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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맛으로 읽는 우리 근대문학

주전부리 달고 산 거구 전방위 지식 탐구도 ‘대식가’

육당 최남선

  • 소래섭│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주전부리 달고 산 거구 전방위 지식 탐구도 ‘대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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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 종교학, 신화학, 신학, 심리학, 윤리학, 심령학, 의학, 성욕학, 천문학, 지리학, 생물학, 인류학, 민속학, 언어학, 사회학, 경제학, 고고학, 사학, 연대학, 천화학(泉貨學), 문자학, 도서학, 금석학, 문학, 미술, 음악 등 일체 문화과학의 통속취미잡지.”

이토록 원대한 목적을 가진 잡지는 동서고금을 망라해도 드물 것이다. 육당이 밝힌 잡지의 의미는 창간호 목차를 살펴보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느님의 신원조사

인류 문화의 4대 계단

종교문화의 본원인 ‘마나’ 신앙



고금동서 생식기 숭배의 속(俗)

성(姓)과 씨(氏)와 족(族)의 구별

연초(烟草)의 유래

신라의 경문왕과 희랍의 미다스왕

조선과 세계의 공통점

일천 년 전 해상왕 신라 장보고

신대(神代)의 대식민가 신라 천일창

서양 음악의 조선 전래

세계 무류(無類)의 조선 측후기록

-‘괴기’ 창간호 주요 내용 발췌, 1927년 5월호



창간호는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함께 우리의 빛나는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데 집중돼 있다. 요즘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단언컨대’ 이 잡지의 의미와 창간호의 목차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육당이 평생을 통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것이 무엇인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괴한 기호-식욕도착증’ 역시 세계의 독특한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된 글로 보이는데, 통속 취미잡지를 표방했던 만큼 이 글은 ‘고금동서 생식기 숭배의 속’과 아울러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려는 목적 또한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온갖 식욕도착증 환자의 사례를 소개한다. 손톱, 정액, 인분 등을 먹는 괴상한 식습관이 열거되는데, 그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이러한 것을 의학에서 식욕도착이라 하니, 평소에 싫어하던 식물(食物)을 즐기고 반대로 평소에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며, 또 일반인이 기호하는 바를 먹지 아니하는 것 따위가 다 이에 속하는 것이다. 생리적으로는 부인이 임신 시에 평소에 좋아하던 식물을 싫어하고 산성의 것과 기타 이미(異味)를 기호함도 이것이며, 병적으로는 히스테리 및 위황병(萎黃病)의 환자 중에 일반인이 혐오하는 진흙과 지푸라기 등을 먹는 자가 있으며, 이밖에 변질자나 중한 유전소인을 가진 자가 탄지(炭紙), 백묵 등을 먹고, 심하면 개구리, 뱀 등과 벌레를 먹되, 남이 흉볼까 두려워서 몰래 먹는 자가 있으며, 가장 고약한 것은 식분증(食糞症)이라 하여 분변을 좋다고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와 이물을 먹는 자가 반드시 식욕도착이라고 할 수 없으니, 지방을 따라서는 특별한 물건을 먹기도 하며 또 혹 미신으로 일반인이 혐오하는 것을 먹기도 하니, 이를테면 죽은 사람의 살, 어린아이의 살 내지 부녀의 혈액을 먹는 것 등이 그것이다.

-‘기괴한 기호-식욕도착증’, ‘괴기’ 창간호, 1929년 5월호

온갖 기괴한 사례가 소개돼 있는 탓에 읽다보면 구토가 쏠릴 지경이다. 그런데도 약간은 변태처럼 보이는 사례들을 소개하는 육당의 문체는 의외로 담담하고 차분하다. 마치 환자를 다루는 의사처럼, 실험 대상을 면밀하게 살피는 과학자처럼, 그의 글은 건조하고 객관적인 어조를 유지한다. 잡지의 원대한 목적에 비하면 생뚱맞은 글처럼 보이기도 하나, 전 세계의 온갖 문화를 소개하려는 잡지의 의도에 비춰보면 그리 유별나 보이지도 않는다. 또한 사소한 사실에서도 역사·문화적 의미를 발견하려 했던 육당의 박학다식한 면모를 엿볼 수도 있다.

주전부리 달고 산 거구 전방위 지식 탐구도 ‘대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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