄 수는 2012년 1만9670건으로 늘어나 증가율이 25%에 달했다. 2012년 기준으로 하루 53.8건, 매시간 2.2건의 성범죄가 발생하는 셈이다. 성범죄 중 우리의 상식에 반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성범죄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자.

강간은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성관계를 한 때에 성립하는 범죄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강간의 가해자는 육체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남자이고, 피해자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구형법 제297조는 강간죄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행위’라고 정의해 이러한 고정관념을 공식화했다. 여기에서 ‘부녀’는 부인 또는 여자를 의미했다.

이 때문에 남자가 남자를 강간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할 수 없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여자가 사회적 권력을 이용한 협박을 통해 남자를 강간하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생겨났지만, 이 경우에도 강간죄로 처벌하지 못하고 형량이 훨씬 낮은 강제추행죄로만 처벌했다.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해도 형법에 정하지 않은 것을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과 유추해석금지의 원칙 때문이다.



강간죄의 대상을 여자로 한정한 법규정으로 인해 생겨난 중요한 쟁점이 바로 성전환자에 대한 성범죄다.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자의 외모를 지니게 됐지만 성염색체로나 법적 지위로 남자인 사람을 여자인 줄 알고 강간했다면 범인을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였다.

남자도 강간당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어떤 사람의 생물학적 성과 그 사람이 인식하는 성이 다른 경우 그 ‘성(性)’을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할 것이냐 하는 어려운 물음을 던졌다. 종전에는 태어난 상태, 즉 생식기가 무엇인지 혹은 성염색체로 성별을 구분하는 생물학적인 기준이 그대로 통용됐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생물학적 성 이외에도 당사자가 귀속감을 느끼는 성,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성을 기준으로 성별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 변화는 1990년대부터 법원의 판결에도 반영됐다. 법원이 생물학적 요소 이외에도 심리적, 정신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성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법원은 성전환자에 대한 강간사건에서 생식능력, 즉 임신 가능성을 성별 결정기준에 포함시켜 부녀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이후 여자로 알고 강간을 범한 자를 피해자가 성전환수술을 했다는 아주 우연한 사실 때문에 다른 강간범보다 훨씬 가볍게 처벌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느냐는 문제가 계속 제기 됐다.

그러던 중 2009년 처음으로 성전환자를 강간죄의 객체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30년 전에 성전환수술을 받은 이후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던 ‘남자’를 강간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장기부터 남성에 대한 불일치감과 여성으로 성 귀속감을 나타냈고, 성전환 수술로 인해 여성으로서의 신체와 외관을 갖추었으며, 수술 이후 30여 년간 개인적, 사회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해가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사회통념상 여성으로 평가되므로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해당한다”고 판결해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한 것이다(2009. 9. 10. 선고 2009도3580 판결).

사실 이러한 논란은 강간죄 조항의 ‘부녀’라는 단어만 ‘사람’으로 고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국회가 형법을 개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2012년 12월 개정된 형법 제297조 강간죄 조항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로 바뀌었고, 이 법은 올해 6월부터 시행됐다.

구형법 강간죄 조항의 ‘부녀’에는 기혼녀, 미혼녀는 물론이고 음행을 상습으로 하거나 영업으로 하는 소위 윤락여성도 포함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법률상 처(妻)가 포함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현행 형법은 ‘부녀’가 ‘사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범위에 법률상 처가 포함되는지는 여전히 유효한 쟁점이다. 앞으로는 법률상 남편이 강간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다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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